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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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보충은 말만 들어도 끔찍하긴 한데, 그래도 너 때문에 내 성질에 참고 있는 거다. 라고 입 꼬리를 샐쭉 올려 으스대듯 하던 용준형의 얼굴이 선명한데, 2주 만에 보충을 위해 학교로 돌아온 용준형은 상당히 착실하고 조용한 척을 했다. 매일같이 삐죽빼죽 올리고 다니던 머리카락들은 잘 쓸어내려 길이가 좀 어정쩡하긴 해도 꽤 단정한 모양새를 했고, 잘 잠그고 다니지도 않던 교복 와이셔츠는 목까지 답답하게 잠겨 있었다. 옷을 다 잠그고 있는 게 조금 불편한 듯해도 꽤, 잘 참아내는 것 같았다.
같은 반의 시꺼먼 녀석들은 대부분 용준형이 대단히 이상해졌다며 수근대었다.
나는 가만히 채점을 하던 색연필 뒤를 잘근잘근 씹었다.

용준형에게 사고가 있었던 날, 용준형은 여전히 제 고집대로 내 하굣길에 끼어들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닌데도 한사코 제 맘대로만 해대는 용준형은 이따금 날 극도로 제한하고 몰아가는 감정적 부분이 있었다. 그 날 나는 극심하게 용준형에게 화를 냈다. 내가 뭐든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을 조근조근 꼬집어 얘길 할 때마다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안 닥치냐’ ‘닥쳐라’ 험한 말을 일삼던 용준형은, 내가 제 뜻대로 제어 되지 않자 정말로 삐뚤어진 듯, 날 정말로 때릴 기세를 하고 쳐다보았다. 난 끝까지 내가 하려던 말을 다 하고나서 팽팽하게 대립했다. 물론 겉으로는 독기를 품은 듯 꾸몄지만, 속으로는 그 기에 눌러 이미 나락으로 떨어져 멘탈 상실 중이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잘 기억이 안 났다.
용준형은 내 얘기들을 다 비웃듯이 껄렁하게 내가 없어져 줄까. 물었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라. 했다. 그렇지만, 동조한 내 대답마저 용준형은 깔깔대며 비웃었다. 네가 없어져 달라면 내가 없어져 줄 거 같냐- 하는 그런 뜻 같았다. 나는 땅바닥에 눌어붙을 듯 데굴거리며 웃고 있는 용준형을 돌아보지 않은 채 우리 집 현관을 박차고 들어갔다.

용준형은 자주 날 폭발하게 만들고 감정을 너덜너덜하게 찢어 놨다. 그러다보니 진심이 아닌 말들을 할 때도 많았다. 사람이 감정적으로 치우치면, 마음에도 없는 말부터 정말 해선 안 될 말들도 많이 하게 된다는 걸 용준형 때문에 깨달았고 그래서 용준형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뿐, 내 인생에 용준형은 그야 말로 부닥치지 않는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적어도 2주 전까지 용준형과 나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 모르는 게 없었다. 그 때까지는 그랬다.



보충이 끝나면 1시. 점심부터는 자율적으로 자율학습이 있지만 대부분은 반 강제적으로 있고, 오후 5시가 넘으면 강제 지율학습이 끝나고 선택적으로 학교에 남은 인구와 학교를 나서는 인구가 갈린다. 대부분의 상위권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하교를 선택하는 인구가 많았다. 나도 별 반 다를 바 없이 하교를 하는 쪽이 맞았다.
쭐레쭐레 건물 현관에 서서, 하늘을 한 번 보았다. 비가 온다고 아침뉴스가 떠들었던 게 기억났다. 자연스럽게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었고, 가방 안에는 두 개의 우산이 들어 있었다. 같은 디자인의 우산 중 하나는 ‘이기광’ 남은 하나는 ‘용준형’이라 쓰여 있었다.
…엄마가 꼭 용준형한테 전해주라고 했었는데.
나는 이기광이라고 쓰인 우산을 펴 들고 하교 길에 용준형네 집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다가 얼마 걷지도 않고, 금방 용준형의 등을 만났다. 우산 없는 이들이 비를 맞고 집에 가기엔, 심하게 많은 양이었다.

“용준형.”

별것도 아닌 단어에, 내 심장이 울렸다.
용준형은 날 돌아보았다.

“우산.”

나는 녀석에게 우산을 건넸다. 우산 밖으로 뻗은 팔은 금방 빗물에 젖었다.

“우산?”

용준형은 우산을 받지 않고 우산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서 받으라고 재촉하듯이 나는 우산을 든 손을 한 번 더 뻗을 만큼 뻗었다. 빌려주는 거? 하고 다시 묻는 얼굴에 나는 극심한 짜증을 느끼고 네 꺼. 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내 꺼?”
“그래. 용준형 꺼.”

여기 이름도 쓰여 있잖아. 빨리 받아.

아무렇게나 쥐어주려는데, 양쪽에 목발을 한 용준형이 우산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될 리가 없었다. 울컥하고 정말로 해괴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건 또 다른 식으로 용준형이 날 괴롭히는 것과 같다. 사고 전의 용준형이든, 사고 후의 용준형이든, 날 괴롭히는 방법은 용준형에게 아주 많이 있는 듯 했다. 그에 상당한 괘씸함과 억하심정이 복받치듯 올라왔다. 약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어서 우산 써.”
“목발 때문에 불편해. 이미 비 많이 맞아서 상관없어.”
“어서 쓰라고.”

불편하다니까.

쓸데없는 일에 난 용준형과 또 실랑이를 했다. 이 사소한 와중에도 나는 최고조로 불안하고 애매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것도 용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래.”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비가 추적대는 땅에 목발을 한 번 짚는 용준형에게 나는 한 쪽 목발을 아예 빼앗아 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장난치는 거면 이만 하면 됐잖아. 그만해 진짜. 나 상황파악 안 돼서 심란해 미칠 것 같으니까 그만하라고. 길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치는데, 용준형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저 날 또렷이 바라보았다.

“목발 내 놔라.”

