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login



태어날 때부터 친구 먹었다는 누구들은 가야할 길이 갈리거나 한 쪽이 이사를 가서 근근이 연락만 이어간다거나 하는데, 열여덟 평생 한 동네에 짱 박혀 살아 온 용준형과 나는, 코흘리개 적에 친했던 동네꼬마들도 별수 없이 이 동네에서 함께 커 가는데 그네들과는 점점 얼굴만 아는 친구로 전락하고, 오직 용준형과 나만 서로를 안달했다.

다시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부터 블록처럼 되어있는 집집들을 가로지르고 몸을 꺾어 걷다보면, 한 70걸음에서 100걸음쯤 사이에 용준형네 집 앞에 도착했었다. 지금에야 좁은 보복으로 아무리 걸어 도착해도 그보단 덜 하겠지만.

금요일이었고,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반성문 따위를 쓰게 되었다는 용준형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멍한 무표정으로 못 데려다 준다고 이죽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어패가 좀 있었다. 용준형과 내가 하교하는 길에는 우리 집이 먼저 있기 때문이다. 그래, 먼저 간다고 말하고 더 어둑어둑 해질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나는 있는 힘껏 학교에서 집까지 뛰었다.
아니, 정확히는 용준형네 집으로 뛰었다.




“음, 왔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쪼그리고 앉은 용준형의 누나는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만사에 천하태평 해졌다.

“안녕, 누나.”

대강 인사를 하고 2층 계단을 오르는데, 야 너 또 청소? 대단하다 진짜. 눈물겨운 우정이다? 라고 TV에서는 시선도 안 떼고 말꼬리를 잔뜩 올려 비꼬듯 말하던 누나에게 그러려니 하고 나는 녀석의 방으로 직행했다. 빨간 글씨로 접근금지 팻말을 걸어둔 녀석의 방은 부모님도 못 들어갈 정도로 용준형이 예민하게 굴었다. 아, 이기광 빼고. 라는 팻말에 휘갈긴 글씨가 덧붙여진 용준형의 공간은 오로지 나만 이용이 가능했다.
방 안에 들어가면 유독 특유의 용준형 냄새가 났다.



녀석의 방 청소를 시작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큰 말썽이 한 번 있은 후로 유난히 말썽이 잦아, 용준형을 꼭 유학 보내고 싶었던 용준형네 엄마가 나에게 용준형을 설득 좀 해달라며 전화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부모님 말이라면 귓등으로도 잘 안 듣는 녀석이라 어떤 일이든 용준형네 엄마는 나에게 용준형을 잘 좀 구슬려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때, 용준형은 내 옆에서 그 통화 내용을 다 듣고 있었다. 준형이랑, 잘, 얘기, 해볼게요. 네. 걱정마세요. 하고 거짓말을 하는 동안, 용준형은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비웃었다.

“우리 엄마냐?”
“…어.”

끊자마자 무슨 얘긴지 다 알아들은 용준형은 멍한 얼굴에 입가에만 들렁 웃는 척을 하고는 혀를 찼다. 얼굴에는 좀 짜증스런 부분이 있었지만, 용준형의 얼굴은 언제나 그랬다. 뭐가 그렇게 귀찮은지, 아주 옛날만큼 잘 웃지 않았다.

“우리 엄마 실수하셨네.”

나는 하굣길을 걷지도 못하고 멀뚱히 발끝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용준형은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잔뜩 떨어뜨린 내 시선에 닿을 정도까지만 듬성듬성, 서성이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휙하고 내가 고개를 떨어뜨린 만큼 구부정하게 제 몸을 만들어서 귓가에 확고하게 말했다.

“안 가. 안 간다고, 이기광.”
“…….”
“너 때문에라도. 안 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살이 쏘옥 빠져버린 내 볼을 제 손으로 죽 늘어뜨리던 용준형은 언제부턴가 내 홀쭉한 볼 대신 내 퉁퉁한 입술을 제 이빨로 잔뜩 깨물었다. 악, 하는 비명도 못 지르고 난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녀석의 방청소는 그 후로, 내가 자처한 일이었다.
용준형을 이제, 내가, 어디도 보내버릴 수 없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사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절교 따위는 개나 줘버리면 되는 거였다.

