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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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준형은 새벽부터 아침 늦게까지 내 방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 약국 문을 열 시간에 맞춰 나갔다가 숙취해소를 위한 음료와 머리 아플 때 먹는 약까지 사다 날랐다. 놀토에는 학교에서 자율학습이 있었다. 아직 고등학교 1,2학년은 3학년에 비해 놀토의 자율학습이 강제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놀토에 학교에 가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벌써 용준형과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1년도 넘은 그 사건은 우리에게 아직까지 깊은 흉터와 같아서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상하다. 그 때의 사건은 기억에 선명했지만 감정의 기복은 많이 수그러질 데로 수그러들었는데, 정작 나는 그럴수록 더 용준형에게 집착했다.

“뭐하냐.”

해가 중천에 뜬 12시가 되어야 침대에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일어나 앉은 용준형은 책상에 앉은 나와 책상에 잔뜩 펼쳐져 있는 문제집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녀석에게 아침에 사다 놓은 약을 챙겨주었다. 먹고 더 쳐 자던가. 약과 음료를 단숨에 삼켜버린 용준형은 골골한 얼굴을 하고서 멍한 척 웃었다.

“뭐하냐고.”
“공부해.”
“공부? 왜.”
“우리 다음 주 시험이야.”

아, 그르냐?

다음 주가 시험이 아니더라도, 학생의 본분이 늘 그렇 듯 공부인 것을. 꼭 시험 따위는 남의 일처럼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도로 누워버리는 용준형이 아까와는 달리 내게서 돌아누웠다. 그러자 구부정하고 마른 등이 보였다. 내가 모르는 줄 아나본데, 용준형 역시, 내가 뭘 먹어도 쭉쭉 말라가던 그 때, 함께 깡 말라가기 시작했다.

“잘 거야?”

……

“놀톤데, 우리 영화 볼까?”

……

“준형아, 우리 시험도 있고, 내가 무료과외 해줄게.”

나는 책상에 거의 두 개씩 꽂혀있는 교과서를 뒤적거렸다. 용준형의 교과서가 대부분 내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때가 타지 않은 녀석의 교과서에는 표지에 자필로 쓴 몇 학년 몇 반 용준형 밖에는 아무런 글씨도, 심지어 낙서와 그림도 없었다. 파라라락--- 길게 녀석의 새것과 같은 교과서를 대강 넘겨보다가 침대에 누운 뒤통수를 한 없이 바라보았다.

“준형아, 자?”
“안 자.”

기척도 안 하더니 한 번, 용준형이 침대에서 뒤척였다.

“등 돌리고 눕지 마.”
“…….”
“나 서러워.”

그러면 슬그머니,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웠다. 조금만 뒤척여도 아직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래도 코 빨간 고주망태 아저씨들보단 용준형에게서 나는 술 냄새가 더 견딜 만 했다.
나는 침대 맡으로 가서 무릎을 세우고 침대에 턱을 괴었다. 눈을 감고 잔뜩 인상을 쓴 용준형은 여전히 숙취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토하려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피부미남이라고 놀리듯 얘기했었던 어린 날과는 다르게 담배도 하고 술도 하는, 일찍 어른 같아져버린 용준형은 부석부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부하자, 준형아.”
“…….”
“너 나랑 같은 대학 들어간다며.”

용준형은 눈도 뜨지 않고 그게 언제 적 이야기냐며 생각도 안 난다는 듯이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는 첫 시험이었다. 용준형은 1학년 때 그 큰 말썽을 이후로 성적이 급추락 곡선을 그렸다. 나도 잠깐 떨어지긴 했지만, 그건 잠시였고 다시 제 상태를 찾았다. 그러니까, ‘내’ 일에 가장 많이 흔들린 건 내가 아니라 용준형이었다.
……
이기적인 내가 나를 돌아보느라고, 용준형을 돌아보질 못했다.

“유학문제도 그래.”
“…….”
“네가 맘을 못 잡으니까, 자꾸 보내려고 하지.”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
……

내가, 너를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이중적인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밀려와서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녀석의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용준형. 공부해. 나랑 놀아. 놀면서 공부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가만히 누워 숨만 쉬고 있는 용준형이 미워서,
녀석이 버릇처럼 나에게 하 듯, 이제는 나보다 조금 더 통통한 녀석의 볼을 잔뜩 이를 세워 깨물어버렸다.

“…….”
“…….”

그 순간, 눈을 번쩍 뜬 용준형은 제가 아팠던 만큼보다 더 세게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악. 비명에, 히끅, 딸꾹질이 날 만큼 놀란 내가 한 번 더 딸꾹질을 하며 용준형을 쳐다봤을 때, 녀석은 웃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시점에선 웃는 게 아니야.