용준형은 내 손에 쥐어진 목발을 가리키며 손목을 까딱거렸다. 하긴, 기억하는 게 없어도, 늘 상하던 습관이나 표정 같은 건 달라진 게 없었다. 처음에는 이상하리만치 모범적인 모습으로 보충에 참여하며 담임의 기염을 토하게 한 용준형은, 이제 예전처럼 잦은 지각습관대열에 다시 들어섰고, 알고 지내던 몇몇 얼굴들과도 익숙하고 친숙하게 지냈다.

“사고 전에 나랑 네가 그렇게 친했다면서.”

아니, 우린 친한 게 아니었다.
친한 정도로도 우리는 우리를 정의할 수 없는 그러한 정도의 사이였다.

“기억을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뇌세포가 좀 죽은 것도 있고 돌아올 것도 있긴 있다는 데 보장도 없고.

망할 뇌세포는 왜, 도데체가 왜,
용준형에게서 나라는 녀석의 기억을 완벽하게 지워냈을까.
왜 하필, 나일까.

“기억하려고 노력 중이야.”

그런 말투는, 용준형이 나에게 하고 있는 말투는,
다 틀렸다. 이상하다. 정답이 아니다.


난 용준형에게 녀석의 우산을 집어던져버리고 내 집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목에 숨이 턱턱 막혀 멈추자마자 웩웩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있는 힘껏 뛰었다.
바보. 병신 머저리 같은 용준형
고통스럽게 웩웩거리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머릿속에서 용준형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악에 받힌 눈물이 막 서럽게 났다.
억- 하고 고집스러운 설움이 터졌다.

이미 뇌세포가 죽은 것도 있을 거고 돌아올 것도 있긴 있는 데 보장도 없고.
사고 후, 의식불명인 채로 5일 내내 시체 같았던 녀석이 수면 안에서 의식이 돌아왔던 날, 우리 엄마와 함께 의사에게 들었던 말의 일부였다. 처음에 깨어났던 용준형은 자신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런, 장난 같은 일이 있었다. 퇴원하던 날, 용준형은 우리 엄마에 대한 일부 기억이 돌아왔고, 엄마는 그런 용준형을 기특해했다.
그 와중에 용준형은 끝내, 나를 기억해내지 못 했다.

내가 용준형이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을 한사코 싫어했던 이유는 딱 두 가지 였다. 일단은 하교하는 방향이 너무 다르고, 학교를 거치지 않고 우리 집에서 녀석의 집까지 가는 지름길이 무지 불편하고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정당한 이유가 용준형에게 들어 먹힌 일이 없었고,
결국은 애초에 용준형이 내 말을 잘 들었다면, 녀석에게 사고가 있지 않았을 거다. 용준형이 녀석의 집으로 돌아가던 지름길에서 급작스러운 차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그러니까, 녀석이 기억을 잃는 건 더더욱 없었을 거다. 용준형이 이기광을 잊어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알던 용준형과
녀석이 알던 이기광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내 용준형은, 죽었다.





_






주말이면 별 수 없이 엄마에게 등 떠밀리듯 2시 땡볕에 집을 나왔다. 몇 번은 용준형의 집으로 가지 않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엄마에게 걸려서 먼지 나게 맞았다. 이제 용준형은 기억도 못하는 개인과외를 지금도 계속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바락대는 나에게 엄마는 그럴수록 더 용준형을 챙겨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말로 날 괴롭혔다.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신 용준형의 아버지는 매달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용준형의 과외비를 넣어주었고, 우리 엄마는 용준형의 과외비가 들어올 때마다 더한 진수성찬을 내 손에 들려 용준형의 집에 보냈다.
일찍이 엄마 없이 자란 용준형을, 우리 엄마는 몹시 동정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양 손에 오층이나 되는 찬합을 두 개나 짊어지고 용준형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고 후 첫 과외였다. 나는 정말로 용준형을 대면하는 게 싫어졌다. 그냥 모든 게 다 싫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오른 쪽 복도 첫 집이 용준형네 집이었다. 현관문에 그동안은 떼지도 않고 무심하게 붙어있던 찌라시들이 말끔하게 없어져 있었다. 매번 과외가 있는 날, 내가 떼어주곤 현관을 들어서며 잔소리 하는 게 처음인데, 첫 단추부터가 달라졌다. 소름이 끼칠 듯이 이런 상황이 싫었다.
초인종을 누르는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한 갈등을 하는 중에도 어쩔 수 없이 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 박자가 빠르게 용준형이 현관을 열었고, 난 현관에 바짝 붙인 몸을 조금 떼어냈다.

“주말에 웬일.”
“비켜.”

난 현관과 용준형을 비집고 집에 들어섰다. 다행인 건, 여전히 용준형의 집에선 내가 알던 용준형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녀석의 집에 익숙하게 들어서자, 녀석도 날 뒤따라 졸졸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손에 들었던 찬합을 열어보고는 밥도 안 먹고 있었다며 잘 되었다는 듯 혼잣말을 주저리 해댔다. 난 녀석의 냉장고에서 일전에 가져다 놓은 반찬통들을 회수하며 녀석의 집을 휘휘 둘러보았다. TV를 켠 흔적도 없고 너저분한 느낌도 없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과외를 하러 와서 대강 청소해주고 간 그대로 같았다.

“집에서 뭐하고 있었냐.”
“그냥 뭐.”

녀석은 벌써 냉동실에 있던 얼은 밥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었다. 정말로 배는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용준형아. 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지도 않던 녀석이었다.
……

“…생각.”

녀석이 짧은 단어를 내뱉자마자,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소리를 내며 꺼졌다.

“무슨 생각.”

용준형은 빠르게 수저를 챙겨 밥을 한 큰 술 떴다. 난 그 앞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 하고 더 보채어 물었을 때 용준형은 날 한 번 쳐다보고, 그 주위로 시선을 비잉 돌리다가 밥그릇을 으로 툭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 번 더 크게 밥을 집어 들었다.

“네 생각.”

……
……
뭔가 기억이 날까 싶어서.

쓸데없는 조바심이 날 자꾸 생채기 낸다. 녀석이 노력해서 될 것도 아닌데, 모든 건 순리이고 순서가 있는 건데, 다음 날 일어나면, 하루만 지나면 날 기억하겠지. 기억 못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얕게 짐작하던 나를 모든 것들이 괴롭힌다.