나는 너저분한 용준형의 책상을 정리하기 전에 제일 마지막 서랍을 열어보았다.
빨간 잡지.
처음에는 용준형이 이런 것도 보는 구나, 싶어서 구경하다가 곧 흥미가 떨어져서 다시 넣어놓거나 아니면 녀석을 골려주려고 일부러 몰래 버려버리곤 했다. 어차피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저 자신 빼고 나밖에 없으니 그 자리에 책이 없는 걸 보면 분명 내가 한 소행인 것을 알 텐데도, 용준형은 이 일을 언급하는 법이 없었다.
이 책을 버리고 나면, 다음 날 항상 다른 새 잡지가 있었다. 봉투도 뜯지 않은.
매번 확인은 했지만 한 달이 넘게 버리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에도 봉투가 뜯기지도 않은 새 것이 그냥 한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뭘까, 사놓고 보지도 않는 걸 왜 항상 넣어두는 걸까.
누구라도 녀석의 의중은, 파악될 리 없었지만 그건 나에게도 알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열여덟을 알고 지냈는데, 용준형은 항상 모르는 사람 같았다.




어려서부터 용준형은 괴짜였다. 똑같은 꼬마 때에도 꼭 누구누구는 용준형을 제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은연 중 따돌렸다. 자연스럽게 용준형은 제 요상한 성격 때문에 왕따를 자처했고,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보였다. 분명, 내 눈에.
그리고 용준형은 중학교 때 삶이 심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서 가까운 권투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용준형이 다니는 권투장을 구경하러 따라다녔다. 권투장을 다닌 달의 수가 꽤 넘어갈수록 녀석의 스파링은 대개 심각한 수준으로 이어졌다. 어떤 날은 코피가 주룩주룩 터지고, 눈썹 근처에서 피가 철철 나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에 몇 주를 시퍼런 멍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권투장의 관장님은 처음 스파링을 시작한 용준형에게 맞는 것도 잘 맞지만, 때리는 것도 잘 때린다며 칭찬이 자자하다가, 이젠 녀석을 상대해줄 스파링 상대가 없다며 으름장을 놓곤 했다.
다 용준형의 탓이었다. 스파링 종만 땡- 하고 울리면 중학생꼬마 ‘용준형’이 아니라 미친 개 ‘개준형’이 되곤 했으니까. 그 미친놈을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 때 권투장에서부터 달고 다닌 ‘개준형’이라는 별명은 녀석에게 진심으로 잘 어울렸다. 고등학교에 올라온 뒤에도 여전했지만, 중학교 때 틈만 나면 내 살 오른 볼을 이빨을 세워 물어뜯던 용준형의 버릇도 그랬고, 누구에게나 그리 녹록치 못한 거칠거칠한 녀석의 성격 때문에라도 나는 용준형보다는 개준형이 확실히 녀석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확고해 진다고 믿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부른 적도 없었는데, 용준형은 누구에게나 개준형으로 불렸다.

“좋냐?”

둘이 나란히 복도를 걷다가 지나다니는 얼굴모르는 누구들도 쉬쉬하며 개준형을 인식하고 다닐 때,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내심 즐거웠다. 어떤 식으로 용준형이 그 입들에 오르내리는지 몰라도 확실히 어감은 꽤 괜찮았다.

“어울리잖아. 너랑 별명이.”
“…그래?”

진심, 완전, 잘 어울려.

최고의 칭찬이라고는 그 정도 밖에 못했던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용준형은 제 멋대로 씨익- 웃었다. 존나, 나도 좋아지려고 하네? 그 별명.

