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login



복학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버지와 형, 나까지 시꺼먼 남자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다가 형이 결혼을 해 나가버리고 나도 입대를 할 즈음이 되어서야 우리 셋과 사별했던 엄마와 함께 넷이 살던 집은 청소도 버거울 정도라는 판단이 되어 급작스럽게 이사를 감행했었다. 처음에는 뭐 어디든 좋아. 로 결정한 집이 대학과 너무 멀어 식겁했지만, 1학년 때는 무작정 랜덤추첨이었던 기숙사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었다. 그리고 입대. 그 다음 제대. 쉬지 않고 바로 복학을 감행하고, 계획하던 대로 모든 게 다 이뤄지는 듯 싶더니 방심한 사이 큰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어차피 교양으로만 점철된 1학년 수업에 부어라 마셔라 여기저기 모임에 끌려다니며 학점관리를 제대로 못한 터라, 안 그래도 졸업 전까지 우수한 전공자로 남으려면 남들보다 배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기숙사 문제가 걸린 거다. 분명 나 1학년때만 해도 랜덤이었는데 2학년부터는 성적순이란다. 그 놈의 성적순.

갑자기 돈이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집에서 통학을 하기는 상상도 못하겠고.
기숙사로 들어 갈 거라 이미 큰소리를 떵떵 쳐놨기 때문에, 아버지와 상의하기에 부끄럽고 볼 낯이 없어 형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뭐, 형이라고 별 수가 딱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섯 살이나 되는 나이 텀의 형은 아버지만큼이나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거였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분명 엄마노릇을 형이 다 해내곤 했으니까.
그 날 술자리에서 고민을 해보자. 는 답을 냈지만 당장 일주일 뒤면 개강이었고 내 속도 모르고 맘도 모르는 아버지는 짐을 싸야하지 않겠느냐 해서 억지로 현관 앞까지 짐을 대강 쌓아둔 게 삼일이나 지나있었다.

그리고 개강 이틀 전, 형에게서 구원의 연락이 왔다.
그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길거리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지구







형수와 형은 오 년이나 뜨거운 연애를 했고 형의 유치한 프러포즈에 슬쩍 넘어가 준 형수가 정말로 형수님이 되는 역사적 순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군대에 자주 면회를 와 주는 형수가 정성껏 싸다주는 도시락으로 윗대가리들에게 이등병 때부터 총애를 챙겼다. 그러니까, 결혼 전부터 형수님 형수님 하고 따르는 게 맞았고, 말년 병장이 된 지금의 내 마지막 휴가에 맞춘 상견례였다.
우리 집도 엄마와의 사별로 인해 아버지 혼자 형과 나를 키웠지만, 형수네 집안은 부모가 이혼을 하고 아이를 양 쪽에서 맡지 않기로 하는 별난 가족사를 했었다. 그래서 형수네 집에서 나올 사람은 단 하나뿐인 남동생뿐이었다. 그러니까 보기 드물게 조촐한 형식이 무색한 상견례였다.

형과 나는 남중, 남고, 심지어 공대의 절차를 밟는 마당에 아버지는 엄마 이외의 여자와 전혀 말씀을 나눠보지 않은 터라 오가는 대화는 정말 오그라들 정도로 어색할 뿐이었고, 반대편에 혼자 덩그러니 앉은 형수님도 형과 나 둘이 볼 때와는 다르게 더 다소곳했다. 그리고 항상 말로 존재한다고만 들었던 형수의 남동생은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자리에 도착했다.
그 때, 그 남동생씨를 보며 분명 우리 집안사람들은 똑같은 얼굴을 했었을 거다. 한마디로 경악. 문화충격. 같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말을 깍듯하게 하는 건 좋은 데, 어디 휘황찬란한 선글라스에 노란머리를 하고 몸에 너무 꼭 들어맞는 한마디로 날티 나는 양복, 손가락에는 삐까뻔쩍한 반지들 몇 개씩을 꼈는지 몰랐다. 게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 컵을 들어 올리는 손의 손톱에는 시꺼먼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어디 저 아리따운 형수님에게 저런 망나니 같은 남동생이. 라는 의문도 잠시, 이 자리가 참으로 경건해야했기 때문에 일단은 평정심을 찾으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이 자리와 썩 어울리지 않는 행색을 한 남동생씨는 선글라스를 옆에 벗어 놓았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우리 아버지나 형이 묻는 말 정도에 단답형 대답 정도만 했을 뿐 흠이 없이 반듯하게 굴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지- 내 모습을 반성하고 자리를 파하고 나왔을 때, 무리와 조금 떨어져 걷던 나에게 다가온 남동생씨는 불쑥, 그 보기에도 혐오스러운 까만 손톱을 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용준형입니다."
"아, 네. 전 이기광입니다."