“아팠냐?”
“…….”

난 고개를 다시 끄덕였고 그래도 녀석은 웃었다.

“진짜 아픈 게 어떤 건지 가르쳐 줘?”
“…….”
“어? 이기광.”

갑자기 웃는 낯의 용준형이 무서워져서, 난 예전에 용준형에게 안겼던 것처럼 용준형을 안았다. 어차피 안았지만, 안긴 것과도 비슷했다. 왜 그래. 나한테 그러지마. 준형아.

마음에 병이라도 생긴 것처럼 언제나 생채기에 발작을 하고 나면 나 좀 책임져 달라고 용준형을 불렀었다. 용준형에게 그런 일들이 아픈 건 줄도 모르고 매달렸고, 내 생채기가 아물어 갈 즈음에는 용준형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더, 비행에 시달려갔다.
어렸을 때는 더했다. 사랑받지 못한 게 한스러워 악만 남은 용준형이란 꼬마는 고열에 시달려도 고집을 피우다가 실신지경에 나서 몸을 못 가누고 나서야 제 성질을 죽이곤 했다.

그래, 진짜 아픈 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고,
그 마음의 병이 몸까지 옮으면 대책이 없어지는 거다.






_







주말에 용준형과 결국 꼭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시험공부 겸 과외도 했다. 나는 월요일 등교하는 길에 무진장 신이 나 있었다. 거의 소멸지경까지 갔던 온갖 긍정적이고 좋은 감정들이 갑자기 가득 채워진 것처럼 발걸음조차 가벼웠다. 용준형은 등굣길에 나에게 까불고 걷다가 다친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얼굴을 했다.
알고 보면 너무 착한 용준형인데. 교문이 보이기 전에 제멋대로 입은 녀석의 교복을 대강 체크해보고 아슬아슬하게 선도부를 재꼈다. 꼭 용준형만 보면 눈을 부릅뜨고 꼬투리 잡을 걸 찾는 학생주임선생님에겐 대신 깍듯한 인사를 했다. 용준형은 어쨌든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고, 아침마다 별 이유도 없이 운동장을 뛰거나 오리걸음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건 용준형보다 내가 더 배알이 꼴려서 못 봐주겠는 거다.


“시험이 이번 주냐, 다음 주냐.”
“이번 주였음 우리 주말에 놀러 못 다녔지.”

대개는 쉬는 시간에 이따금 앉아 공부를 하는 나보다는 어슬렁거림이 많은 용준형 쪽이 더 자주이긴 했지만, 쉬는 시간마다 습관적으로 내가 용준형의 반이든 용준형이 우리 반이든 걸음을 옮기는 일이 많았다. 물론 서로의 반으로 가려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면 곧 화장실로 직행이었다. 콸콸 쏟아지는 찬물에 손을 씻으면서 화장실 거울로 반사되어 뒤에 보이는 용준형을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이번 주는 내내 너희 집에 있을까?”
“뭐 하러.”
“시험공부. 공부밖에 더 있어.”

너 시험범위도 모르는 게.

손에 잔뜩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버리고 조끼도 안 입은 용준형의 마이를 들춰보았다. 이러니까 복도에서 학주를 잘못 만나면 운동장을 시도 때도 없이 도는 거다. 빨간 펜이 있다면 줄줄이 체크표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불량, 불량, 불량투성이.

“너희 부모님 싫어하실 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럼 맘대로.

하고 용준형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수업예비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아무 기척도 없는 걸 보니 딱 우리 둘뿐인가 싶었더니만, 화장실 제일 끄트머리 한 칸에 종알대는 소리가 들렸다. 종알대는 소리보다는 천장으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가 더 잘 보였다. 끼리끼리 모여 담배를 펴대는 것이 분명한 걸, 난 쓸데없는 정의감이 불타올라 양동이에 물을 받아 물세례를 줘볼까 하고 궁리를 하는 차에, 종알대던 그들의 화젯거리가 나와 용준형인 것을 알아채었다.

“개준형이나 이기광이나.”
“오늘도 이기광꽁무니 질질 따라 댕기던데.”
“등교할 때 봤냐.”
“괜히 개준형이냐.”

웬만한 개도 그 정도로 충성스럽진 않을 거다. 개준형 정도면 이기광도 성공했지.

……
……
…그러니까, 용준형이 개준형인 게.

“야, 이 새끼들아.”

