xoxo, text
 
 

 

I`m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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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꺼진 고 3 수험생활과 가파른 입시를 치르고, 누군가는 극심하게 동의할 ‘좋은 대학’에 안착하면서, 새롭고 신기한 생활리듬을 갖게 되고 혼자 잘 견디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름은 정신없는 하루하루였다. 새내기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교 2학년이 된 걸 보면 확실히 시간은 빨리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원래 딱히 하고 싶거나 해야 했던 목표가 없었던 고 3의 초기에 희망학교나 학과를 쓰라고 나눠주었던 용지에 ‘영문과’를 쓰게 된 것은, 이제 앞에도 뒤에도 심지어는 옆에도 함께 있지 않은 용준형 때문이었다.
유학을 어디로 간다고 했더라.
까마득한 옛날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희미했다.

……
겨우 고 2 열여덟에, 4월말에서 5월 초 즈음이었으니까, 그 때, 용준형을 그렇게 멀리 보내버리고 12월까지를 어떻게 견뎠는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두어 번쯤이었던가. 용준형의 누나가 용준형에게 편지를 보낼 거라며 성화였던 날, 뒤늦게 대강 휘갈겨 쓴 편지 한 장을 보낸 것이 처음이었고, 두 번째는 한 다섯 장쯤의 길고 긴, 무슨 내용을 적었는지도 모르겠는 편지였다.

그러고 홀연히, 정말 홀연히, 동네에서 용준형네 집이 이사를 했다.
메일 주소였다면 컴퓨터에도 남아있고 괜찮았을 텐데, 누나에게서 겨우 받은 용준형이 살고 있을 타국의 주소 종이쪼가리는, 어느 날, 이상하게 아무리 집 안을 뒤져도 나오질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해가 질 때까지 집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어느 샌가, 찾는 걸 포기하게 되었다. 혹시 내가 보내지 않으면 녀석이 먼저 우리 집에 편지를 보내오지 않을까 싶어서, 고 3의 마지막까지 한 번도 편지함을 들여다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2년이 다 되어 가도록 편지함에 용준형의 편지가 도착하는 일이 없었다. 내가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부질없는 것인지, 몇 번을 고쳐 생각해보아도, 난 언제나 그렇듯이, 용준형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꼭 용준형을 위한 주기 같은 것이 있었다. 봄에 잠깐 한 번 오고, 여름 장마쯤에 한 번 더 오고, 가을에는 매일 생각하고, 겨울에는 좀 덜했다.

메일은 고사하고 편지를 할 수도 없으니, 그냥 머릿속에 용준형의 모습을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납고 날카로운 눈에, 멍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이따금 비죽 웃는 걸 대강 낙서처럼 그려보다가 용준형과 너무 닮지 않아 까맣고 둥그렇게 칠해버리고 만 자국은 연습장에도, 수업용 책에도 많았다.


스무 살이 되던 때, 우리 집에서도 이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나 내가 다닐 학교가 가까운 교통편이 있는 지역에 이사하게 되었고, 그 동안은 이사에 관한 부분에 민감해 했던 나조차도 그렇게 하자며 동의했다. 그동안 이사에 대해 민감했던 건 혹시나 용준형의 편지가 도착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고, 2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으니 이제 나도 포기할 때가 되었다고 단정 지은 것뿐이었다.

멀대같은 아파트가 즐비한 단지로 이사를 했고,
처음에는 용준형과 함께 무수한 추억을 가졌던 집도, 동네도, 자력으로 다 버린 것 같은 허무함과 자책감이 있었다.

용준형의 흔적을 고대로 가져올 수 있었던 건, 고작 ‘사랑한다.’고 쓰여 있는 A4만한 크기의 종이 뿐이었다. 매일 책상 앞에 붙여놓은 그 종이는 슬슬 모서리가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게 다 변해지고, 바래지는 데,
그래도 내 기억에는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것들이 더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게 다 바뀌었다.
그렇다고 사람의 속까지 다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나는 정말 잘 생활하고 있었다.





학교에선 대부분 한국인이 아닌 교수가 수업을 했다. 구부렁한 글씨의 서적을 보고, 이따금 수업내용의 요지를 책이나 메모지에 휘갈기면서는 가장 오래도록 용준형을 생각했다. 아마 용준형도 나처럼,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고 꼬불꼬불한 글씨를 말하며 쓰고 읽을 테니까, 그런 걸 공유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좋았다.
영문과를 희망하고 영문과를 지원한 건 순전히 용준형 때문이었지만, 내 적성과 상관없이 난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개강부터 넌 뭘 그렇게 부지런을 떠냐, 그렇게.”