악수를 해야 되나, 뭐 그런 걸 고민하던 내가 악수를 하려는 모양 정도로 손을 뻗었을 때 그걸 덥석 잡고 마구 흔들던 남동생씨는, 그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너무 예쁘시네. 몇 살?"

나는 사람의 겉모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금 깨달았다.

"핸드폰 번호 받아갈 수 있나?"

악,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나는 남동생씨가 아니라 남동생놈에게 핸드폰 번호는커녕, 정강이를 까주는 정도로 그 자리를 마무리 했다.

그런 최악의 첫 만남을 공유한 사이란 말이다.





확실히 학교와 집은 지하철로 삼십분 거리에 집이 역세권이라 더더욱 땡큐였다. 들어가면 방도 하나 선뜻 내줄 거고, 귀찮게만 안 하면 어쨌든 다 괜찮다는 포용심이 넓은 동거인이 형수의 남동생놈인 것만 빼면 확실히 모든 게 천국인 상황은 맞았다. 나를 한참 다스려보았었다. 개 구렸던 첫 만남이었지만, 그건 벌써 세 달 전. 밖에 되지 않았구나. 아무튼, 나에게는 구세주인 셈이니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 만남 이후로 삼 개월 후 두 번째 만나고, 동거를 하고부터 1개월 반까지, 나에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머리가 뱅글뱅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일단, 학교에서는 좋은 친구, 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친구를 만났다. 복학생에게는 복학생친구가 따라 붙는 게 맞다는데, 학교를 오 년째 다니고 있다던 정체불명의 장현승은 일명 '신의 아들'로 군대도 면제, 삶의 모든 노고는 다 면제면제면제일 정도로 무성한 괴소문을 달고 다니는 신비주의의 인간이었다. 복학할 당시에는 당연히 그런 소문들을 알 길이 없었고, 첫 날 첫 수업에 옆자리에 앉은 것과 그 날 하필이면 2인 1조의 리포트 과제로 엮인 것이 아니면, 절대 친하지 않을 종족이었다. 사고방식조차가 신기해서 이상함을 타고난 인간이었다. 우리 집 누구처럼. 정말로 '우리집'이 다 된 동거인의 집말이다.

장현승과 나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편의점에서 맥주 아니면 포차 소주 같은 걸 즐기게 되었는데, 말 그대로 주당이었던 장현승은 날 항상 녹다운이 될 때까지 마시게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날 집까지 데려다주기 귀찮은 장현승은 내 동거인을 부르게 되고, 그러면서 장현승과 용준형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겸사겸사 두루두루 모든 인간관계가 진행되었다.
장현승은 이상하게 용준형과 잘 맞는 부분이 많았다. 이상한 것들은 이상한 것들끼리, 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용준형과 장현승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그 사이에 정상인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웩웩거리며 전봇대를 붙들고 토하는 내 등을 두들겨주던 용준형이 장현승에게 얜 토하는 것도 예쁜 거 같아. 했고 장현승은 그럼 너 가져. 해서 용준형은 땡큐. 그런 기묘한 대화를 했다. 그 후로 장현승은 용준형을 내 애인인양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용준형에 대한 온갖 것들을 부정하는 와중에, 입에서 꺼내기 싫었던 아주 극악한 것을 내뱉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장현승에게 나는 그렇게 정리해서 말했었다.