난 이따금 그런 용준형의 웃음이 버릇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오래 알고 지내보니 꼭 그런 의도만도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은 확실히 나에게 적의가 없었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나에게 유독 잘했다.






_







“어디야, 너.”

여보세요. 도 아니고 어. 하고 짤막하게 전화를 받는 용준형에게선 용준형의 목소리보다는 시끄러운 여자소리와 노랫소리가 더 많았다. 술 마시는 자리구나, 싶었던 생각부터, 집에 올 때 반성문 쓴다는 게 다 개뻥으로 확인되자마자 확 짜증이 밀려들었다. 놀토가 시작되는 새벽부터 용준형네 엄마의 연락을 받았고, 용준형이 아직도 집에 안 들어 왔단다. 전화를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아 최종으로 나에게 연락을 하셨던 그 마음을 알아서 나는 졸린 눈을 부릅뜨고 침대 위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가족의 전화 따위 뒷전인 용준형은 두 번의 수화음도 채 울리기 전에 내 전화를 받았다.

“술 마셨어?”
- 조금.
“어디냐고.”
- 술집.

짜증을 못 이겨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술집이 어디냐고.”
- 곧 들어갈게.
“지금 집으로 가, 곧장.”
- 니 방 갈 건데.

미친 놈, 미친 새끼.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이라고 백 번 속으로 외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한숨을 몇 번이나 내 쉬며 화를 삭인 다음 용준형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준형이 우리 집에서 재울게요. 하고 속 좋은 척을 하고 말했을 때 그 동안도 수도 없이 들어온 미안하다는 소리도 꼭 그만큼 들려왔다.

용준형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손을 못 탔다. 용준형네는 우리 집보다 잘 살았고, 동네에서 소문난 알부자 집이었다. 그만큼 바쁜 부모아래 자란 용준형은 감정적으로 항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무던히 이해해주려고 하고 무던히 잘 지내주려고 하고 친해지려고 더 그랬나보다. 의협심이라고는 개뿔,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확실히, 두어 시간쯤 눈을 붙이자마자 방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용준형이 아니면 내 방에 그 창문이 잘 열리는 일이 없었다. 왔으면 왔다고 연락을 하면 집 문이라도 열어 줄 텐데, 매번 이런 식이다. 의도적이지 않은 일로 자주 깨어지는 잠 때문에 난 머리가 아파서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이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던 용준형은 술에 잔뜩 쩔은 교복을 입고 신발도 신은 채로 내 방안을 굴렀다.

“야 이 미친놈아.”

고약한 술기운에 코를 막았고, 용준형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기광아. 개준형이 왔다? 하고.

“뜬금없이 왜 술이야, 또.”
“왜긴 왜야, 너 때문에 마셨지, 내가.”

……
……

이 세상에 이제 너에게 있어서, 나 때문이 아닌 일은 있기나 할까.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잘 빠지고 팔 다리가 긴 용준형은 곧 잘 우리 집 담을 잘 넘었다. 이따금 집에 아무도 없는데다가, 난 열쇠까지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 집 밖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태반이었기 때문에 용준형은 그렇게 우리 집 담을 넘어 문을 열어주곤 했다. 그러고는 키 좀 커라, 하면서 미운 소리를 하곤 했는데, 내가 진짜 미운 소리라고 인식하면서부터 키가 더욱 덜 자라기 시작했나보다.

아무튼, 우리 집 담에 올라와 똑바로 서면 내 방 창문이 바로 보였다. 용준형이 장난처럼 잘 드나들던 내 방 창문은 여전히 어떤 의도로든 용준형에게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별 반 다를 바가 없었다. 대개는 내 방이 아니면, 용준형이 우리 집에 발 들이는 일이 없었다. 집 문을 열면 꼭 밟아야 하는 거실조차도 밟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태가 나게 삐뚤어진 용준형을 우리 부모님은 점점 싫어하게 되었고, 내가 집에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쯤 용준형은 쉽게 알고 있었다.