용준형이 배가 잔뜩 불러 식탁 의자에 늘어져 있는 동안 난 습관적으로 녀석의 빈 공기와 수저를 설거지했다. 싱크대에 서서 그릇을 닦는 동안 이상하게, 밥 같은 것에 내 기대와 요행같은 걸 걸었다. 우리 집 밥 한 번 먹었으니까, 기억하지 못했던 거 하나가 돌아왔으면 좋겠는 거. 그 기억하지 못하는 것 중 꼭 돌아왔으면 하는 건, 다름이 아닌 ‘나’라는 존재. 이기광 같은 거. 나라는 것.
문득, 싱크대에서 녀석이 앉은 식탁을 돌아보았는데, 용준형이 아주 수상한 눈을 하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얼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녀석에게 웃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용준형은 나에게 이상하고 나쁜 버릇 같은 걸 심어놓았다. 그런 게 새삼 다 안타깝다.




용준형은 과외를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대부분의 문제를 어려워하고 풀기 싫어했다. 그건 나에게 아주 익숙한 용준형과 같았다. 녀석이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 나는 무의식중으로 늘 그렇듯 채점하는 색연필의 뒤끝을 씹었다. 용준형은 내가 잔뜩 씹어놓아 이 자국이 나있는 색연필을 제 침으로 최종도배를 해 놓고는 했다. 꼭 영역표시라도 하듯이 늘상 제 침을 묻혀놓았다. 근데 그건, 색연필 따위에도 그랬지만, 그냥 나라는 존재에도 그랬다. 용준형은 과외 도중에도 내 어깨나 귀를 입에 넣고 씹는 시늉을 했고, 입술에 침을 묻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그랬던 제 모습을 알면, 녀석은 무척이나 창피해할까.
혹여나, 녀석이 창피해하면 나는 꼭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 같았다.

“선생.”
“어어.”

과외를 하는 시간만큼은 꼭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기. 약속을 받아냈을 때, 용준형은 꼭 저렇게 꽤 무심하고 놀리는 투로 나를 ‘선생’이라 불렀다. 꼭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녀석은 나를 그렇게 또 몰아세웠다.

“그냥 묻는 건데.”
“어.”

네가 알던 나는, 어땠어.

……
……

용준형이 나에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걸 물었다.
내가 알던 용준형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나에게 물었을 때, 수많은 색깔이 몰려들었다. 정의할 수 없는 색으로 뭉치더니 그건 결론적으로 검거나 하얬다. 검은 색이든 하얀색이든, 다 답답하다.


준형이네서 자고 와.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어렸을 때는 분명 누구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하면 정말로 심각하게 맞곤 했는데, 용준형의 일이라면 엄마는 언제나 관대했다. 그건 용준형이 엄마 없고 아빠도 없는 빈 집에 혼자 살면서 말썽을 피워 대던 때에도 그랬다. 용준형을 대하는 우리 엄마는 ‘천사’같았다. 진짜 우리 엄마는 그게 아닌데.
문자를 곱씹고 있는데 등 뒤에 용준형이 나타났다. 어깨까지 으쓱대며 소스라치게 놀라 금새 핸드폰을 껐는데, 녀석이 별 말이 없었다. 문자를 못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이 문자를 읽지 못했던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밀린 과외시간도 채우고 진이 빠져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가 문득 아마 이대로 문자를 못 본 척 집에 가도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돌아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라는 말을 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피하고 싶어도 난 어쨌든 용준형과 마주 서서 직면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용준형을 나만 기억하는 건 너무 서럽잖아.
용준형이 날 기억 못하는 건 너무 비겁하잖아.
소파에 가로로 누운 내 발치에 용준형이 아무렇게나 앉아 리모컨 전원을 누를까말까 하고 있었다.

“나 자고 간다.”
“맘대로.”

자고가려는 건 내 의지가 아니다. 내 맘대로 했다면 난 이미 이 집을 나가는 게 맞다.

“근데, 어디서 잘래.”

아빠방은 먼지 그득할거고-
……
내 방 침대는, 좀 작지 않나.

고개를 갸웃 하는 용준형의 얼굴에 난 진심으로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아마 내가 성질이 조금만 더 더러웠더라도 그 면상에 주먹을 꽂았을지 모른다.

“소파에서 자면 될 거 아니야.”

신경 끄라고. 알아서 할 테니까.

일부러 더 빈정대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 용준형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당황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용준형은 아무튼 나에게 이러면 안 된다. 난, 이런 용준형이, 무서워죽겠다.





거실 소파에 배를 대고 엎드려 누워서 요상한 개그프로를 정말로 재미없게 보다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온 몸에 이불을 꽁꽁 싸매도 똑 떨어진 체온이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아 문득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꺼먼 불 빛 없는 방 안에 히끄므리하게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난 단번에 내가 지금 소파가 아닌 용준형의 방에 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라고 생각하자마자 몸을 튕기듯 일어났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파 한동안 또 그 자리에 머리를 움켜쥐고 한참을 있어야만 했다. 용준형이 죽은 뒤로, 난 이따금 편두통에 시달리는 환자가 되었다.
이불을 꽁꽁 싸매고 용준형의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는데, 거실 소파 위에 송장 같은 용준형이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우리 집보다 훨씬 역세권인 용준형네 집은 지하철 레일이 너무 가까워 자주 지하철이 오가는 소리가 거실에 소음으로 들리곤 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용준형을 쳐다보고 있을 때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있었고 그 반짝반짝한 불빛이 거실을 네온처럼 휘감자마자 난 마치 호러영화의 한 장면에 곧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사람마냥 서 있었다.
난 그냥, 모든 게 무겁고 무서웠다.
그 자리에 이불을 다 버려두고 한기가 들어찬 몸뚱이를 가지고 용준형의 배 위에 눌러앉았다. 모든 게 용준형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서두는 하나도 없는데 그냥 결론이 그래서, 난 어쨌든 억울했다.

“일어나, 용준형.”

……
……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아니, 이건 추위때문이 분명하다. 난 용준형의 목에 내 손가락을 바짝 감아쥐었다. 오만 감정이 다 들었는데, 어떠한 감정도 들추어 낼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일어나라고.”