어느새, 잠긴 그 화장실 문에 똑바로 선 용준형이 언제보다도 예의바르게 똑똑 두어 번을 두드렸다. 순간, 그 화장실 한 칸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말도 없었고, 담배연기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침묵이 강해질수록 더 잔인하게 용준형의 말소리가 귓구멍으로 파고 들었다.

“나 개준형인데.”
“…….”
“얼굴 똑바로 들고 다니지 마라.”

걸리면 죽는다.

……
내가 아는 그 개 같은 성격의 개준형이 아니라, 나란 놈에 졸졸 붙어 다니는 그런 식의 ‘개’였단 말 인거지.

얼굴을 잔뜩 찡그려보았다. 괴롭다.



좀처럼 화가 누그러지질 않아서 가만히 서 있으려니까, 용준형은 뭐가 그렇게 또 괜찮은지, 수업종 치기 1초 전이라며 날 우리 반 교실까지 질질 끌었다. 한 번 뿌리치고 두 번 뿌리치자 진짜 세 번째는 안 봐주겠다는 듯이 드세게 내 팔목을 잡았다. 악. 하고 내가 그 용준형의 악력에 비명을 질렀다.

“놔, 이 나쁜 새끼야!”

버럭, 하고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수업에 들어가던 학주와 마주치는 바람에, 용준형은 수업시간 내내 수업에 들어가기는커녕, 또 운동장을 수십 바퀴나 돌아야 되었다. 대강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고 학주 앞에서 생 쇼를 하고 있는 내 노력을 산산이 부셔버리고 용준형은 귀나 후비면서 학주에게 몇 바퀴 뛰면 돼요? 하고 물었다.

난 안일한 용준형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왜 그랬을까. 분명 용준형은 권투장에서 별명으로 불리던 개준형과 학교에서 불리던 개준형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었다. 근데도, 왜, 그냥 그렇게 불리고 다녔을까, 제 성격에 누굴 졸졸 따라다닐 성격도 아니면서. 그게 곱게 들리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째서. 왜 나에게 같은 단어이지만 뜻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은 걸까.
화가 나고 괜히 힘들고 우울해서 수업 중에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제 시험이 일주일도 안 남았고 가장 중요한 수업인데, 용준형이 다 망쳤다.
나쁜 놈. 진짜 나쁜 새끼.





운동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또한 녀석에게 사다 바칠 음료 하나를 보고 그제야 용준형은 뛰던 걸 멈추고 나에게 왔다. 용준형에게선 옅은 땀내가 났다. 유독이 땀을 좀 흘리고 나면 용준형의 체향이 강했다. 나는 잔뜩 코가 간지러워서 코를 막아버렸다.

“오랜만에 뛰니까 좋네.”
“자랑이다.”

……
미안. 내 탓이네. 오늘 뛰게 한 거.

첫 말은 또 곱게 나오질 않았지만, 실은 수업 중 내내 연습한 말을 책 읽듯이 읊었더니, 용준형은 음료를 마시다 말고 팍 웃어버렸다. 니 탓인 걸 알기는 하는 거지? 하는 듯 비꼬는 웃음이라는 걸 알아서 나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왜 그랬어.”
“뭘.”
“개준형.”

……
……

“왜. 나 그 별명 괜찮은데.”

너 전에 그 별명 좋다고 나한테 안 그랬냐. 확인 사살하듯이 묻는 눈에 빤히 예전의 내가 보였다. 그땐 몰랐다. 개준형의 진정한 의미 따위. 그래서 엄지까지 치켜들고 좋다고 했고, 용준형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말했다. 존나, 나도 좋아지려고 하네? 그 별명.
그러니까, 아까도 그랬다. 자기가 자기이름을 개준형이다. 라고 하는 건, 용준형이 이기광의 애완견정도인 게 맞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돕는다.

“그러지마, 용준형.”
“뭘 그러지마.”
“다, 그러지마.”

내가 더 힘들어. 내가, 이상해져.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음료나 벌컥벌컥 마셔대는 용준형이 내 속 깊은 뜻을 알 리가 없었다. 괜찮다. 나도 내 맘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으니까.





“안 가. 마음이 바뀌었어.”
- 왜 사내새끼가 한 입으로 두말해.

침대에 몸을 덩그러니 누이고 발장난을 정신없이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 듯, 이럴 거면, 그냥 부모님께 허락 못 받았다고 구라라도 칠 걸 그랬나. 잠깐 후회했지만, 용준형처럼 이따금 내게 거짓말이나 하는 한심한 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용준형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므로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명색이 십팔년 우정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내가 간다.
“오지마.”
- 시비 걸지 마. 확 물어버릴라.
“이게 무슨 시비야, 멍충아.”

