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login



사그라들 줄 모르는 용준형에 관한 소문이 전교에 장대하게 확장되었고, 용준형은 전교생이 시험을 보는 와중에도 시끄럽게 교무실을 오가야했다. 녀석 덕에 전 주에 미리미리 시험 준비를 해 놓은 게 다행일 정도로 나는 절실하게 용준형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학생회실에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교무실에 들어가면 또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은 제발 좀 먼저 가라.”

내일 시험 볼 거 공부 안 하냐.

용준형은 그런 나를 심하게 귀찮아했다. 시선을 낮게 깔아서 날 은근히 내려다보며 무시하는 투로 쳐다보면 내가 억지로 웃었다. 절대, 나 역시 혼자는 집에 안 갈 요량이었다.

학교는 이 사건으로 인한 학교의 술렁임을 없애려면 용준형의 퇴학만이 유일한 비책인 양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그 누구도 소문이 정말 진실인 건지 용준형의 아이가 맞는 건지 아닌 건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임신을 한 여자 따위 똑똑히 본 적도 없으면서 그 여자가 진짜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 안중에 없었다.
우스웠다. 나로 인해 망가진 용준형이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신임을 잃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 간과하고 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이 미칠 것 같이 싫었다.

교무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용준형의 가방에 들어있는 오늘의 시험지를 펴보았다. 확실히, 1학년 때 마지막 시험보다는 월등히 시험을 잘 본 상태였다. 이런 보상으로도 전혀 가라앉지 않는 마음들이 이번 주 내내 나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오만 가지의 마음과 감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나는 그 동안 녀석에게 받아 온 수많은 위로 속에서, 정작 내가 용준형을 위로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새벽 두어 시쯤 시험공부를 대강 끝내, 자려고 책상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창문 밖에 용준형이 서성이고 있는 걸 알아채었고, 나는 곧 서둘러 카디건 하나를 몸에 둘렀다. 고장 나 불을 낼 줄 모르는 가로등에 잔뜩 몸을 기대고 아까 전 내가 가방 안에 넣어둔 내일, 아니 오늘 몇 시간 후면 치를 시험의 요약본을 들고 있는 용준형은 꽤나 지친 어깨를 하고 있었다.

“왜 나왔냐.”
“불도 없는 데, 글자가 보이긴 해?”

무슨 말을 해도, 어쨌든 툴툴대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억양에도, 열심을 내고 있구나. 뼈저리게 그 마음을 알아채었다. 용준형은 내 팔 언저리를 끌었고, 나는 녀석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매사에 추위를 잘 타는 걸 알아서 체온이나 나눠줄 겸했던 녀석에게 내 몸이 달려오자 두어 번 뒷걸음질을 쳤다.

“졸리다, 준형아.”
“들어가서 그만 자. 그럼.”
“같이 자면 좋을 텐데.”

……

허리를 붙든 손을 놓지 않으려고 녀석의 옷깃을 꽉 쥐어보았다.
그래, 다가가지 못했던 건 거절이 두려워서였다. 항상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 걸음씩 멀어지는 게 녀석이니까. 어떤 ‘정도’를, 지키고 싶은지 모르겠다. 용준형은, 용준형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으니까.

“까불지 말고.”
“왜.”
“…….”
“한두 번 같이 잔 것도 아니고.”

그냥 못이기는 척 따라와 주면 좋을 텐데, 토를 달아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도 내 등을 가만히 도닥이는 손이 들어가자. 하고 말하는 것처럼 뜨끈뜨끈했다.


이미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이번 주 중으로 용준형에 대한 모든 일이 정리가 될 것처럼 보였다. 시험기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약간 사그라진 소문은 아마 정말 확실시되기 전까지는 수면 위에서 곱씹혀 질 거다.
그게, 용준형에게도 상처가 되겠지.
못내 안타까워서 마음에 쓰렸다.

난 좁은 침대에 누워서 용준형의 몸에 있는 힘껏 팔을 둘러보았다.
용준형이 울었던 날처럼, 내 뒷머리 끝에서부터 뒷목, 척추를 따라 허리까지, 가만히 쓸어보던 녀석은 아주 낮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올 줄 알았는데, 오라는 잠은 안 오고, 눈물이 왔다.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포기해버렸더니, 너무 쉽게 용준형의 셔츠를 적셨다.

