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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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시간을 지냈다. 윤두준과 함께인 시간이 꽤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군대얘기를 녀석에게 꺼 낼 수 있을 만큼 둘 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윤두준과 내가 과 동기들과 술자리를 굉장히 많이 전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윤두준의 인맥에 굉장히 가까워져 있었다.

의외의 소탈함 같은 게 나에게 있었는지 몰라도 윤두준의 무리에 나는 곧잘 끼어 있었다. 적당한 대화들을 나누고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취해서 집에 돌아오면 난 텅 빈 내 방 안에서 혹여나, 이기광이 느꼈을 것 같을 만큼의 거대하고 지독한 외롬에 시달렸다. 내가 지금 갈구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술자리를 피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게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평소에는 생각 속에서도 자꾸 접어버리려고 노력했던 이기광이 술을 마시고 나면 대범하게 그리워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이러다가 한 번 인사불성이 되어 이기광에게 전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럴 만큼 내가 용기 있는 놈은 아니었나보다. 그저 집에 오는 길에, 녀석의 집을 에둘러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한 없이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 볼 뿐이었다.



학기를 마치고 나자마자,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윤두준에게 급작스러운 문자를 했다.

야,나입영통지서나왔다.한달뒤에간다.

속 시원하게 문자를 보내놓고, 쉬려고 침대에 드러누웠는데, 곧바로 윤두준에게 전화가 쏟아졌다.

- 만나자.
“내일.”
- 아니, 지금 당장.

아직 한 달이나 남았고, 우린 아직도 볼 시간이 많다고 설득했을 때 녀석은 그렇지가 않은 투를 했다.

- 일단 만나자, 용준형.

여유 없는 말투에 의아해하며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가, 곧장 집을 나오는 길이었다. 어디를 또 나가느냐는 엄마의 날카로운 말이 돌아왔다.

“좀 봐줘.”

엄마 아들 한 달 뒤에 군대 가잖아. 방탕한 생활을 할까하고.
가볍게 웃어버리면 엄마에게선 으름장이 돌아왔다. 넌 언제나 방탕했다 아들아.



아직은 마땅한 술집을 찾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커피숍에 들어서는데, 윤두준은 메뉴를 고르는 둥 마는 둥 해서, 난 그냥 적당히 달짝지근한 커피를 시키고, 내 것은 시럽까지 꼼꼼히 체크한 라떼를 주문했다.

“보내려니 벌써 아쉬운가 본데 친구.”

내가 좋은 친구를 둔 모양.

하고 잘게 웃었는데, 왠지 윤두준은 그렇게 시원하고 웃지 못했다. 그래,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걸 나에게 말하고 싶은 거다. 윤두준은.

어떠하든, 무슨 얘기이든, 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채근하지 않았다. 날이 참 좋았다. 더울 때도 금방 오고 금방 가더니, 추운 계절도 금방 찾아온다. 이러다가, 금방 추운 계절도 가겠지 싶다.

내 안의 이기광처럼. 나에게 그렇게 매정한 그 녀석처럼.



커피를 다 마시지도 않고, 윤두준은 술집이 열기 시작했을 때쯤 자리를 일어나자고 했다. 그렇게 커피숍을 나올 때까지 윤두준은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는지 몰라도, 나는 상황에 언제나 적당한 관심을 두었다. 이러다 싱거운 얘기로 마무리를 지을지 몰랐다.
그 때까지, 난 윤두준에 내게 이기광에 대한 얘기를 할 거라도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윤두준은 소주를 한 병 비우고 나서야 제 말을 시작했다. 어쩐지 한 병을 비우고도 녀석은 말짱한 얼굴을 했다.

“기광이 말이야.”

나는 녀석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된 ‘이기광’ 때문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억지로 웃는 얼굴을 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었다.

“실은,”

…조금 안 좋아.

뭐가 대체. 몸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이 안 좋은 거냐고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윤두준에게서 어렵게 나온 말인 만큼 이어질 게 많을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더 이상 마주 앉아 녀석의 술친구를 해줄 수 없을 만큼 나는 녀석의 이야기에 집중해 있었다.

“너랑 사이가 좀 안 좋아지고 나서.”

갑자기, 또 통원치료 시작했거든.
……
너, 기광이 우울증 있는 거 몰랐지. 그거 때문에 휴학도 하고, 그랬는데.

알고 있을 리가, 전혀, 없었다. 나는 뭔가 좀 초조해져서 다리를 몇 번이고 떨어대었다.

엄마 떠나고, 새 어머니 생기고, 혼자 살게 되고, 그러면서 맘고생 많았거든.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도 나랑 병원 자주 다녔었어.