씨발 기대하게 만들고 엿 먹이냐? 질질 흐르는 목소리로 뭐라 뭐라 하긴 하는데, 잘 들리는 건 몇 개의 육두문자밖에 없다. 미안하다고! 그럼 된 거 아냐? 내일부터 진짜 같이 공부하면 될 거 아니야! 소리를 지르고 났더니 속이 후련해지기는커녕 더 기분이 별로였다. 속이 울렁거리는 게, 토하고 싶다.

- 존나.
“…….”
- 알겠다. 끊어라.

그 장황하게 늘어지던 말다툼을 단 몇 마디로 한숨같이 정리하고 마는데, 더 이상은 나도 말문이 막혀서 멀뚱히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있었다. 모든 상황이 이것으로 정리되었고, 서로 말이 없자, 몇 번은 숨소리만 들렸고, 녀석이 그냥 먼저 끊어버렸다.
……
난 끊어진 수화기를 한없이 들고 있다가 난 아직 이 통화의 종료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제 멋대로 꺼지고 마는 핸드폰을 다시 켜보고 또 켜보았다.
아무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이.
더럭, 겁부터 났다.

내가 어디, 공부 빼고 잘 못해 본 일이 한 두 번 도 아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상하게 감정이 오락가락 하고 변덕이 심한 걸, 어쩌자고.

“…….”

나한테 그래도, 니가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용준형.

핸드폰에 대고 아무리 말해도 이제 들을 사람이 없었다.
그냥, 오늘은 안 되겠다 싶었던 것뿐이었다. 용준형은 꼭, 날 죄책감의 끝까지 몰고 가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이, 딱 날 그렇게 궁지로 몰리게 했다. 옴짝달싹 못하게.





느지막이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언제부터 졸기 시작했는지, 책상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아버리곤 잠결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늘은 이제 그만. 내일 용준형에게 어떤 부분을 가르쳐주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할 지 대강 정리 해 둔 연습장을 북 찢어서 용준형의 교과서를 싸놓은 가방에 함께 집어넣었다. 내일은 정말 용준형네 집에 갈 참이었다.
아니, 실은 지금이라도 가서, 마음이 다시 바뀌었다고 함께 있겠다고 할 수 있을 뻔 했다. 알량하고 얄팍한 자존심이 문제이긴 했지만.

이제 책상이 아니라 침대에 나른한 몸을 누이고 무거운 눈꺼풀이 자연스럽게 닫히는데,
아차. 싶었다.

다시 그때의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가위에 눌리게 되면 그 느낌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날 ‘그 때’의 한없이 처량한 신세로 돌아가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것도 그랬고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갈 정도로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날로 돌아간다.
……
그래도 절실한 내 마음보다 무심한 눈꺼풀은 제 맘대로 그 대로 돌아가 나에게 그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난 용준형에게 전화를 했다. 날 만졌던 그 놈들이 있던 현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지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용준형은 그 전화를 받고 정말 얼마 되지 않아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실은 녀석의 얼굴이 너무 일렁여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원래 처음에, 용준형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뭐야. 왜 이래. 말 해. 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용준형은 내 꼴을 보고 그냥 웃었다. 급하게 달려와 어깨를 들썩이거나 하는 것도 없이 휘파람이나 불며 여유를 즐기듯 내 주위를 빙빙 돌았고, 그렇게 웃었다. 항상 날 보는 그 또렷한 눈으로 말없이 조롱했다. 더럽혀졌다고.

……
……

헉.

“…으헉.”

마음속에, 참고 또 참아서 제 구실을 못하고 녹슬기 시작했던 눈물샘이 다시 제 할 일을 해내고 눈에선 자꾸 눈물이 생산되기 시작하자, 잠에서 깨었다. 식은땀이 나서 몸에 입고 있던 티는 어차피 땀범벅이 되어 있었고 얼굴은 눈물 때문에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흐으. 으.”

용준형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전화로도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방을 나오고 거실을 쿵쿵대며 내려와서, 현관에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도 몰랐다. 대문을 빠져나오고 새벽의 찬바람 때문이었는지, 문이 내 뒤에서 쾅, 하고 큰 소리로 닫히자, 그제야 제 정신으로 좀 돌아왔다.
어둡다. 방금 꿈에서처럼 가로등도 허술한 동네가 너무 어두컴컴해서 몇 발자국 만 달려가면 있는 용준형의 집에 갈 힘이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열쇠도 안 가지고 나와서 대문을 다시 열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핸드폰도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가지고 나오질 않았다.