“…….”
“…….”

날 도닥이는 손길이, 꼭 왜 뭐가 그리 서럽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위로를 했어야 하는 건데, 지금도 녀석은 날 위로한다.

동네에 소문이 들끓었다. 알고 보니, 학교보다 동네가 더 심했다. 어른들은 드디어 용준형에게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어제 밥을 먹다가 엄마의 입에서 들려온 용준형에 대한 모진 소리를 다 못 듣고 이른 등교를 해야만 했다.
어쩌다 용준형이 이렇게, 를 생각하다가 다 내 탓으로, 내 잘못으로 돌아오는 화살에 극심한 죄책감이 들었다.

“준형아.”
“왜.”
“나 잠이 안 와.”

눈물 때문인 걸 알고 있다. 눈물이 잘 시간을 모르고 이렇게 소소히 제 구실을 하고 만다.
용준형은 축축해진 티셔츠도 모른 척을 하고 내 허리를 더 끌어안아서 날 더 따뜻하게 만든다.

“이기광.”
“응.”

잘 들어 둬.

내 귀가 먹먹해졌는지, 녀석의 말투가 먹먹해졌는지, 다 꽉 막힌 것들이 녀석과 나를 부유하고 돌아다녔다. 그래도 용준형의 말투는 꼭 자장가처럼 부드러웠다.

“아무 것도 네 탓 아니야.”
“…….”
“항상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기광마저.”

그냥 내가 만들어 낸 거야.
……
그동안, 모든 일은,
……
내가 다 자처한 거고.
……

너와 아무 관계없는 거다.

어깨와 허리를 안은 단단한 녀석의 손마저도 그랬고, 서럽고 슬픈 갖가지 감정에 무기력한 내 몸 때문이라도, 나는 용준형의 얼굴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있는 힘껏 부정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고 싶다.
내게 있었던 사건마저, 나와 함께 이지 못했던 제 책임인 것처럼 마무리하는 단어와 어감들에, 마음은 실컷 부정을 했다.

용준형을 제외한 모든 게, 다 싫어졌다.



시험이 끝나던 날, 용준형은
학교의 등쌀에 못 이겨 퇴학을 자처했고
동네의 등쌀에 못 이겨 곧 유학길에 오른다.




용준형이 처했던 위기 안에서 용준형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참아내고 또 감당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지나가면, 다 지나가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핑계마저 소문만 더 부풀려서 더 이상 아무도 용준형을 인간 취급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유학을 보내려면 임신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함께 보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에 괴로운 건 단연 나와 용준형 뿐인 것 같았다.

용준형은 소문에 대해 말을 아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나는 그냥 나인 거라고 나에겐 셀쭉 웃어 보이기까지 하던 용준형과 나는 그간 더하면 더 했지, 덜함도 없이 서로 부대꼈다. 이따금 서로 입술을 부비고 장난을 치곤하는 것은, 서로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 있었다.

“날 동정하는 거라도 괜찮다.”
“동정하는 거 아니야.”

사람의 마음에 깊이라는 걸 따지자면, 분명 용준형이 나에게 주는 마음이 100인데 비해 내가 전할 수 있는 마음은 턱없이 부족한 걸지 몰랐다. 그래서 같은 감정처럼 동등해 보이지 않고, 녀석이 나에게 같잖은 동정을 요구하는 정도이고 내가 그에 응해주는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난 용준형에게 최선을 다했다.




자다가, 꿈도 꾸지 않았는데 깨었던 이 어느 날에, 습관적으로 바라보았던 창문과, 고장 난 가로등 아래서 내 방을 올려다보고 있던 용준형이 있었던 그 때.
용준형이 담을 뛰어 올라 내 방에 들어오고, 어느 때보다 깊고 열렬하게 키스했다.