목소리까지 떨렸다. 용기 있게 용준형의 목을 조를 것처럼 하고도, 나는 일말의 용기가 없어서 아주 조그마해져 있었다. 손가락에 조금의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고 난 드디어 뜻 모를 눈물을 왕창 내뱉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서러워 견딜 수가 없는지 용준형에게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 퍼부어야 할 상대는 ‘용준형’이 아닌 ‘죽은 용준형’이다. 그 존재의 부재에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흐드득- 하고 눈물이 용준형의 목을 감아쥔 내 손으로 비 오듯 떨어지고,
……
가만히 눈을 감은 용준형은 미동 없이 제 오른손만을 들어 올려 내가 감아쥔 제 목 위의 내 손을 겹으로 더 덮었다. 용준형이 손을 얹자, 용준형의 목을 감고 있는 내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힘을 줘야지.”

엄마야. 죽은 용준형의 도플갱어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손끝에 힘을 싣고”

단단하게 오므려야지.

게슴츠레, 눈을 뜬 용준형은 아주 이상하고 묘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용준형”
“…….”
“너, 기억하고 있는 거지.”

기억한다고, 지금 이 순간 말 해주길 간절하게 바랐다.
그렇지만 용준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에는 없는데.”

…뭔가, 익숙해.

익숙한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알 수 없는 상황? 내 이상한 행동? 도대체 무엇이?
그 때 쿠당- 하고 거실 전체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 떨리는 몸을 움켜쥐고 두리번거리자, 현관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던 용준형의 목발이 넘어진 것을 발견했다.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다. 모든 게 공포로 돌아온 현실을 맞고 난 요즘 새로운 용준형과 기싸움을 하는 중이다.

어느새 배를 깔고 앉은 나를 무시한 채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용준형은 뒤로 꼬꾸라질 것 같이 기우뚱한 나를 답싹 끌어안았다. 뭐하는 거냐고 묻고 따지는 게 맞았는데, 너무 추워서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
……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난 진정되기까지 아무 말도 안 했고 용준형은 그에 전적으로 수긍한 듯 했다.

꿈을 꾸고 싶다.
죽은 용준형을 찾아가야만 한다.






_








녀석이 나를 강제로 취했던 그 날이었다. 휘둘리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용준형에게 온갖 회유의 방법과 강경책을 썼다. 그래봤자, 이미 제압당한 몸뚱아리를 역전하긴 별 수 없이 힘들었다. 나는 나를 바짝 타고 오른 용준형이 마치 거대한 짐승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진정해, 용준형. 다시 생각해보자.
무슨 짓이든 하기만 해봐. 너 다신 안 봐.
내가 뭐라고 지껄이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봤자, 난 이미 용준형에게 홀랑 벗겨져 있었다. 몸도 마음도. 쉽게 포위당하고 가볍게 점령당해버렸다.
나는 간신히 모든 걸 참아내고 있었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몸으로 열띤 온도가 부닥칠 때마다 용준형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왔다. 용준형은 내 위에서 진심으로 직접적이게 희열을 토로했다. 그러면 나는 간간이 얼굴을 가렸던 손가락 사이로 그런 용준형을 직시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역시 소름끼치는, 동질감 따위를 느꼈다.
더럭 겁이나 무서웠다. 이건 정말로 인간적이지 못한 감정이었다. 혹여 이 감정이 극도의 흥분, 오르가즘의 한 형태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건 정말로 알아서는 안 될 나쁜 걸 알아버렸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 날, 잠이 오지 않아 벌벌 떨고 있는 벌거벗은 몸을, 자고 있던 용준형의 위에 타고 올랐었다. 목을 졸라버리려던 심산이었다. 나는 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어나, 용준형.”

그 때도 그렇게 녀석을 몰아세우려 했었다.
그러지 못했지만.
……
……

“힘을 줘야지.”

용준형은 꼭 내가 어떤 식을 행동할지 혹은 어떤 식을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 굴곤 했다. 어떤 불리할 상황에도 날 뛰어넘는 모양새를 했다. 그게 항상 약이 올랐다. 녀석과 나는 마치 톰과 제리같이 쫓고 쫓기는 관계에 있었다. 내가 항상 쫓기는 쪽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손끝에 힘을 싣고”

단단하게 오므려야지.

게슴츠레, 눈을 뜬 용준형은 아주 이상하고 묘하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 때도 바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용준형은 가만히 자신에게로 연결 되어 있던 내 팔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나는 고독한 추위에 온 몸을 오들오들 떨었고 급기야 흐드득 눈물을 뱉었다. 용준형은 그 날 날 다시 안아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울음을 그치고 졸음에 끔뻑 죽은 시체모양을 할 때까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녀석의 가슴팍에 꼬꾸라졌을 때 내 등 뒤로 녀석의 손가락이 몇 번 부딪힌 것을 제외하곤 말이다.





_






용준형의 교복과 깨끗하게 세탁된 내 교복이 용준형의 방에 나란히 걸려 있었다. 어제 미처 용준형의 방에서 이걸 발견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교과서는 교과서고 문제집이 정리되지 않은 채 들쭉날쭉 꽂힌 것도 내가 해 놓았던 그대로였고 심지어는 뒷부분에 잇자국이 난 색연필 몇 자루가 용준형의 책상에 불안정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저것 또한 내 것 들이었다. 과외를 하러 올 때마다 잊어버리고 놓고 간 것도 있었고 너무 짧아져 버리라고 두고 온 것도 있었다.

“용준형, 책상 좀 정리해.”

난 몸에 대강 교복을 걸쳐내고 있었고, 용준형은 오냐, 하고 형태 없는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후련하지 않은 용준형과 함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도 죽은 용준형에게 조금 더 솔직해보는 건데.
문득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용준형이 예전의 자신조차 기억을 못할 줄 알았더라면, 꼭 용준형만큼이나 수상하고 요상한 내 감정들을 마음껏 표출해보는 건데 말이다. 그 때 조금 더 용준형에게 내가 솔직했더라면 지금의 용준형에게 내가 이렇게나 모지고 이상하게 굴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용준형은 두 개의 컵에 흰 우유를 담아 방 안으로 들어왔고 난 그 중 하나를 받아들었다. 용준형은 능숙하게 제가 입은 트레이닝복을 훌렁 벗어 재꼈다. 그리고 책상위의 무릎을 고정할만한 압박 밴드를 먼저 제 다리에 끼워 넣었다.
목발을 한 지 3주, 이제 어제오늘부터는 목발 없이 다녀도 된다며 휘파람을 휘휘부는 용준형은 그래도 여전히 조금 다리를 절름거렸다.