“으어, 억…”

토할 것처럼 쏟아지는 눈물이 더 고통스러워서 몸을 잔뜩 움츠려보았다. 식은땀이 찬 기운에 식어지면서 몸은 더 추워졌다.

준형아. 용준형.

입으로 나오지 않는 소리가 자꾸 마음에 먹혔다. 보고 싶다. 그냥 내가 다 잘못했다. 아까 전일도 후회하고 있다. 지금이라면 백 번이라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야, 이기광.”

……
……

근데, 내 어깨가 따뜻한 손에 붙들리고 나자 똑바로 앞을 쳐다 볼 힘이 났다. 있는 힘껏 고개를 들어 올리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래. 또 꿈 꿨어?”

눈물을 닦아주는 다른 손에선 담배냄새가 고약하게 났다. 그래도, 용준형이 내 앞에 있다. 내가, 치졸했다. 준형아. 진짜 미안. 울음 때문에 정확히 들릴 리가 만무했지만, 웅얼거리고 말하는 게 잘 들리는 것 마냥, 꿈에서의 냉소적인 용준형은 없고 따뜻한 용준형이 있었다. 난 바들거리는 손으로 겨우 녀석의 옷깃을 쥐어보았다. 그러면 용준형이, 내 온 몸과 감정을 위로하듯, 나에게 입 맞췄다.











to be continued

 
길어지시면... 더 환영합니다...♥

개준형이, 그래서 개준형이었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기광이는 그게 좋다고 엄지까지 들어보이고, 준형이는 나도 좋아지려고 한다고 그러고. 개준형.. 기광이만 빼고 전교생이 다 알고 있었던 개준형의 진짜 의미.
그런 준형이가, 신기하게도 짠- 나타나서 입을 맞춰주네요. 설레게..ㅠㅠ..
 
아... 형광 처음 읽어보는데요.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푸리에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형광에게 이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스아실... 기광이를 요섭이로 바꿔서 상상을 하려고 시도해봤습니다. 안되네요. 기광이가 아니면 이 글이 될 수 없네요.
기광이랑 준형이. 마지막 입맞춤에서 탄성이 나와버렸어요.
푸리에님, 감사합니다!
 
호칭의 변화는 없지만 거기에 담긴 속 뜻이 달라진만큼 둘의 관계가 보이지않게 많이 변하고있는 느낌이에요. 속은 점점 불안불안해지는데 겉으로는 잔잔해서 더 무서운, 딱 형광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고있는데 잘읽었어요 : )
 
개준형이 그 개준형이라니, 근데 준형이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기광이가 별명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자기도 좋아질꺼 같다고 했던거네요, 뭔가 준형이의 이기광한테만 한정되는 저 다정함들이 너무 잘 어울려서 괜히 마음이 찡하고 그래요ㅠㅠ 마지막줄이 정말, 기광이의 마음을 위로하듯 입맞춤 하는 준형이라니, 서로가 서로한테 너무 소중한 의미인것 같아서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어요ㅠㅠ
 
전 여기서 등 돌리고 눕지말라고, 서럽다하니까 바로 눕는 용준형이ㅠㅠㅠㅠㅠㅠ 아픈게 진짜 뭔지 아냐고 묻는 용준형이 너무 좋네요ㅠㅠ 정말이지 용준형..
 
제가 생각했던 개준형하고 의미가 틀렸었군요! 미성년의날에서 준형이는 정말 멋진거같아요T_T 기광이가 울고있을 때 딱 나타나는것도 그렇구요ㅠㅠ
 
서럽다는 한 마디에 슬며시 다시 돌아눕는 준형이, 그게 너무 예뻐서. :) 기광이가 제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준형이에게 하나둘 씩 내려놓고 또 가끔 억지도 부리면서 기댈 때마다, 알게 모르게 준형이 마음 속은 얼마나 곪아갔을까요. 대책 없이 기대는 기광이와 그런 기광이의 투정이니 뭐니 다 받아주는 준형이, 둘 다 너무 예뻐요. 왜 그래, 또 꿈궜어? 그 한 마디에 느껴지는 준형이의 애정이란. 아휴, 이뻐라.
 
ㅠㅠㅠㅠㅠㅠ 진짜..기광이 한정 무한 사랑과 관심을 주는...준형이는 너무멋있어서.....
그래서 더더욱 미성년의 날에 빠져들어 몇날 몇일을 생각하네요 ㅠㅠㅠㅠ
마지막 입맞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겠지만...너무 아름다운 입맞춤인거 같아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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