누군가에게 굴욕적으로 만져지고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많아졌을 때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난 용준형에게 만져지면서 내 생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수줍음과 열뜬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용준형에게 정확하게 마주쳐져있는 내 눈과 서로 벌거벗은 몸을 하고도 전혀 두렵지 않을 만큼, 완전한 것들을 허락하고 나니, 어떠한 족쇄에서 풀려난 것처럼 해방감이 밀려왔다.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달려들었고,
물어뜯으며,
맹렬하게 마음을 표출해내었다.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내 마음이 녀석의 마음과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_







내가 모르던 새에. 아니, 예상하던 것보다 더 일찍 용준형은 출국했다. 분명, 약속은 거짓말이 되어, 상처로 돌아왔다. 분명 어디든, 함께 이자고 했던 약속은 겨우 열여덟인 우리에게서 지켜지지 못했다. 단순히, 그냥, 우리가 어리고 연약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하루아침에 내 인생에서 도려낸 것처럼 사라진 용준형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난 용준형의 출국을 보지 못했고, 학교와 동네에는 여전히 용준형이 남기고 간 소문과 존재의 흔적이 너무 자자했다.
어느 샌가, 용준형이 떠난 뒤로 고쳐져 있는 가로등도 그랬고, 아직 다 치워지지 않은 가로등 밑 길바닥의 담배꽁초도 그랬다. 등굣길이나 하교 길에도 용준형의 뒷모습이 내겐 보여 졌다. 꿈에 매일 나타나는 용준형은 그 동안 나에게 보여주었던 끊임없는 책임감으로 매일의 나를 안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 여전히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창문을 쳐다보았다. 용준형이 없는 걸, 여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용준형이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이 학교에, 단 한 번 임신을 했다던 그 여자가 다녀갔다고 했다. 보는 것조차 두려워 보지 못했지만, 쉽게 들리는 말로 정말 누군가에 의해 임신을 했다는 것이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빠진 소문이 한 달을 채 넘기진 못했고 결국 이 아이가 용준형의 아이가 아니었음이 탄로 났다. 그 여학생은 방과 후 함께 떠돌아다니던 무리가 많아 술에 취해 어떤 한 명에게 심지어, 했는지, 당했는지 조차 분간을 못 해,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곤 했다.

학교에도 사건이 일단락이 되었다.
서서히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으로 식어지고, 난 오히려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을 왜, 나에게서 용준형을 빼앗아갔어야 했냐고, 학교에 동네에, 하늘에, 속으로 밤낮으로 하늘에 대고 소리를 쳐 보아도, 답이 없었다. 공허한 마음에 더 죽죽 말라가기 시작했다.

말라가기 시작한 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감정도 그랬다. 잘 웃지 않게 되고 표현하지 않게 된 나는 조금씩 용준형을 닮아지고 있었다. 용준형을 만나려고 밤 새 우리 집 앞 불 켜진 가로등 아래 멀뚱히 서 있기도 했고, 나야말로 한없이, 용준형의 집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혹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가지 않은 건 아닐까,
이런 착각이 다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새벽에 만난 낯선 남자에게서였다.

새벽까지 잠이 오질 않아 침대를 뒤척거리다가 일어서서 창문을 바라보았고, 그 가로등 아래는 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흡사, 용준형과 같은 느낌이라서,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여는데, 창 사이에 꼬깃꼬깃한 종이뭉텅이 하나가 끼어있었는지 내 방 안으로 떨어졌다.
일단,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난 용준형이 아니면 잘 열지 않는 창문을 내 힘으로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
“…….”

창문이 기익- 하고 시끄러운 쇳소리를 내며 열리자, 동시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의 눈이 창으로 내려다보는 나와 마주했다. 남자는 웃었다.

“내가 잘 찾아 왔나보네.”
“…….”
“네가 그 이기광?”

날이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약간의 거리가 있음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내 귀를 때렸다. 게다가 처음 본 남자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은 몸을 일으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가로등 바로 아래 그늘에 숨어있던 목발을 남자가 힘겹게 안고 온전히 서는 동안 난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한쪽 다리가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내 창문 쪽을 바라보고 가볍게 웃었다.

“준형이 얘기야.”

세상에도, 저렇게 용준형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몸이 앞으로 쏠려, 창에 한껏 아슬아슬하게 기대었다.


출국하는 날, 마지막 용준형과 전화를 한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남자는 다름이 아닌 용준형이 금요일마다 술을 뒤집어쓰는 이유에 속해 있었다. 용준형과 나보다 세 살 정도 많은 남자는 용준형보다 심하게 비행을 했고 이제야 겨우 맘 잡아 검정고시에 준비하는 고학생이었다. 집도 절도 없어서 하던 알바가 있었고, 가볍지 않은 사고로 현재 다리병신으로 있다며, 남일 인 듯 내게 설명을 했다. 현재는 발목을 집고 있지만 처음에는 누워서 허리도 못 폈고, 좀 나아져서 휠체어를 탔고, 그 다음 이렇게 목발. 순이었다.