“그러니까 내 말을 왜 그렇게 안 들어.”

내 말 들었으면 사고 같은 거 안 났잖아.

어쭙잖은 잔소리가 또 툭 튀어 나왔고, 용준형은 비슬비슬 웃었다.

“좋댄다, 용준형.”
“어, 좋아.”

…근데 왜 좋은지는 모르겠고.

용준형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무언가가 ‘좋다’고 말하다니, 정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등교에 무리하게 무릎을 쓰면 왠지 안 될 것 같아 오랜만에 용준형의 후진 자전거를 꺼내들었더니, 용준형이 집에 자전거도 있었느냐며 또 멍청한 소리를 해댔다. 하긴, 우린 자전거를 타지 않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오래 전에 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차와 부딪혀 왼쪽 발목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을 때, 용준형은 차에서 내리던 중년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죽일 듯 달라 들었다. 나는 정말로 대낮에 살인이라도 날 것 같아서 잔뜩 겁이 났더랬다. 그 후로 용준형은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일에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었다. 아니, 그래서 한 번을 다시 탄 일이 없었다.
나는 멍청한 용준형에게 자전거 뒷좌석을 가리키며 ‘야, 타’같은 유치한 말을 턱짓과 같이 했고, 용준형은 약간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얼른 타라니까. 하고 말했을 때,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선 용준형은, 내 교복바지 밑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쭈그려 앉았다.
나는 침을 꿀꺽 큰 소리로 삼켰다. 왼쪽 발목이었다.

“이상하다.”
“…뭐, 뭐가.”

태나게 말을 더듬어버렸고 용준형은 여전히 쭈그리고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마치 죽은 용준형이 갑자기 나타나 내가 너 자전거 다시 타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 하고 물을까봐 또 겁을 먹었다. 그렇지만 용준형은 그저 고개를 갸웃 했을 뿐이다.

“이기사, 출발.”

용준형은 곧 흔쾌히 내 뒤에 탄 채,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잘도 미끄러지는 자전거에 내가 운전수인지도 모르고 난 멍 때리며 무의식 속의 학교 가는 길을 미끄러져 갔고, 용준형은, 죽은 용준형은 내 머릿속에 나타나 또 빈정거리는 말투로 네가 자전거를 타. 미쳤네, 이기광. 죽고 싶지. 그러는 것만 같았다. 한 시도 빠지질 않고 죽은 용준형이 살아서 날 괴롭힌다.




쥐 죽은 듯이 제 책상에 꼬꾸라져 긴 잠에 든 것만 같은 용준형은, 내가 알고 있던 그대로의 용준형이었다. 나는 쉬는 시간까지 잠으로 할애하고 있는 용준형의 자리로 가 일부러 그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그럼 이건 영락없는 용준형이다. 내가 아는 그 용준형이라는 거다.
깨울까 말까 고심하던 차에 점심시간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나간 무리 중 마지막이 용준형과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미닫이 교실 문을 탁 하고 닫고 나가버렸을 때, 나는 또 다른 안정감으로 도배되어진 내 마음에 쾌재를 부르며 본격적으로 용준형의 얼굴을 관찰했다. 언제나 생각했던 거지만 정말로 하얗고 예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용준형은.
그러다가 문득 조심스럽게 용준형의 얼굴 가까이로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용준형의 입술에 짧게 뾱 하는 소리의 가벼운 입맞춤을 선사했고, 용준형은 오랜 잠에서 일어난 공주님은 안 어울리고 아무튼, 정말 용준형이 그 타이밍에 눈을 떴다. 용준형은 아주 가까이의 내 얼굴을 훑으며, 잔뜩 피곤에 절은 얼굴로 뭐야. 하고 된 소리를 했다. 죽은 용준형이 다시 살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막연히 예감하긴 했는데, 내 포기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다. 난 그냥 이런 용준형과도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감정이 예정보다도 미적지근하게 변화하서 그렇지 여전히 용준형은 나에게 매일 같이 다른 설렘 따위를 가져다주곤 했다.

“준형아, 밥 먹으러 가자.”

난 최대한의 따뜻한 목소리를 내었고, 용준형은 그 순간, 내 뒷목을 잡아끌어 또 다른 입맞춤을 선사했다. 나는 숨을 멈추고 눈을 꽉 감아버렸다. 설렘은 원래 떨림으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설렘이 있을수록,
용준형 또한 가파르게 변화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용준형에게 변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용준형은 이따금 무심코 나를 만져보기 시작했다. 나를 만진다는 의미는 아주 프레쉬하고 소프트한 것들이었다. 어떤 날에는 정수리 가까이 제 손을 뭉개듯 내 얼굴이 저에게서 꼬꾸라질 때까지 만져보기도 하고, 과외 도중 채점하고 있는 내 손에 들린 색연필을 갑자기 만지는 바람에 동그라미가 어그러지는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춘추복에서 하복을 입게 되던 날, 용준형은 문득 내 팔을 스윽 만져보았고 나는 오소소 소름이 끼치지도 했다.

“예전보다 살이 빠졌던가?”

용준형이 갸웃- 했을 때 나는 양호실에 가보자고 했었다. 용준형의 팔을 붙들고 쭐레쭐레 양호실 입구의 체중계에 몸을 달았을 때, 확실히 4KG정도 살이 달아나있었다.


과외를 하러 가던 날, 다르지 않게 과외비가 들어와 엄마가 싸준 오층 찬합을 들고 용준형의 집으로 향했고, 용준형이 경쟁적으로 밥을 비운 그 날, 설거지 하는 내 뒷모습을 만져보며 허리춤을 간질이며 간지럼을 탔던가, 했을 때 나는 온 몸을 웅크리고 자지러지게 웃어대었다.

“아, 하지마.”

진짜 간지러워. 하지마.