용준형이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나는 용준형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용준형은 게이이지만,
나는 절대 게이가 아니라는 것.

술주정뱅이가 되어 포차가 떠나가도록 고래 성량을 한 나를 올려다보던 건, 실은, 장현승 뿐 아니라 용준형도 함께였다. 나는 포차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준형을 아웃팅시켰다. 제기랄. 근데 그 와중에 용준형은 장현승에게 맞아, 나 혼자 이기광 짝사랑하는 거야. 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취기와 함께 속에서 열불이 나 온 몸이 다 화끈거렸다.


용준형은 허구한 날, 나에게 툭하면 예쁘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으레 들었던 귀엽다는 말이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로 변질되면서 귀엽다고 말하는 녀석들을 패고 다닌 적이 있었고 취미에 권력욕이나 명예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골목대장도 나름대로 해봤다. 싸움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하게 되면 하고, 질 정도로 몸이 허약한 체질도 아니었다. 허세부릴 실력 같은 것도 없었지만.
게다가 남자 셋이 사는 집에 애교, 말 잘하는 법, 연애 같은 건 애초에 없는 소재였다. 그런 나에게 툭하면 거슬리는 말을 하는 용준형은 매번 느끼하게 웃고 나긋나긋한 말투 같은 걸로 다정하게 굴었다. 손톱에 매니큐어까지 본 마당에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정말로 변태 같았다. 용준형은.

저보다 키가 좀 작고 체구가 좀 작다고 날 호구로 아나. 그런 원맨쇼 논쟁을 혼자 해본 적도 있었다. 하긴, 호구로 알았다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남자의 서열이란 마땅한 절차 같은 게 있는 거니까 이건 정말로 아니었다. 더구나 용준형은 싸움을 잘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집에서도 비척비척 걸어 다니는 게, 개폼만 잡을 줄 알지, 싸움꾼은커녕 박애주의, 평화주의 뭐 그런 것에 더 가까웠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용준형은, 밤마다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제 방 앞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같은 걸 빨간 글자로 휘갈겨 놨는데, 글씨도 혐오스러워서 청소를 하러든 호기심으로든 단 한 번도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왠지 글자만 봐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방은 볼 때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특히 술 많이 먹어 꼴은 날 새벽에 오줌 누러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도 희미하게 새는 불빛이 단 한 번도 없던 일이 없었다.
겁쟁이인가. 의심한 적도 있었다. 불을 켜놓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던가. 하는 근데 이따금 불이 빨리 나가는 백열등 화장실에 시꺼먼 밤에도 곧잘 들락거리며 제 볼일 보는 모습을 보고 그런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도 미스터리한 종족이었다.

스물세 살의 나와 동갑. 누군가는 돈을 버는 나이고, 누군가는 나처럼 대학교를 다니는 나이에, 밤이 아니면 집을 도통 나가는 일이 없는 용준형은 어디서 굴러먹은 백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역세권의 좋은 집을 살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뭔가 구린내가 난다. 듣기로 이 집이 전세도 아니고 월세도 아니라 자기 집인 거 보면 뭔가 돈많은 여자를 스폰서로 둔 능력 있는 제비가 아닐까. 의심에 의심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가는데,
오늘은, 늦는다는 연락도 없다.

“…….”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싱거운 콩나물국이라서 대강 햇반을 돌리고 형수가 가져다 준 귀중한 김장김치 아껴 아껴 먹는 중이었다. 과제를 하다 보니 열한시. 열한시까지 아점 한 끼 먹고 버틴 게 용할 정도로 난 내가 끓인 맛없는 콩나물국도 그 자리에서 흡입 중이었다.
그러다가, 꽝, 하고 현관을 차는 소리에 하마터면 국그릇을 놓칠 뻔했다. 용준형이다. 어떻게 하면 현관에서 그런 굉음이 나는지 몰라도 매번 고치라고 주의를 줘도 녀석은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존나 애 떨어지겠다 썅”
“떨어질 애나 있으면.”

목에 두른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끌어내리던 용준형이 편의점에 다녀왔는지 허연 봉투를 식탁 의자에 올려놓았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햇반 몇 개와 스팸뿐이다.