일단 더러운 신발을 벗겨서 다 푼 문제집 하나를 꺼내 올려놓고 녀석의 몸을 있는 힘껏 들어올렸다.

“으악.”

들어올리긴, 무릎까지 구기며 난 용준형에게로 구부정하게 내려앉았다. 아쉽다. 중심이라도 잃어서 녀석의 배때기나 얼굴을 팔꿈치든 아니 뭐로든, 가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야.”
“왜.”
“너 살 더 빠졌냐.”

술을 마셔도 절대 벌게지지 않는 얼굴을 해서는 이죽거린다. 홀쭉한 볼을 비비적대는 손에는 담배냄새도 진하게 났다.

“안 빠졌어.”
“근데.”
“근데 뭐.”
“빠졌던 거. 왜 안 돌아 오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다시 한 번 녀석의 몸을 들어 올리는데, 이상하게도 상체가 쉽게 들렸다. 대강 구부정하게 앉은 녀석이 쭈그리고 앉은 내 어깨에  제 몸을 한껏 기대었다. 그랬더니 그 무게감이 또 나를 털썩 주저앉게 만들었다.
……

“안 돌아가져.”
“…….”
“다시 돌아가지지 않는 거잖아.”

과거는.

한숨이 절로 났다. 난 어떤 이유에서, 용준형이 나에게 살이 빠졌냐는 둥, 왜 다시 전으로 안 돌아 오냐는 둥, 그런 얘기를 꺼내는지 알았다. 누군가에게 살이 빠졌고 빠지지 않았고의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나에겐 좀 달랐다. 원래도 그렇게 살집이 있진 않았지만, 그 없던 살도 쑤욱 다 빠져버린 내 몰골은 용준형에게도 나에게도 충격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용준형의 개 같은 성격은, 어떠한 순간에도 꽤나 드러나지 않았다. 누가 보면 굉장히 조용하고 절제된 성격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알고 보면 그냥 남들이 화내는 포인트와 녀석의 핀트가 매번 엇갈리거나 다르거나. 그랬다. 그래서 어떤 입장이든 서로가 달라 함께 으르렁거림이 없었다 뿐이지, 용준형은 그냥 항상 그랬다. 제가 좋으면 말고 싫으면 괴상해지거나 그랬다. 내 눈에는 그런 모양이 다 보이는데, 남들은 그럴 포인트가 아니라서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위태위태하게 조용히 잘 넘겨온 몇 번을 빼면 그래도 유연하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함께 진학을 했고, 인생에 한 획이라도 그어지듯 한 사건의 시발점은 문제가 있을 둥 말 둥했던 용준형에게서가 아니라 나에게서가 먼저였다.

좋은 대학에 간 사람이 많은 만큼이나 구질구질한 학생도 많다고 정평이 난 남고에 나는 당연히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요량으로 진학되었고 자칫 구질구질한 학생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용준형도 결국은 비실비실한 성적이지만 괜찮게 입학식을 마치고도 며칠 안 된 차였다.
고등학교에 올라왔으니 권투는 그만두고 공부나해서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가겠다던 용준형의 포부를 듣고 내가 배꼽까지 잡으며 비웃었던 날, 난 재수 없게 고 3 구질구질학생들의 눈에 걸렸다.
말만 이러저러하다고 들었지, 생각보다 실은 훨씬, 무서웠다.

“아가, 이름이 뭐야.”

이리 와봐.

학교 구경은 용준형하고 같이 했어야 하는 건데. 하고 짤막한 후회를 하다가 종종걸음으로 도망가면 얼마나 순식간에 잡힐까도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점점 까맣고 하얗게 변했다.
도와줄 사람이 한 둘 쯤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 멀리서 들리는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는 종소리가 희미하다가 없어지고 난 다음 내 후회와 생각들이 다 부질없음을 알았다. 음악실로 미술실에 과학실 같은 특유의 성격을 확실히 가진 공간만 있는 층이나 건물은 자율학습이 시작될 즈음, 당연히 사람이 없었다.