텅 빈 강의실에 처음 도착하고 덩그러니 앉아있기를 한 십분, 그 다음은 양요섭이었다. 내 옆에 앉아 잔뜩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녀석이 금방 피곤 한 듯이 책상에 엎어졌다. 그 타이밍에 첫 수업을 우르르 몰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아는 얼굴이라 건성인사를 했다.


대학교 새내기를 지내면서 그나마 동기들과 꽤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양요섭 때문이었다. 흥미보다는 조심스러운 게 더욱 많았던 때에 오지랖 하나만 끝내주는 양요섭이 아니었다면 난 분명 이 학과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전락했을 법 했다. 난 양요섭 덕에 외국물 많이 먹어 온 도도시크의 표본인 장현승을 알게 되었고, 양요섭보다 더 대인배를 자랑하는 동기 과대 윤두준도 알게 되었다.

그냥 아슬아슬해 보였어, 너.

양요섭은 내 첫인상을 그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은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양요섭은 제 주량을 항상 간과해서, 나나 윤두준의 등에 업혀 집에 들어갔고, 윤두준은 과에 대한 일이라면 워낙 빠삭해서 우리를 대부분은 잘 이끌었다. 장현승은 그나마 내가 알던 용준형과 비슷한 캐릭터였는데, 말을 좀 딱딱하게 해서 그렇지, 친한 사람은 은근히 잘 챙겼다. 개강 첫 날이라고 방학 때 리듬을 고스란히 달고 온 양요섭에게 장현승은 쯧쯧 혀를 차며 손가락질 했고, 윤두준은 그냥 바빴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오래 일대일, 용준형과 나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서 그런지 처음에는 이 시끌벅적한 셋이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곧 쉽게 순응한 관계는 그런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난 그들 사이에서 도가 넘게 웃지도 않았고, 말도 아꼈으며,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양요섭은 심지어 조용하고 고요한 내가 심심하다고까지 얘기했다.
그리고 양요섭은 술에만 취하면 나에게 왜 우리한테 마음을 열지 않느냐며 으름장을 냈고, 윤두준은 주사니까 신경 쓰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고 장현승은 그 와중에도 또 다른 화제를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드문드문 이어간 것이, 몇 개월을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지금의 나를 알게 되었다.

그냥, 모든 게 결여되어 있었다.
이미 쏟아 낸 것들이 너무 많은 과거로 인해, 내가 다 소멸된 것만 같은 느낌을 이 무리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공강과 휴강이 있으면 꼭 넷이 캠퍼스와 가까운 영화관에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녔는데, 슬픈 영화를 봐도 한 번을 울지 않는 나를 녀석들은 참 의아해했다. 양요섭은 눈알이 시뻘개 지도록 울음을 참으면서 나에게 신기하네- 를 연발했고, 왠지 안 울게 생긴 윤두준도 울고 나선 나에게 슬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성격이 매끄럽지 않은 장현승도 슬프거나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매한가지로 울었는데, 나는 유독 눈물이 없었다.
내가 울지 않게 된 이유를, 난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대부분은 웃었다.
슬퍼도 웃었나보다.

그러면서, 역시 나만의, 이제 내 생각 속에 선명한 용준형을 꺼내보았다.




대학교 1학년이 되던 날부터, 부모님 몰래 과외자리를 알아보고 다녔다. 그땐 용준형이 있을 타국으로 떠날 비상금을 모을 참이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냐면 시험기간까지 시간을 쪼개고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꽉꽉 과외 스케줄을 잡을 정도였다. 번번이 1학년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비행기를 타는 걸 실패하게 된 것은, 유난히 자주 끊기는 과외자리로 인해 잘 모이지 않는 돈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학 때 한창은 성수기라 비행기 값이 어디든 폭등하곤 했다.
그러니까 단 며칠도 어림없었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가지고 다른 나라 땅덩어리를 배회하며 용준형을 찾아다닐 나는, 상상 속에서도 그야말로 우주미아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윤두준은 제 과외자리가 귀찮아졌다며 나에게 양도하기도 했고, 장현승 역시 얕은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과외자리가 들리면 날 먼저 추천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제지를 한 건 역시 양요섭 뿐이었다.
유난스럽게 과외에 집착하는 내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는 양요섭은 언제나 나를 나무랐다.

작작 좀 해. 이기광. 너 그러다 쓰러진다.

결국은, 셋 다 나에게 한 없이 좋은 녀석들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은 다 시간 비워야 돼.”