“밥 안 먹었어?”
“넌 왜 지금 먹는데.”

말을 져주는 법이 없다. 뭘 물어봐도 다 삐딱한 게 딱 지 같은 품성과 품행이다. 씨발.
녀석은 양복도 안 벗고 과도 하나를 들고는 프라이팬에 스팸을 굳기 시작했다. 무슨 약속이 있었나, 바람을 맞았나. 짝 다리를 집고 선 긴 다리와 훤칠한 뒤태를 꼬아보는 중에 너도 먹을 거면 더 굽고. 하는데, 바로 콜을 외쳤다. 녀석이 햄을 굽는 동안 나는 햇반을 세 개나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진짜 햇반 없으면 우리 같은 중생들은 어떻게 사나 싶다.

식탁에 아무렇게나 구워오는 스팸은 정말로 덩어리를 한 것도 있고 제대로 된 모양을 한 것도 있고 다 제각각이었다. 모양이 병신 같아 그렇지 용준형이 굽는 스팸은 꽤 먹을 만 했다. 용준형은 김치볶음밥과 떡볶이 딱 두 개 정도 요리를 할 줄 아는데 둘 다 너무 매워서 결국엔 먹을 수 없는 꼴을 했다. 처음에는 둘 다 자존심을 세우느라 누가 더 많이 먹나,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경쟁 같은 걸 했다. 둘 다 다음 날 똥꼬에 불이나  화장실을 번갈아 의존하는 신세를 면체 못했지만.

“어디 다녀오는 데.”
“게이바.”
“아,”

아, 하고 아는 척을 하다가 하나하나 음절을 따지고 보니, 뭐래 이 새끼가.

“게이바? 미쳤냐 너.”
“니가 나 게이라며. 병신아.”

아, 씨발 용준형 말하는 데 밥풀을 몇 개나 튀는 거야 더럽게. 그 와중에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 확실히 장현승에게 그런 요상한 상황을 정리해서 풀어놓은 말에 용준형은 분명 게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용준형은 분명 사는 동안 세 명의 사람과 깊게 사귀었고, 그 세 명은 모두 여자였다.

“괜히 갔어. 아오, 토 나와.”

입구에 딱 들어서자마자, 존나 남자 둘이 볼썽사납게 비비적대고 있잖아. 못생긴 것들이.

용준형은 딱 저만큼이나 저렴한 말투를 했다.

“자아를 찾으러 갔다가, 토하고 돌아옴.”

햇반을 두 개째 뜯는 용준형은 게이바 체험을 다녀와서 그렇게 정리했다. 나는 그에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를 할 뿐이었다.

“며칠 전에 내 방 사건은 뭐라고 설명할 건데.”

니가 게이가 아니면 뭐야, 씨발놈아.

나는 며칠 전, 용준형이란 괴한에게 침대습격을 당한 후로 열쇠아저씨까지 불러서 문고리를 다시 맞추고 외출을 할 때마다 방문을 잠그고 다녔다. 용준형은 머쓱하게 제 머리를 흩트리며 항상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침대습격 사건이란 간단하다. 용준형이 내 방 침대에 들어가 자위를 하는 걸, 나에게 들킨 것. 나는 용준형을 내 방에서 쫒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같이 달릴 거 달린 마당에 앞을 차 줄 수는 없어서 엉덩이를 실컷 차주었다.

“그건 미안하다고.”
“미안만 하면 그 일이 뭐 없던 일이 되냐.”
“아직 덜 때렸냐.”

얼마나 더 맞으면 되는 건데.

주객전도도 유분수지, 어따 대고 지금 안 지려고 들어 이게. 딱 그런 얼굴로 눈을 부라렸더니, 금세 용준형이 깨갱한다. 나 지금 미안하다고 백 번 말했다. 이제 백 번째다. 미안해. 미안하다.