남자가 일하던 클럽에서 어쭙잖게 처음 만나, 어쩌다보니 속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고 요약한 말에, 분명 남자는 용준형을 ‘미성년자’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미성년자주제에 제일 힘들다는 알바까지 대신 뛰어줬었지.”
“…….”

그 미성년자가.
……
…출국하는 마지막까지, 알바 어쩌냐고, 이제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밤 새 야간까지 일 있으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 선뜻 제 일도 아니면서 도맡아 해주고, 거기 일해서 받은 돈도 다 치료비에 보태라고 주는 마음씨를.
……



그리고 용준형이, 내 앞에서, 울었던 날,
남자는 그제야 처음 녀석에게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물론 내 치부와 관련된 것들이 아니라, 용준형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네 얘기를 할 때는 항상 어쩔 줄을 몰라 해서,”
“…….”
“내가 많이 놀려먹었지.”

항상 기다리곤 한다는, 가로등이 원래 고장이 나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하고 말을 흐린 남자와 나는 이젠 불이 환히 켜진 가로등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가로등에서 창이 제일 잘 보이는 집이라곤 여기밖에 없어서.”

남자는 크게 한 번 하하, 웃었다.
그리고 금방, 숨이 멎을 것처럼 잔잔한 침묵이 찾아왔다.

“미성년자가, 너한테는 말을 못하겠다고.”
“…….”

나한테 전화를 해서 처음 울었어.
……
간다는 말을,
……
…못했다고.

아주 작고 미세한 남자의 숨소리까지 다 들려 올 정도로 난 녀석의 마지막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멈춰보았다. 난 지금 용준형을 원망하고 있었다.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냐고, 마음은 다 줘놓고, 왜 소소한 것들을 그렇게 혼자 간직하고 있었냐고, 실컷 따지고 싶었다.

미안하고.
……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
했다.

용준형의 품에서 절실히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 용준형과 함께가 아니면,
울지도 않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_







얼굴부터 눈까지 퉁퉁 부었던 다음 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느릿느릿 집에 오는 길에 용준형의 집 쪽으로 골목골목을 비잉 돌아 집에 도착했다.

난 더 이상 고통스러운 꿈 따위 꾸지 않게 되었다. 다만, 용준형의 가방 속에 덩그러니 있던 내가 사준 우유나 빵. 아니면 함께 지각했던 날 40바퀴를 뛰어야 했던 용준형이 내 엉덩이를 도닥였던 순간 같은 아주 일말의 시간들이 반복해서 나오거나, 용준형과 수많은 입술을 나누었던 기억과 단 한 번 몸을 부대낀 시간들까지 방대하게 내 꿈을 장식하곤 했다.
행복한 기억을 남긴 용준형이 어느 순간에도 아프지 않게 다가왔다.

비록 남자를 통해 들었지만,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용준형의 말이.
확신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구석에 동그랗고 납작하게 말린 종이 뭉텅이를 보았다. 어제, 분명 창을 열면서 방 안으로 떨어진 쓰레기 같았다. 난 그 꼬깃꼬깃한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방을 다 뒤져도, 엄마가 방을 치우시다가 쓰레기통을 가지고 나가버렸는지, 있던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문득, 그 종이를 펴보게 되었다.

“…….”

정말 누가 보면 쓰레기 정도로 취급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꼬질꼬질한 종이가 A4용지만큼 납작하고 넓어졌을 때,

“…….”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의 한 가운데 최대한의 정성스러운 글씨가.

‘사랑한다.’
……
……


용준형이 나에게 주었던 마음에 비하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꽉 찬 감정에 비하면,
난 여전히 용준형에게 그저 그런, 초라한 마음밖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워서 슬픈데도 눈물이 나질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용준형이 나에게 끝도 없이 내달렸던 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나를 향해 걷고 있을까, 점검해보았지만, 역시 용준형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동안 느리게 걷고 있었던 내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용준형에게 질주하고 있다.










fin. 20100414-20100427

마음의 템포가 온전하게 같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후속작으로 '성년의 날'이 있습니다.