수업은커녕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으로 마무리 된 수업 때문에 다음 수업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았다. 양요섭이 아침도 못 먹고 왔다며 허기를 채우러 편의점으로 장현승과 나를 끌고 마지막은 윤두준이 따라 붙었다. 안 그래도 금요일, 금요일 노래를 부르고 다닌 윤두준은 신입생 환영회가 정확히 잡힌 날을 우리에게 공지했다.

과외.
내 머리에 과외선생 딱지라도 붙었는지, 장현승과 윤두준이 금요일의 내 과외 스케줄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 물론 방학부터 이어진 과외가 금요일에도 잡혀 있었다. 하필 고등학교 3학년의 과외라 미루거나 빼는 것도 쉽지 않아 난감한 얼굴을 하자, 윤두준에게서 늦게라도 꼭 와야 한다는 약속을 억지로 해냈다.
하긴, 과대체면을 세워주려면, 그런 모임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장현승도 양요섭도, 심지어는 나도 이게 윤두준의 일인 줄로 여기고 나름은 성실한 참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실은, 신입생환영회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 어쨌든 꼭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자리가 그렇게 난장판으로 술을 벌이는 줄 몰랐고, 내 몸에는 술이 잘 안 받는지, 한 주를 내내 속앓이 했던 기억에 구토가 밀려왔다. 끔찍한 날이었다. 게다가 생판 모르는 신입생들과 말을 섞으며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도 관심 없었다.
윤두준의 옆자리는 어림도 없을 거고.
어떻게든, 양요섭이나 장현승의 옆자리를 꿰어 차고 앉아야 그나마 그 시간을 잘 견뎌낼 텐데.
과외가 있으니 가장 느지막이 도착해서 귀퉁이를 잡고 앉는 게 맞는 거라서 왠지 걷잡을 수 없는 한숨이 밀려왔다.

뭐하냐, 너.

퉁명스럽게 묻는 용준형의 얼굴이 생각났다.
나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에 부응하듯, 용준형이 날 꾸짖는 것 만 같이 느껴졌다.
……
……
같은 대학에 오자고 했던 너인데.
혼자, 한국에서, 대학에서, 생고생 하고 있는 내가 안 보이냐고, 발버둥치고 있는 내가 정말 보이지 않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니, 따지지 않아도 좋다.
녀석이 곁에 있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_







신촌어딘지알지. 어서와. 기다린다.

술자리가 정신없을 테니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안 가려고 마음까지 먹었는데, 과외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한 게 무색할 정도로 정확하게 윤두준에게 문자가 왔다. 신촌 거기라면, 그래. 우리가 일 년 전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또 그 밖에도 자주 술을 마시러 들르는 장소였다.

과외끝났어?

양요섭에게도 문자가 도착했고,

야,오지마.여기완전개떡이야.

현승에게서도 문자가 도착했다.

살풋 이어지는 미소 속에 낮게 한숨을 쉬고, 신촌으로 향하는 길이 좀 더뎠다. 과외 하는 학생 네 집을 나와서 몇 걸음을 걷다가 곧 멈춰 섰다.
여기.
지리가 약간 내가 전에 살던 동네와 비슷했다. 전철역으로 가는 골목에 유난히 고장이 나려는 가로등 하나가 빛을 냈다가 말았다가 깜박깜박 했고 난 전 주와 다름없이, 멍청히 서서 가로등이 꺼질 때마다 몇 번을 그 순간 눈을 비비고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찰나 사이에 꼭 용준형이 쨘 하고 나타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를 점검을 해보았다. 용준형을 향한 마음이 힘차게 뛰고 있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돌아보고 살피며 용준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2차래.

신촌에 도착했을 땐 이미 2차로 자리를 옮긴 뒤였다. 장현승이 어디어디 쯤 와있으면 마중 가겠다고 나섰고, 내가 익숙한 장소에 다 왔을 때쯤 장현승이 이미 나와 있었다.

“오느라 수고했어.”

별로 2차까지 온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나름은 반갑게 내 어깨를 도닥이며 격려했다.
윤두준은 완전 정신없고, 양요섭은 뻗기 일보 직전. 이라고 간단히 정리한 술자리만 봐도 장현승의 관심사는 딱 둘 이상 없었다. 명색이 신입생 환영회인데, 신입생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 새싹은 여자가 많아. 정도.
하긴, 우리 학번에 유독 남자가 많았었다.


1차도 모자라 2차도 결국 술집이라서, 장소가 구리다며 장현승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윤두준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고, 양요섭과 윤두준은 장현승의 뒤에 선 나를 확인했다.

“이기광 선배님, 오셨네.”