키들키들 거리며 어깨까지 들썩이고 웃었을 때, 용준형은 특유의 웃음을 짓지 않고 묘한 얼굴을 했다.

“기억이 안 돌아오는 건 여전해.”

근데. 확실히, 난 너를 많이 만졌나봐. 소름끼치도록 익숙해.

오소소소- 또 한 번 나도 소름이 끼쳤다.


그 날 꿈에, 죽은 용준형이 나타났다. 지금의 용준형이 아닌 죽은 용준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아주 과감한 스킨십 따위 때문이었다. 용준형은 마음대로 날 만지고 또 언제나처럼 강간할 것 같은 가해자의 얼굴을 했다. 그런 용준형에게 난 기꺼이 다리를 벌려주었다. 항상 피해자처럼 또한 누군가에게 우리의 모습이 비정상처럼 보여 경멸될까봐 두려워했던 마음들은 그 꿈 안에 없었다. 나는 용준형을 증오하도록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꿈 안에서라도 녀석에게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근데, 꿈 안의 나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니, 죽은 용준형은 당연히 없었다. 나는 그 순간, 너무 서러워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용준형은 내 울음에 깨었지만, 무슨 이유때문인지도 묻지 않았고, 뭐든,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꼭 내가 어떤 꿈을 꿨는지 알고 있는 듯 그런 눈으로 나를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냥, 죄책감 같은 거였나 보다. 용준형과 싸웠던 그 날에도 사라져 줄까 묻던 용준형에게 그래 그러라고- 장난으로라도 그런 얘기는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용준형은 정말로 내 인생에서 꺼져줄 줄이야. 원래 그렇게 말 잘 듣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아니, 말을 잘 안 듣는 캐릭터였던가. 도통 모르겠다. 실은, 용준형은 제 외로움을 호소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데. 나도 그걸 알고 있었는데, 언제나 삐딱이 용준형은 날 몰아세우고 골려먹어야 좀 살만한 듯 굴어서 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난 결코 어떤 순간에도 그런 용준형이 싫었던 건 아니다. 그냥, 나는, 그저, 용준형이 어떻든, 다 받아들이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지금의 용준형에게 다시 그 때로 돌아가 달라고 사정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죽은 용준형을 돌이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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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준형과 나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죽은 용준형에게 하지 못해 아쉬웠던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나갔다. 아주 사소한 입버릇부터 고치는 것이었다. 되도록 격양되거나 짜증스런 말투를 바꾸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말을 조금 느리게 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버릇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럼 이상하게도, 용준형은 오래 한 템포 더 쉬어주었다.

용준형과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녔지만 기억이 돌아오는 것과 정말 잃어버린 것들을 명확히 할 수 없으니 평생 지금의 정도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용준형은 무덤덤해했다. 나도 꽤 많이 수긍하게 된 사실에 불과했다. 물론 불쑥불쑥 무의식중에 지금의 용준형이 죽은 용준형 같은 반응-물론 어투나 억양은 다르지만-을 하면 뒤집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나 그리움이 있긴 했어도 잘 견뎌 질 만큼일 뿐이었다. 오히려 가끔 꿈에서 보이는 죽은 용준형은 정말로 애틋해 죽고 싶은 정도였지만.

요즘 나는 지금의 용준형에게 새로운 나, 혹은 아주 진실한 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감정선에 눈이 어두워 거짓말만 일삼았던 나 또한 죽이고, 짝사랑으로 끝낸 죽은 용준형에 대한 마음을 지금의 용준형에게 마구잡이로 퍼붓는 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별 것 아니었다. 과외 하는 시간에 꼭 손을 잡고 있는 다던가, 함께 드라마나 예능을 챙겨보며 오징어를 뜯고 용준형의 무릎에 어깨에 체온을 맡긴 다던가 하는 것들이었다. 간지러워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런 대에 곧잘 받아주는 용준형이 있어 가능했던 것도 싶다.
우습도록 몽롱한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서로 날이 바짝 서서 날 것처럼 치대던 몸뚱이도 이따금 자연스럽게 받아주고 받아들이고 했다. 치열하고 다이나믹하지 않았어도 여전히 우리가 이렇게 부대끼는 걸 보면, 기억이 없어진 용준형이라도 그 몸이 다 기억하고 감정은 여전히 잠재하고 있었나보다. 우리가 친구이상의 감정까지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이상하지만치 아무렇지 않아하니 말이다.
난 녀석과 몸을 부대낄 때만큼은 죽은 용준형에 대해 회상하는 일이 잦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부딪히는 박자와 살이 쓸리는 속도가 무섭도록 같았기 때문이다. 죽은 용준형도 이때만큼은 신랄할 정도로 다정했었다.



“요즘 꿈을 꾸는데.”

꿈에서라도 나를, 또는 저 자신을 기억할까 싶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깨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죽겠어.

그러면 나는 용준형에게 어떤 식이든 쉽게 죽는다는 말을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비가 오면 용준형은 오래 아팠던 무릎이 다시 욱신거린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난 그런 용준형에게 기억은 욱신거리지 않느냐고 도리어 묻고 싶었다. 용준형은 하교를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오늘 하루 종일 아프다더니, 정말로 무릎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아찔해서 내일은 조퇴증을 끊어 병원에 가자고 말할 판이었다. 내가 녀석을 일으키려고 양쪽 팔 사이에 내 팔을 쑤욱 집어넣었을 때, 용준형은 드디어 신경질 적으로 내 배려를 내쳤다.

“생각해봤는데.”

짜증스런 얼굴이 내게 돌아왔다.

“넌 이제 나 아닌 거잖아.”
“…왜 이래.”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어서 일어나.

나는 다시 녀석을 일으키려 손을 뻗었다. 이번에 용준형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었다.

“그만 해.”

……
……

용준형이 정말로 질린 얼굴을 했다. 나는 그래서 선뜻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지켜내려고 몸뚱이를 바싹 움츠렸다.

“나 이제 옛날 용준형 아니잖아.”

우리 집에 옛날 용준형 무덤이라도 만들어 놓을 테니까, 추도 하고 하고 가던가. 씨발.

그렇게 말하고도 용준형은 여전히 무거워 보이는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 무릎을 심하게 절룩이며 날 지나쳐갔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선뜻 용준형을 따라나서지 못했다.