그나저나, 정말로 녀석이 날 반찬삼아 자위까지 한다는 걸 인식하고 심각한 공황을 겪었다. 그러니까, 용준형은 정말로 날 좋아하는 것인가. 에 관한. 용준형의 짝사랑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심각한, 내 지구관 세계관 우주관을 송두리째 흔들려고 하는 변태 놈과 나는 매일 한 솥 밥을 먹고 한 지붕에서 TV를 시청하며 함께 살고 있다.





_






설거지못했음. 미안.
지하철에 올라타자마자, 용준형에게 카톡을 날렸다. 바로 확인할 일은 없으니 가방 안 깊숙이까지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 좀처럼 활짝 열리는 일이 없는 용준형의 방은 아침에도 여전히 빛이 새고 있었는데, 용준형은 이불을 싸들고 나와 거실 바닥에 나동그라져 자고 있었다. 어제 술을 먹었던가, 뭐 그런 생각으로 입가에 코를 킁킁거리다가, 용준형 특유의 냄새만 날 뿐이라 그만두었다.

며칠 전 염색을 해주겠다며 염색약을 들고 나타난 용준형은 정말 미용사 솜씨 뺨치게 때갈 나는 색으로 내 머리를 변형시켰다. 장현승은 좀 까리해졌다며 날 칭찬해서 조금 으쓱으쓱한 차였다. 꾸미는 것도 모르고 교복 아니면 추리닝 정도로 살아오다보니 놀 줄 모르는 바보가 된 나는 천성이 그런가 몰라도 노는 문화에 다소 적응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노는 거 좋아하는 학과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해 특이한 장현승 같은 놈과 어울렸다. 나는 그렇다 치고 잘 놀게 생긴 장현승은 또 나 같은 고지식한 포장마차 친구와 어울려서 고생이다. 나란 놈은 좀 민폐다.

9시 수업. 부지런히도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곧 따라 들어오던 장현승이 여, 하고 감탄사를 낸다.

“준형이꺼 빌려 입었냐.”
“아, 이거. 어.”

며칠 전에 용준형이 입은 걸 보고 예쁘다고 했더니 입고 싶으면 입으라고 했다. 안 그래도 집에 내려가 긴팔 옷 좀 챙겨 와야 하는데, 있는 옷이라고는 츄리닝따위일 거라서 용준형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방에 누가 들어가는 걸 무지 싫어하는 용준형 덕에 옷을 다 구경한 건 아니지만, 내가 관심을 보인 몇몇 개의 옷은 아예 거실에 옷걸이 같은 걸 만들어서 늘어놓았다. 그동안 보았던 몇 개의 휘황찬란한 옷 말고는 내가 입을 수 있는 모양의 옷들이 꽤 많이 늘었다. 물론 사이즈가 약간 크기는 했지만.

장현승은 내가 뭘 입을 때마다 단박에 그게 내 옷인지, 용준형의 옷인지 알아채었다. 그러니까 용준형의 옷은 장현승의 말을 빌리면, 이건 어디 한정판. 저건 어디 신상. 내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곤 했다. 그러다보니 몇 십만 원씩 하는 티셔츠와 백만 원 단위의 아우터를 용준형이 입는 걸 알아버렸고, 그런 씀씀이에 혀를 내두르며 인간 말종으로 결론지은 나는 정말로 용준형을 이해하고 싶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녀석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지 않고 녀석이 밤마다 뭘 하고 다니는 지도 초탈한 듯 행동했다. 삶의 패턴이나 스타일이 정말로 하나같이 다 달랐다.

“술 마시자, 오늘.”
“어.”
“용준형 불러.”

어. 하고 핸드폰을 찾았는데, 여전히 설거지 카톡에는 답이 없었다. 현승이랑 술 마실 건데. 오든지. 다음 카톡을 보내자마자 수업조교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새끼 진짜 뭐하고 있는 건데. 술자리로 가는 중,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녀석은 카톡 확인은커녕 감감무소식이다. 거실 바닥이 갑자기 추워져서 입이 돌아가 졸도했나. 이제야 좀 더운 날씨가 오려고 하는데 입이 돌아가긴 무슨. 졸도는 개뿔. 결국 포차에 앉자마자 용준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부재중으로 넘어간다.