하얗고, 체구가 조그맣다는 이유만으로 어디 성별을 운운하던 나를 뺀 다섯은 나를 구경거리고 세워두고 온갖 희롱을 일삼았다. 그게 말 뿐이었어도 참 충격이었을 텐데, 가장 구석에서 담배나 빨고 있던 진짜 동물 같던 놈 하나가 ‘어디, 벗어 보자.’했던 그 위압감에 빙그르르 정신도 돌았다. 내 손으로, 내가 벗어야 한다니.


포기가 빨랐던 현실에서, 난 그 상황을 혼자 이겨낼 수가 없었다.




제정신도 아닌 채로 질질 울고 있던 나를 구경하고 조롱하던 눈들이 제 할 일을 마치고 사라지자마자, 나는 부들부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겠어서 주마등처럼 지나간 가족들은 다 제쳐두고 당연히 용준형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치욕스러웠던 상황에서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이라면 단연, 용준형뿐이었다.

용준형은 다섯 번이 넘게 건 내 전화를 귀찮듯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야자시간에는 복도에 선생님이 감시를 하게 되고 핸드폰은 당연히 받을 수가 없는 걸 나도 알았다.

- 야, 너 야자시간에 전화질……

……
……

그 때, 나는 분명 용준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세상이 떠나가라 목청껏 울어재꼈다.



용준형은 자율학습 중에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몰라도 금방 이 곳까지 달려왔다. 얼마나 힘껏 달려왔는지,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처음 물었던 건, 뭐야. 왜 이래. 말 해. 이거였다. 하지만 말 안 해도 딱 보였을지 모르겠다. 잔뜩 다 풀어헤쳐진 교복은 마이부터 바지까지 어디 하나 성한 게 없었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으니까,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혼자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는 내 옷을 찬찬히 다시 입혀준 용준형은 긴 팔로 내 어깨부터 허리까지 꽉 드세게 감아 안아주었다. 녀석의 몸뚱아리가 나에게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도 계속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녀석에게 계속 안겨 있었다.


“당했냐.”
“남자끼리 당하고 안당하고가 어디 있어.”
“그럼 뭐야.”
“…….”

빨리 말해 나 돌기 전에.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매번 피력했고, 그 일주일간을, 녀석은 나에게 소소한 것들을 캐물었다. 난 거의 아침부터 매일 밤까지 용준형과 함께 있었다. 한 달을 꼬박 매일 밤 앓았고, 또 꿈을 꿨다. 꿈을 꾼 날에는 어김없이 용준형에게 전화를 걸었고, 대부분은 새벽녘의 전화에도 용준형이 담을 넘어 순순히 우리 집, 아니 내 방까지와 주었다.
내가 다섯 번이나 연락했던 야자시간 사건 이후로, 용준형은 내 전화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받게 되었다.



그 한 달의 중간 즈음에, 내가 용준형에게 용기를 냈던 말은 딱 한 마디뿐이었다.

“만졌어.”
“…….”

내가 벗어야 됐고, 끝내는 날 만졌어.