 
와. 와. 와. 숨죽이면서 읽습니다.
용준형이, 이기광이 절 퇴근을 못하게 잡습니다. (....) 일단 퇴근하고(...) 내가 차마 이곳에 전하지 못한 말들을 내 이야기와 함께 곧 쏟아낼께요. 우울한 날들의 행복한 기억입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한다고, 딴에는 정성들여서 썼겠지만 왠지 삐뚤빼뚤할 것만 같은 글씨가. 지금 눈 앞에 둥둥 떠다녀요.
언젠가, 돌아오겠지요. 그리고 다시 사랑하려나요...ㅠㅠ..
 
사랑한다 라는 말을 보자마자 가슴이 너무 절절하고, 아려왔어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요! 번외로 행복해진 그들의 모습을 좀 써주세요.. 이대론 여운이 가시지 않아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푸리에님. 이 감동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준형이는 끝까지 너무나 멋있는 남자네요. 기광이의 마음이 준형이에게 질주할 수 밖에 없네요.
준형이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확신이 들어요. 준형이 없이 살 기광이랑, 기광이 없이 살아갈 준형이가 안타깝지만 그 둘에겐 서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언젠가 만나고, 보다 깊은 사랑을 하겠죠. 참 예쁘네요. 슬픔, 집착, 책임, 사랑 등등. 둘 사이에 있던 감정들이, 마지막 '사랑한다'라는 준형이의 소리내지 못한 마음에 휘리릭- 스쳐지나갔습니다. 기광이의 꿈에 나오는 둘의 시간을 제가 공유하는 느낌?! 이런 멋진 글을 써주시다니, 푸리에님 사랑해요...☞☜
푸리에님이 아니셨으면 저 형광 소설 보지 않았을텐데. 이 매력적인 형광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푸리에님... 만세!!!!
 
사랑한다는 네 글자에, 마음을 다 담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음을 제일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단어가, 사랑한다- 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묵묵히 제 자리에 있었던 준형이에게는, 그리고 유난히 상처가 많은 기광이에게는. 그래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서로를 향해 있다는 건 가장 즐거운 일이네요. 녀석들에겐 견고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어떻게, 마주하게 될런지. 잘 읽고 갑니다, 푸리에님:)
 
발가락을 오므리고 등을 구부리면서 보게 되네요, 절대 요즘 쓰는 오그라든다거나 하는 느낌이 아닌데도,, 자꾸 입술을 깨물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읽게 되던 글이예요.
 
위태롭고, 위험하던, 또 어떻게 보면 불완전한 둘의 사이가 언젠가는 완전해지겠죠. 비록 서로가 느꼈던 감정의 길이 살짝 엇갈렸다 해도, 그래도, 그것이 저들에겐 사랑이니까. 보는 내내 아팠지만, 이제 그만 아파도 될 때입니다. 곧, 바로 지금이요.
delete
마지막 사랑한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나버렸네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둘의 웃음을 보지 못한채.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버려서 속상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행복해질 둘을 생각해봅니다.
 
다시 읽어도 너무 애틋한 글이에요. 딱 그나이대의 위태로움이 있는 글, 준형이가 돌아왔을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사람이 됐으면 하는데 글이라지만 소문이라는게 참 무섭기도 하구요. 그런 소문과 기광이를 감당해야 했을 준형이와 그런걸 감내하는 준형이를 감당하면서 그게 자기탓이라고 생각했을 기광이가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 : )
delete
늦었어도 댓글을 쓰고싶었어요. 아직 다 여물지 못한 알알이 풋내기들이라서 더 마음이 울렁이는 글인 것 같아요. 불꺼진 가로등 아래 용준형이 허상이 아니라 실제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글입니다. 문장이 하나하나 예쁘고 몽글몽글해서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이렇게 조용하고 잔잔한 문체인데도 계속 읽고싶다니. 심지어 재밌다니.. 푸딩같이 예쁘고 몽글몽글한 글이라 무더운 여름밤에 꼭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럼 전 이제 성년의 날을 보러 갑니다~~
delete
사랑한다. 으씨. 용준형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다 나네요.
이제 둘의 성년의 날을 봐야겠어요. 감사히 잘 읽고갑니다.
 