저들끼리는 인사가 다 끝났는지, 얼굴이 벌겋게 오른 양요섭이 날 소개하고 나는 곧 들려오는 쏟아지는 인사에 구십 도로 허리를 꺾었다.
역시, 적응은커녕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기 가장 좋은 자리. 날 가장 문 쪽과 가까이 오픈된 자리에 앉힌 현승의 배려가 무색하게 제자리에도 앉지 않고 내 자리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윤두준은 맥주가 가득한 잔을 들고 와서 원 샷을 외쳤다. 장현승은 얘, 과외 때문에 아직 저녁도 못 먹었거든? 하고 흑기사인척을 했다.

일단은 맥주 말고 물을 외치던 나에게 현승이 가까운 탁자의 물 컵을 건넸고 앉은 자리에 쪼그라들 듯이 구겨져있었다. 좀처럼 윤두준에 의해 내게 집중된 시선이 분산되질 않아서 진땀을 삐질 흘리며 물을 반 모금정도 마시고 곁눈질로 새로운 얼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장현승의 말대로, 여자의 얼굴이 더 많았다.

“으왓---”

야, 휴지휴지.
기광아, 괜찮냐?

순간, 물이 가득 찬 컵을 놓치면서 내 바지가 온통 물로 젖어들었고 심지어는 뚝뚝 떨어지던 물기에 한쪽 신발 안이 잔뜩 젖어 양말까지 축축했다. 휴지를 한 통 들고 온 윤두준과 그걸 받아 든 장현승의 타이밍에 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

“…나 화장실 다녀올게.”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꽤 동요하는 내 얼굴이 고스란히 보이는 지, 윤두준과 장현승이 왜 그러냐고 물었고, 잔뜩 취한 양요섭 조차 내 자리까지 몰려왔다.

……
……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
…뭐? 마음의 준비?
기광아.
야, 이기광.

“화장실. 다녀올게.”

괜히 술자리 분위기가 나 때문에 망쳐지는 것 같아 미안해서, 고개를 잔뜩 푹 숙이고 그 자리를 뛰쳐나왔고, 자리를 이끌어야 하는 윤두준을 제외한 양요섭과 장현승은 나를 뒤따라 나왔다.

“야, 화장실, 이쪽이야.”
“야, 이기광.”

녀석들의 말투에서 잔뜩 묻어나는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 지금의 나 자신에게 고스란히 옮겨오는 걸 보면, 내가 꽤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가슴을 움켜쥐고 술집을 나오자마자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눈을 꽉 감고 숨을 몇 번이나 깊게 들이마시고 쉬어내기를 몇 번 하자마자, 다시 현실을 직시했다.
……
고등학교 때와 사뭇 다르게, 조금 길어진 머리.
그리고 완연한 검은색도 아닌 갈색머릿결.
내가 본 것들이 정말 보았던 것인지,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실은, 닮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낭패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지금 혼란스럽다는 게 한심했다.

“괜찮아?”

기광아. 이기광.

고개를 다시 바로 하고 앞을 쳐다봤을 때에는, 장현승과 양요섭이 앞에 있었다. 늦은 저녁의 찬 기운에 잔뜩 몸을 떨다가 전혀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내어보았다.
이런 것으로, 괜찮다는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등 뒤로, 어깨로,
따뜻하고 익숙한 체향과 긴 팔의 무게감이 한껏 쏟아질 듯 내려앉은 무게에 기우뚱하고 반걸음을 다시 디뎠다.

“다녀왔다.”
“…….”

…이기광.

넓고 딱딱한 가슴과 온전히 맞추어져있는 등으로 나지막하고 작은 퉁명한 목소리에, 코끝을 잔뜩 찡그렸다.
갑자기 만감이 교차하면서, 숨이 가빠지 듯 거칠어졌다.
……
………

앞에 선 양요섭과 장현승이 곧 정말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기광아,”
“…너 울어?”

야.
……
너.

입을 틀어막았고 최대한 어깨를 좁혀서 아무것도 내비치질 않으려고 기를 썼는데,
부질없이.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흐드득-- 하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울지 않는 나를 알고, 그동안 그렇게 보았던 두 녀석은 곧 일시정지 되어있는 것처럼 아주 흐릿하고 또한 선명하게 내 시선이 맞추어져있었다.

…으으으.
……
흐으.

여태껏, 너무 오래 참아온 것들이 아프게 쏟아져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자, 그제야 나를 돌아 세운, 녀석은.
용준형은,
아주 자연스럽고 언제나와 같이, 변함없이 비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뭐냐.”

……
하여간.
……
…울보.