“안 받으면 말든가.”
“아, 기다려 봐.”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서 다섯 번째 부재를 만들고 있었다. 존나, 여편네처럼 너 뭐하냐 이기광. 장현승의 헛소리에 뭐라 대꾸하려는데, 뭐. 하고 용준형이 전화를 받았다.

“야 씨발 전화를 하면 좀 받든가.”
- 바빠.
“맨날 집에만 있는 놈이 뭐가 바빠.”
- 끊어.

……
씨발새끼가 진짜 끊었다. 아, 죽여버려.
통화버튼을 다시 눌렀다.

- 왜.
“죽고싶냐 너.”
- 뭔데. 용건 말해.
“됐다 병신아.”

이번엔 내가 먼저 끊는다. 그런 유치한 싸움을 했다. 먼저 끊는데 진짜 속이 다 시원해서 애 새끼 약 좀 올랐겠지, 싶어 껄껄 웃었더니 이번엔 장현승이 혀를 찼다.

“애정싸움은 집에서나 하지.”
“누가 누구랑 애정을 한다고.”

정색을 하자, 뭔 정색이냐며 화제를 돌린다. 장현승은 딱 적당한 선에서 내가 스팀 돌기 전까지만 헐랭방구를 낀다. 적어도 용준형만큼 나를 유치할 정도로 악다구니를 쓰게 한다든가, 밑도 끝도 없이 병맛 돋게 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끌어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며칠 전, 과제 크리로 몸이 다 쇠약해서 지하철 계단에서 꼬꾸라질 뻔 했던 걸, 어떻게 용준형이 봤는지 손가락질을 했다. 이기광 넘어졌대요. 깔깔깔깔. 여러분 보세요, 이기광이 계단에서 넘어졌답니다. 뭐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하던 놈이 내가 별 반응이 없으니 그대로 날 부축했었다. 괜찮냐? 묻는데 진짜로 너무 힘들어서 대답할 힘이 없었다. 목이 마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제 점퍼주머니에서 캔커피 하나를 꺼냈다. 받아들었는데 심지어 시원한 기운이 있었다. 그걸 꿀떡꿀떡 삼키면서도 여전히 지하철 계단에 널브러진 나를 붙들고 전공서적 때문에 잔뜩 무거운 가방 짐까지 들어주던 녀석은, 이제는 좀 편하냐며 비슬비슬 웃었다.

“나 좋은 놈 아니냐.”

묻던 용준형은 웬일로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 놓고,

“나 알고 보면 진짜 순정 있는 남자야.”

순정 따윌 거들먹거리며 날 도통 헷갈리고 기묘하게 만들었다. 나를 정말로, 이상하게 만든다. 용준형은.









to be continued

 
오오오오오 이 뭔가 까리하고 달달 돋는 시크한 소설은 뭔가요???ㅎㅎㅎ 아 기광이 성격도 좋고 준형이 현승이 ㅋㅋ 다 좋아~~~ 뭔가 기분전화되는 글이네요~~다음편 기다릴꼐요^^
 
세상에 용준형이 ‥ 그 용준형이 ‥ 이기광 앞에서만은 까불이라니 ‥ 오마갓. ㅠㅠ 푸리에님 thㅏ랑해옇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렇게 나오는 용준형은 누나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저런 이기광도 얼마든지 누나 환영임미다 ♥
 
성격들이 다 마음에 드는데요ㅜㅜ뭔가 시크하면서도 달달한 기분이 오게 하는 글이라니!!!!!뭔가 셀레네요ㅎㅎㅎㅎ
 
느나 이글 왜 나 지금본거지?ㅠㅠㅠㅠ 진짜 좋아요ㅠㅠㅠㅠ 용준형성격ㅠㅠㅠ능글공에 내가 정말 흡ㅂ..ㅂ...... 자아를 찾으러 게이바에...... 4차원적인 매력까지 있는건가... 토하는것도 이쁘다니!!!! 이기광이 이쁘긴하지만 빠져도 푹빠졌넿ㅎㅎㅎ
name pass
lis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