“…….”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냥, 난 별 것 없었다. 지금의 용준형에게도 익숙해지고 싶었다. 서로 익숙해지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나는 속으로 용준형을 골백번도 더 외쳤다. 그게 지금의 용준형인지 죽은 용준형인지 나도 이제 모르겠다.




마음의 겨냥이 어긋나고 용준형과 소원한동안 나는 색연필을 자주 사고 자주 씹어 부러뜨렸다. 이제 죽은 용준형은 꿈에 조차 나오지 않았다. 용준형은 여전히 교실 제자리에서 꿀잠 중에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이면 소심하게 녀석을 깨우기 위해 책상을 몇 번 두드리고 도망치듯 교실을 나왔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용준형이 없는 건 정말로 슬픈 일이다. 죽고 싶다.





_






아프다는 꾀병을 부리다가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용준형의 집에 과외를 오던 날이었다. 요즘 주말이 너무 싫고 무서워졌다. 용준형을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적합할 거다. 나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 항상 학교를 돌아 용준형에게 가는 노선을 바꿔서 처음으로 용준형이 차사고가 났던 구질구질한 길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용준형이 매일같이 날 집에 데려다주었던 게 까마득했다. 이것마저 추억에 있구나 싶어서 또 다시 죽은 용준형을 돌이켜보았다.

“…….”
“…….”

아직도 용준형의 차사고 현장에, 허연 칠이 다 가시지 않은 체였는데, 그 때, 문득 그 길가를 반대로 두고 용준형과 마주했다.
저게 살아있는 용준형일까 싶어서 눈을 몇 번이나 비벼 다시 보아도 용준형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용준형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혹시 저게 내가 잘못 본 환상일까 싶어서 나는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왠지 환상이라면 날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죽은 용준형의 영혼 같은 게 여길 떠도는 게 아닐까 헛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뭐가 빠를지 생각해봐.”

가로질러 나에게 온 용준형이 부산스러운 내색을 했다. 가까이 온 녀석이 조금 절룩거리는 걸 보니, 지금의 용준형인게 분명했다.

“내가 너를 기억해내거나.”
“…….”
“네가 나를 잊거나.”

대체 뭐가 빠른 거냐.

용준형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이렇게 매일 와서 생각해봐도 기억이 안 나.”

난 이렇게 노력 중인데.

나는 별 수 없이 울었다.

“말해봐.”

넌 대체 무슨 노력을 하고 있어.

내 용준형은 여전히 사고현장 이 전의 용준형에 멈춰있나 보다. 더 나아가지도, 더 퇴보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노력 같은 거 하고 있지 않다.

“미안해.”
“노력해, 이기광.”
“…미안해.”

노력이라도 해 봐.

용준형은 급기야 날 다그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억억거리며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용준형이 무너질 것 같이 울었다.







fin. 201010

혹시 모르잖아. 용준형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그런 건 정말로 모를 일이잖아?

 
아. 노력하라는 준형이가 어떤 마음이였을지 어렴풋이 느껴져서 어줍잖은 동질감을 느껴요.
정말이지 누나 글에 나오는 준형이는 그리고 기광이는 참 예뻐요.
청춘이라 그런가봐요.
청춘은 늘 불온하고 불완전하고 불안하죠. 그리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것을 온전히 누나 글 안에 이 녀석들은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 글을 보면서 더 가슴시렸던 것 같아요.
고마워요 누나.
뭔가 굉장히 피곤하고 노곤한 마음에 지쳤었는데.... 누나 글 보니까 사실 조금 더 힘들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조금 더 편해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
 
결국에 준형이도 알고 있었던 거군요.. 하긴 모를 수가 없는거겠죠.. 그래도 주녕아 기억못해도 주녕이는 주녕이잖아. 왜 그래.. 그러지 마요... 힝... 진짜.. 이건 심각한 해피엔딩이다.. 아님 함께하는 새드엔딩이거나.... 준형이가 기억이 돌아 오지 않을까? 이제라도 저제라도 몸 부대끼면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봤는데... 이 결말이 더 좋아요... 잊거나 기억해내거나... 뭘 하든 너희가 함께인 사실엔 변함이 없잖니... 흑흑 누나 잼나게 보고 가요. 진짜... 이런 결말..짱이다...
 
아.... 상편부터 마음졸이면서 봤어요. 하편에 들어서는 더... 지금도 제 가슴이 쪼그라져있어요ㅠㅠ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 '어, 용준형!' 했는데... 이기광의 용준형이 아니라 그냥 본래의 용준형, 용준형의 본성이 드러났던거여서ㅠㅠ 준형이도 준형이 나름대로의 노력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군요. 그랬겠죠. 이기광과 계속 함께 할수록 이기광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자신이, 본인도 궁금했겠죠. 과연 그 전의 나는 어떤 이 였는지, 이기광과 자신은 무엇이였는지.. 에구구... 노력하는 용준형이 안쓰럽기도하고 이뻐보이기도하네요ㅠㅠ 애들이 힘냈으면..!
 
내가 정신이 없었던 건지 어쨌던 건지... 댓글 잘못 달았어요, 누나. 이제야 확인했네. 난 왜 上편이 지워졌다고 생각했지... 댓글 지우고 다시 씁니다.

피하기만 했던,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피하려 했던 이기광의 마음이 밝혀졌네요. 내가 널 기억하는 것과 니가 날 잊는 것. 무엇이 더 빠를지 생각해보라는 용준형의 말에 저를 기광이에 대입 시켜봐도 울 수 밖에 없네요. 눈물이 날 수 밖에... 이기적이었던 마음이 까발려 졌는걸. 알고 있지만 모른 척 덮어온 것이랑 남에 의해 다시 한 번 각성하게 되는 과정이. 매우 어렵잖아요. 진실해지라고 소리치고 있는 용준형 앞에서 그저 눈물만. 결국엔 준형이도 울게되고. 그러나 사실은 이 엔딩. 심각한 해피엔딩...
사실 대체 어떤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그 기준과 경계를 정하기가 어렵네요. 무엇이 해피이고 새드인걸까.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해피일 수 있을까...?