피력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말하자마자 다시 눈물이 쏟아졌고, 나는 그 일이 있은 지 2주 만에 거의 5KG 이상이 빠졌다. 아무 이유도 몰랐던 부모님은 나에게 성장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매일 변하는 것 같다고 하시다가 공부가 힘드냐는 둥의 말을 하셨고, 용준형은 내가 살이 빠지던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침묵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었던 그 다음 날, 용준형은 학교 3학년 교실까지 올라가 이미 수소문한 다섯 명을 찾아내고 한꺼번에 제 스파링 상대로 만들었다. 링 안에서는 선제공격에 유난히 약했던 용준형이지만, 어차피 방심하고 있을 다섯을 그렇게 작열하게 때려 눕혔다. 권투기술을 학교에서 썼다는 걸 알면 관장님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 일로 내가 희롱당한 그 사실이 붉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내 걱정 따위는 가볍게 빗나가고 학교 안에서 조용히 정리되었다. 용준형의 일은 선생님과 부모님들 선에서 적당히 정리가 된 듯 학교는 다시 잠잠해졌다.
용준형과 무리들은 서로 다르게 격리되어 반성문을 썼고, 그 무리가 토로한 일방적인 구타사건에 대한 억울함의 피력에 비해 논리 정연했던 용준형의 소설 같은 반성문은, 이 사건을 학교의 몇 안 되는 전설로 변질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을 큰 획으로 그어보면, 용준형과 나는 많이 바뀌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런 개인적인 부분이 바뀐 게 없어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사이’는 바뀌었다. 용준형은 학교 안에서 문제아로 전락하며 그에 발맞춰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삐뚤어진 용준형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나에게 이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의 삐딱이 용준형 따위 없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입버릇 같이 하는 ‘나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만 보아도, 용준형은 나로 인해 많이 망가졌다. 성격은 더 거지같아졌고 비행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제게 맞지 않는 이상한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그 밖에 말을 섞고 지내던 몇 몇은 이제 용준형과 아는 얼굴도 아닌 게 되었고, 학교 안에서 심지어는 나에게 용준형과 절교할 것을 상담을 하는 척 권하는 선생님도 생겼다. 난 그저, 한없이 웃었다.

난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치부를 용준형과 공유했고, 의지할 데라곤 나야말로 용준형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더러, 대체 어쩌라고.

용준형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들은 이제 다 나에게 부질없었다. 진심으로 발가벗겨진 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용준형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to be continued

그러니까, 형광은, 접점도 없고 일그러진 그런 느낌.
문제는, 그래도 매력적이라 웃음이 난다는 거겠지.

 
이 둘은 접점은 자기들 세계에 숨겨져 있는 건지도 몰라요. 시끌시끌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수있는 그들만의 마음이랄까, 생각이랄까, 난 그런게 보여서 너무 좋아요 :)
여담이지만, 5kg이나 빠진 기광이를 생각하니, 용준형은 당연히 삐뚤어 졌을 듯(...)
 
이기광 때문에, 용준형이. 그래서 둘은 어떻게 될까요.
또 막 인상 쓰면서 스크롤을 내렸어요. 정말 그래도 매력적이라..
 
성년의 날 마지막편이 떴어요. 그래서 다시 글을 읽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설레는,
정말 딱 형광이라는 느낌이 드는 글이라서 매력있어요. 너무 좋네요 : )
 
형광은무어라설명할수없는것같에요
무언가있는듯한,그런느낌
 
접점도 없고 일그러진 느낌이라.
아 정말이지 그렇네요.
그런데 제일 짙어보여요.
접점없어보이는 그들이.
 
접점도 없이 일그러진 느낌이라는게 왜이렇게 와닿는 건지..
형광은 정말 말로 설명할수 없는 그들의 분위기가 있는데, 그 때문에 이렇게 빠져드는 것 같아요
이기광 때문에, 용준형이 삐뚫어지고 그런 준형이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는 기광이. 처음 읽는데 첫글부터 빠져드네요ㅠㅠ
 
매번 조용히 읽고 지나가기만 하다가, 가입한 기념으로 또 다시 와서 읽고 이렇게 글을 남겨요 :) 미성년의 날만 몇 번째 보는 건지. 그래도 미성년의 날은 언제 봐도 이 속의 둘이 그렇게 위태로워 보일 수가 없어서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초조하게, 지켜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미 결말을 다 아는 사람인데도.
 
진짜 미성년의 날은 정말....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애절함이 있어요..ㅠㅠㅠ 형광이들의 서로를 사랑하고 곁에 두고 싶은..그런 애절함... 아 상당히 광적으로 둘만 바라보는...ㅠㅠ 어린시절 일그러진 사랑인데...그게 또 상당히 어울리는...ㅠㅠㅠ 진짜 폭풍 눈물 흘리고 갑니다.ㅠㅠ
name pass
lis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