용준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마나 목청껏 소리를 내며 울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두 팔을 벌렸고,
벌어진 팔로 용준형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나는 녀석에게 안겨진 듯 안았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는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다 헛것이라고 믿어왔는데.

정말 내 눈 앞에 용준형이 있었다. 예전과 별 달리 달라진 것도 없이, 여전히 멍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퉁명스런 목소리를 내고 이따금 비죽비죽 웃어대며 빈정거리기만 하는 용준형이.

내 눈 앞에, 생경한 네가.

나와, 함께 있다.









to be continued

감정의 폭발과, 폭로된 사실.

 
나 타 났 다☆ 기광이는 우는데, 준형이는 별로 달라진게 없는데도- 기광이는 생경하다고 그러네요.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해가는 것들에,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그래도 변하지 않은 마음에, 돌아온 사람에..
 
푸리에님.......... 결국 만나게 해주시네요. 미성년으로 끝나는 줄 알았드만, 성년이 또 나오네요? 와 이런 선물같은!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푸리에님 짱! 아아 힘겹게 시험 끝내고 과제 밤새서 하다가 들렀는데 이런 감격을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푸리에님!
다음 글이 또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 저는 마냥 기쁩니다!!!!!! 주녕이랑 기광이 이제 아프지 말구 사랑만 했으면 좋겠어요!
 
내 눈 앞에, 생경한 네가, 나와 함께 있다.
모든 걸 정리하는 한 문장이 뭉클한 이유는, 말로 다 못해도,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겠죠? 울 수 없었던 기광이를 왈칵 울게 만든 장본인도- 마음 속으로는 조금 울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의 제목은 성년의 날 이지만, 그래도 저 아이들, 아직 메마른 어른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러지 않기를 바라요!
 
어뜨케요 눈..나..저 진짜 누나 사랑하나봐요 마지막에 기광이 우는게 너무 생생하구 가슴아파서 진짜...미성년의 날이 끝인가 했는데 이렇게 성인이 된 애들 얘기도 써주셔서 전 너무 기뻐욤ㅠㅠ
 
투비컨티뉴면 다음도 있다는건가요?
둘이 헤어지고 그대로 끝인줄 알았건만...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렇게 다시 만나게 해주시네요.
푸리에님 글은 항상 제 뻔한 감성을 깨워주시네요.ㅠㅠㅠㅠㅠㅠㅠ
 
후와-*
누나 마지막까지 읽고서야 숨이 겨우 내쉬어져요, 아 용준형이 왤케 멋있는거에여ㅠㅠㅠ
용준형이 말에 눈물을 터트리는 이기광이의 모습에 저도 같이 울뻔햇어요-*
이 밤에 저의 감수성을 잔뜩 깨어주시네요-*
 
아,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어쩜 이렇게 잘 쓰시는지, 정말 몰입해서 보았습니다. 정말 읽는 내내 언제 마지막 문장이 나올지몰라 조마조마하며 읽었다구요. 확실히 연재중인 글 보는 일이란 정말 똥줄 타는 일이네요. ㅎㅎ 볼때마다 늘 느끼는 건데, 정말 제 취향에 쏙 맞는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간결하면서도 의미있는 문체에, 어두운 것도 밝은 것도 아닌 흐린 느낌의, 소년의 느낌이 살아있는.. 막상 말로 표현하자니 잘 되지 않네요. 아무튼 이 홈페이지에 들리는 것이 제 삶의 낙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준형이를 얼마나 그렸을지 상상도 안가는 기광이에게 생경한 준형이는 조금 무섭네요.
서로에게 익숙함이 가장 큰 무기였을 아이들이었는데 성년의 날이라, 미성년과는 어감부터 달라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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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중의 하나인 감정의 폭발.......!!! 지금껏 겨우겨우 참고 숨겼던 감정들이 한번에 폭발할때 전 정말 미칠거같아요. 정말 잘 기다려준 기광이가 다행이네요. 둘의 성년의 날이 기대가 되요. 이제 안정을 되찾았으면 싶네요.
 
아 짓쨔 미칠 거 같아요. 너무 좋네요!!! TxT 준형이를 만나고, 울음을 터트리는 기광이가 너무 좋아요. 등뒤로 감싸며 돌아왔다 하는 것두요. 아 앞으로의 글이 더더욱 기대가 됩니다!
 
몇번을 읽어도, 볼 때마다 눈물이. 첫화부터 울어버리면 어쩌죠 저는. ;)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한번도 울은 적 없는 기광이라고 알고 있던 두 사람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아마 기광이의 감정은 용준형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 같아요. 얼른 담화 보러가야지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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