역시나 모르는 일이죠. 누나 말대로.:)
어쨌든 미성년/성년의 날에서의 준형이도 그렇고. 누나의 준형이는 항상 어렵고, 기광이도 어려워서 힘들어 보여요. 읽는 내가 벼랑 끝에 선 것 마냥 위태위태해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요, 누나.
몸으로 기억하는 기광이를 결국엔 준형이의 머리도 기억해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둘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렇게 우는 것 말고 뭔가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더 생길 것만 같아요.
 
이기광이 게으른 것도 아니고 용준형이 조바심을 내는 것도 아니라면 진짜 그 자리 그대로가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내가 받아들인 모습은 그래요. 노력하는 용준형의 머릿속은 기억을 잃었다기 보다는 뭔가가 기억을 막고 있는게 아닐까... 하네요. 그래서 더 조바심나고 어딘가 부족한 모습들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싶어요. 이만큼이나 이기광에게 익숙한 용준형이 이기광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기광을 잃은 건 아닌거, 말이 앞뒤가 맞는지 모르겠네요ㅎ. 이기광은 조금만 더, 한가지만 더 알아채라, 하면서도 여기까지가 좋은 것 같다. 지금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하는 게으른 마음때문에 용준형이 화가 난 게 아닐까하고 지레짐작해봅니다. 이러나 저러나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는 일이 조금 슬프네요. 누나 글로 오늘 새벽도 빵빵히 채웠어요:D
 
기억하지 못하는 끝, 무의식속에 죽은 준형이는 여전히 지금의 준형이로 남아있다고 생각 되는 것. 그 미련이라고 하기엔 모호한 감정이 아직 뒤숭숭한 기광일 괴롭혔고 그게 지금의 준형이에게 까지 느껴졌다는 것. 죽다 살아난 준형이에겐 기광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매일 새로움과 같았는데, 기억의 저편에서는 죽은 준형일 그리워하는 기광이의 모습을 발견했기에. 그럼에도 익숙하고 따뜻한 기광인 제 곁에 머물었기에... 한번 읽으면 뭐지? 무슨 감정이었을까ㅡ 싶었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까 준형이가 기광일 보며 느끼는 복잡함과 옛기억을 찾아헤매는 절실함이 느껴져서 제 마음도 너무 무거워지고 슬퍼졌어요... 심하게 다툰 준형이와 기광이가, 죽은 용준형의 사고현장에서 다시 만나서. 늘 묵묵하게만 있던 서로에게 곪은 상처를 드러내 듯 터뜨리는 감정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누나의 담담한 문체뒤에 둘이 서로를 향해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 심오했을지, 아마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준형이와 기광인 서로를 애증했던게 아닐까요... 기광이 시점으로 쓰여진 글이라 준형이의 마음을 알듯 모를 듯 싶었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 준형인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는게 느껴져요. 기광이의 허리를 감싸고 키스를 하고ㅡ 분명 지금의 준형인 옛준형이가 아닐텐데, 자기가 판단하기도 전에 익숙한 듯 기광일 갈구하는 제 자신이 보여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그러면서도 기광이가 마음 한켠 죽은 준형이가 돌아오길 바란다는 걸 느낀다는 것. 아마 제가 지금의 용준형이라면 묘하게... 제 죽은 옛 용준형, 저 자신을 질투하지 않았을까. 혹은 이 지질한 감정 뒤에 기광이가 사랑스럽지만 그만큼 밉지도 않았을까... 제가 너무 깊게 간건가요? 누나? 흐헝...!

마지막에 준형이가 우는 모습과 THE END 라는 글씨가 같이 떠오르는데, 순식간에 눈앞에 장막이 처진 것 같은... 연극을 볼 때라면 암전이 다가온 듯한 느낌이였어요. 해피도 아니고, 새드도 아니고. 그렇지만 '용준형이 죽었다' 에서의 해피엔딩은 꼭 준형이가 다시 옛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받아드려질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아리송한 엔딩이 너무너무 와닿네요... 오히려 행복한 결말, 로 끝났다면 기분좋게 웃으면서 읽어내려가고 리플을 달고 끌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정말 최고에요, 누나... 두번 세번 네번... 계속 읽으면 읽을 수록 준형이와 기광이 사이의 그 미묘한 감정들을 매번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하편으로 나눠진 단편이지만 제 마음엔 긴 장편을 하나 달린 것만 같은 그런 눅눅하고 얕게 가라앉은 감정이 남아도네요... 와, 누나. 다시한번 누나의 글에 감탄하고 갑니다... 정말로.
 
기억이 반드시 돌아올거란 예상을 무너뜨려서 좋네요.
누나 글의 용준형은 날라리같지만 생각이 깊어서 매력있고, 이기광은 착하지만 어려서 정이가요. 이글도 그래서 더 좋네요.
 
내 눈 앞에 그 사람이 있지만,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다..기억상실이라는 요소를 어디서든 보기는 쉬운데 이렇게 안타깝게 와닿는 건 처음인거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구요. (누나 글은 진짜 최고) 글 다 읽고 상상을 해봤어요. 내가 이기광이었다면, 용준형이었다면. 먹먹한 엔딩이라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와... 이 글이 완성되리라고는 정말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뒷편이 나와서 어찌나 기쁜지요ㅠㅠㅠㅠ 혹시나 준형이가 기억 상실이 아닌데 기억을 못하는 척 하는 건 아닌가.. 의심했거든요. 혹시 반전이 있을까봐요 ㅋㅋㅋ 그치만 역시 그런 스토리는 씽크빅 딸리는 제 머리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ㅋㅋㅋㅋㅋ 이런 멋진 엔딩을 내주시다니ㅠㅠㅠ 마지막에 너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냐는 준형이의 말이 확 가슴에 와서 박혀요ㅠㅠㅠ 기광이는 과거 준형이를 가슴에 묻고, 죽은 준형이를 보내주고 새로운 준형이와 새로운 사랑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하아.. 누나 진짜 너무 잘 읽었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준형이때문에 마냥 속상했는데 알고보니 준형이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군요. 이 글 하나로 제 마음도 들쑥날쑥했는데 어쩌면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준형이 덕에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기광이가 이제 전의 준형이를 놓아주고 지금의 준형이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준형이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을까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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