아. 이 감동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잔잔한 문체 참으로 좋아하는데, 푸리에 님 덕분에 형광이 더 좋아지고 있어요. 진짜. 준형이가 너무 멋있어서 가슴이 뭉클해져와요. 성년의 날에서, 시간이 흐른 뒤 조금 더 성장한 둘의 이야기를 기대해볼게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남자가 기광이에게 준형이 얘기를 하는 그 장면은 정말..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정말.. 내가, 이기광보다 더 이기광이 되어버려요. 그리고 종이를 펼치는 순간.... 아ㅠㅠ 다시 읽는 거지만 미성년중에서 마지막편이 제일.. 맘 아프고 또 와닿기도 하고 그러네요ㅠㅠ
 
와 진짜 어떻게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있죠. 미성년의 날에서 나오는 사랑이야기가 너무너무 예뻐요. 진짜 눈 하나도 깜빡이지 않고 봤어요. 성년의 날 보러가야겠어요
 
으와ㅠㅠㅠ뭔가느낀건많은데 뭐라고 표현할순없네요ㅠㅠㅠㅠ준형이의 감정이. 이해가되면서ㅠㅠㅠㅠㅠ미성년의날. 잘읽었습니다!!성년의날을 읽으러가야겠어요~
 
되게 느낀게 많은 글같아요. 뭐라 설명할수없는 감정이지만ㅠㅠ 가슴이 먹먹하기도하고 그러네요! 미성년의날잘읽었습니다!
 
말이란게 생각하는 사람마다 어떤마음으로 하는지 사람마다 다다른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분명 용준형은 이기광에서 뚝뚝흘러내릴정도로 가득찬 마음을 주었어요 그런데 분명 이기광도 표현은 하지 못했으나 용준형이 떠나간 후에라도 초라한마음이 아니라 계속 흐르고 있는 마음까지 준거라고 생각해요 기광이한테 말해주고 싶네요 절대 초라한 마음이 아니라고 얼만큼 많이주고 얼만큼 조금주고 그런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용준형은 이기광에게 마음을 주었고 이기광은 그사랑을 받았고 그사랑을 받아 준 그 자체가 용준형에겐 행복이였을 거라고 방법이 다르게 사랑하고 사랑받아서 그 둘의 마음의 크기는 비교할수 없는 거라고 사실은 너도 열렬히 사랑했었더라고
 
항상 네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기광마저 자기가 만들어낸 것이라며 모든 짐을 다 자기가 끌어안고 가는 준형이와 그 속에서 안식을 찾는 기광이, 둘은 둘이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말 그대로 미성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글을 읽는 내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둘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은 넘치기만 해서 그걸 어떻게 주체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쉽사리 뱉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아프고 느끼는 걸 보면서 저도 같이 성장해가는 기분이었어요. 벌써 세 번 넘게 읽었던 글인데도, 또 봐도, 늘 좋네요. 이번에도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저는 처음 읽은 형광입니다... 그래서 이번이 몇번째인지도 모르고 항상 생각나면 이곳으로 달려와 읽었는데, 그동안은 댓글도 아꼈던게.. 마음이, 감정이 다 표현이 될까, 내가 그만한 표현력이 있을까 싶어서 눌러담기만 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서툴지만 감사의 인사라도 하려구요...
참 기광이는 감정이 많은거 같아요.. 겉으로는 조용하고 ,준형이 밖에 모르는 애지만 속으로는 감정이 넘치고 넘쳐서 늘.. 아팠던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잔잔하고, 이쁘고.. 자신때문에 삐뚤이가 된 준형에게 가졌을 죄책감과 미안함이, 또 그걸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미안함까지 더해져서.. 더 많이 아프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준형이는...... 우리 마음도 따뜻한 미성년자, 제 일도 아닌데 밤샘 알바도 하면서... 이런 따뜻한 준형이를 기광이만 알아서.. 너무너무 좋으면서도 마음이 짠하네요.. 준형이의 부모님도 모르는 준형이는.. 겉으로는 비행청소년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크고 성장한 준형이는.. 제가 봐 왔던 어떤 사람들보다 멋진 소년이에요.. 기광이에게 한번도 재촉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안기면 안기는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잡아주는 준형이가 있어 기광이가 정말로 많이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어떤 글보다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이런글을 써 주셔서 참, 감사드려요
name pass
lis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