그랬느냐고, 다 지난 추억 얘기하듯 반응할 수 없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표정도, 생각도 없이 녀석의 앞에 그저 앉아 있었다. 소주를 마시지도 않은 식도가 쓰라림에 들끓었다. 고통스러워서, 급기야 나도 조금 물처럼 소주를 한 잔 기울였다. 녀석이 맨 정신으로 못 할 말이었는데, 맨 정신으로 내가 들을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기광이 집에 있잖아.”

그 겉포장 안 되어있는 영양제 통 같은 거.

난 그제야 내가 어렴풋이 짐작 했던 ‘윤두준이 이기광에게 챙겨줬을 비타민제’가 생각났다.

“상태가 호전돼서.”

이제 다시는 안 먹을 줄로만 알았어.

이번에 윤두준은 술 대신 담배를 찾았다. 돛대를 꺼내고 라이터를 이리저리 찾는데, 있는 것 같지 않아 난 술집 이모에게 라이터와 재떨이를 주문했다. 이번에 다시 병원 가서 새 약 받아왔거든. 난 녀석의 담배 끝에 불을 데 주었다.

“약이 강해서.”

먹고 취해 있으면 곧 잘 사람을 못 알아봐.

나는 빈 술잔을 바라보았다. 술잔으로 어렴풋하게 내 얼굴이 비쳤다. 술잔을 동그랗게 돌리는데, 나 한 번 이기광 한 번, 번갈아서 나타났다. 그동안 내가 고통스럽게 앓았던 이기광병이었는데, 난 그보다 더 극심한 병을 이기광에게서 재발하게 만들었다.

“근데 요즘,”

약만 먹으면, 널 찾아.
……
맨 정신도 아닌 녀석이, 그렇게나, 널 찾더라.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난 곧장 이기광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윤두준은 이 말을 듣고나면 내가 이런 식으로 반응할 것을 알았는지, 먼저 손을 흔들었다.

“가라, 준형아.”

나는 급하게 손만 들어보였을 뿐, 흔들어 인사를 해 줄 여유도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무조건 달렸다.
이기광에게로.





생전에 우리 집 담조차 넘어본 적이 없었다.
인적 없는 새벽에 남의 집을 타넘는 건 대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그보다도 절실한 것이 있어 이기광의 집 담을 타 넘었다. 실은, 초인종 같은 걸 누를 용기 따위가 없었다. 초인종을 누른다고 해도, 녀석이 열어줄 거란 보장도 없다. 모든 게 날 두렵게 만들어서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혹여나 녀석이 자고 있는 데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어쨌든 밤이었고, 동네는 을씨년 할 정도로 추웠다.
정말로 추운 계절이 많이 다가와 있었다.

이윽고, 녀석의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집 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아주 고요했다. 집 안에 동네만큼이나 을씨년스럽기까지 해서 몸을 떨었다. 집 안은 익숙한 그대로였다. 화면이 멈춘 노트북과 라면을 나눠먹던 작은 탁자가 있었다.

근데 그 탁자 위에는 예전에 보았던 것 보다 더 큰 하연 약통 하나가 올려져있었다. 저게 아마도 윤두준이 말한 그 약이 아닌가 싶어서 한 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울컥하고, 이상한 것들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문이 살짝 열린 이기광의 방 안에 들어가 보았다.
이기광이 이불은 덮지도 않은 채 잔뜩 웅크리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둘이 눕기에 비좁을 침대라지만, 지금 이기광의 비쩍 메마른 체구를 보면, 누가 봐도 침대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넓었다. 입을 곽 다물고, 이불을 덮어주려 녀석을 안아들었을 때, 이기광이 눈을 떴다.

“준형이야?”

묻는 얼굴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약기운에 취해있는 게 분명할 정도로 눈엔 초점이 별로 없었다. 정말로 마약 같은 것에 취한 것처럼 몽하고 몽롱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나를 직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예전처럼, 내가 멋모르고, 이게 정말 이기광인 줄 알고 달려들었던 녀석이었다. 그 때, 내게 안겨든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약에 취해서 사람을 분간하지 못하는 녀석이 무의식중에 찾은 나를, 나는 진짜의 나를 찾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 나다 이기광.

말 할 새도 없이 녀석이 나에게 안겨들었고, 난 녀석을 바짝 안아들었다. 몸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렇게 꼬박을 와서 윤두준이 챙긴 이기광은 나에게도 으레 이렇게 가벼이 안겨있었다.

…살이 많이 빠졌네. 기광아.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눈을 꽉 감아보았다. 아픈 건 녀석인데, 왜 내가 더 아파야 하는지, 답을 내지도 못한 채, 실컷 그 아픔을 견뎌야 했다.





죽은 송장처럼 이기광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마른 등을 수도 없이 도닥이다가, 해가 뜨고 나서야 나는 겨우 녀석의 집을 나왔다. 그 마른 얼굴에 볼에 입술에 수도 없는 입맞춤을 해주고 매일을 빠짐없이 이렇게 녀석의 집을 들렀다.

약을 복용한다는 이기광은 좀처럼 깨어나 말짱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윤두준은 아직 이기광이 약에 적응하는 중이라 그럴 거라 했다. 전보다 더 강한 약이라 그럴 거라 예측했을 뿐이다. 이기광이 말했던 내가 모르는 이기광은, 혹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내가 알기를 두려워하던 모습이 정말로 이런 걸까, 싶어 끊임없이 녀석을 내 마음 속에 다르고 또 다른 모습으로 갱신하고 재정립했다.



일전에 이기광이 맛있게 먹었던 곰국을 엄마에게 다시 졸라 녀석의 집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혹여나 말짱한 정신에 출출해지면 은연중에라도 챙겨먹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빠르게 입대날짜가 다가왔다. 숨이 차게 녀석을 챙기기도 아까운 시간에 나는 녀석과 생니별을 고하듯 내 손으로 입대를 앞당겼다는 게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입대 날짜를 미룰 수 있을까 싶다가도 그걸 고민할 시간에 더 녀석에게 집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 날이 삼일 전으로 다가왔고 집에 좀 붙어 있으라는 엄마의 으름장도 많이 없어져있었다. 윤두준과 술자리를 가졌다. 예전에는 금기시 했던 이기광의 이야기를 우리는 곧잘 나누고 공유했다. 윤두준도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이 이기광의 완고한 태도 때문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왜 그렇게 나에게 날을 세우고 숨기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을 초라하다 말하는 이기광은 나에게 아련하고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시계를 쳐다보았다. 조금만 있으면 입대 이틀 전이 된다. 그 카운트를 하는데, 윤두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기광아.”

시끄러운 술집 안인데도 수화 건너의 말짱한 이기광의 목소리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어딘데. 잠깐 나올래?”

혹여나 내 얘기를 해서 녀석의 기분을 그르칠까 싶어 나 있다고 하지 마. 하고 윤두준에게 온통 말도 안 되는 손짓 발짓을 했다.

“밖이라고?”
- 어. 아는 형 만났어.

선명하게 들리는 ‘아는 형’이라는 말에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정신 차리고 났더니 혼자더라. 그래서 외롭더라. 그리고 나면 이기광에게 순차적인 게 무엇이더라. 를 연관 지어 생각하다보면, 답이라는 건 빤했다.

‘아는 형’

왜 그랬는지 몰라도, 예전에 이기광이 나와 영화관에 갔을 때 ‘아는 형’이라고 소개했던 사람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배가 부른 여자와 있었었다. 왠지 불길해서, 난 또 한 번 윤두준을 그 자리에 두고 나왔다. 아직 이기광과의 통화로 핸드폰을 들고 있던 녀석에게 나는 전화할게, 하듯 손으로 시늉을 하고 재빠르게 가게를 나왔다.



여느 때와 다르게, 퇴근 통증이 심했다. 택시가 더디게 움직일수록 견딜 수가 없이 괴롭고 선명한 것들이 치밀어 올랐다.

녀석의 집에 택시를 세우고 곧바로 내렸다. 대문이 잠겨 있는지 열리지 않아,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른 건 정말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예전엔 용기 없어 누르지도 못한 걸 수도 없이 누르고 대문을 발로 차 보았다. 집에 이기광이 ‘사람’과 있다면 방해하고 싶었고, 만약에 없다면 그보다도 다행인 시나리오는 없었다.

때 마침, 이기광의 집에 좋은 세단 하나가 멈춰 섰다. 예상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 가운데, 하나가 등장했다. 그 세단의 보조좌석에서 이기광이 내리고, 운전석에는 내가 예상했던 예전의 그 인물이 맞았다.

‘아는 형’

그 얼굴이 내리고 있었다. 이기광은 정말로 놀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는 이성을 잃었다. 일전에 그렇게, 저 남자가 여자와, 그것도 임신한 여자와 함께인 걸 보고도 이 남자를 만날 용기가 있었을까, 어이가 없었다.

“얘기 좀 해.”

준형아, 왜 그래. 하는 이기광의 손목을 잡고 실랑이 중에 남자가 다가와 만류했다.
다가오지 말지.
다가오지 말라고 참고 참던 게 폭발해서 나는 그만 남자에게 주먹질을 했다.

“용준형, 너 미쳤어?”

한 대 제대로 때리고 나니까 그제야 손이 얼얼한 만큼의 정신이 돌아왔다. 남자는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너야말로 미친 거 아니야?”

전에 봤잖아. 너. 저 남자 여자랑 애까지 있는 유부남을 넌, 너는.

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녀석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녀석이 콜록콜록하고 맥 못 추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또 정신이 들어 녀석을 밀치듯 놓아주었다.

실망스러웠다.
그래, 예전처럼 외롬타고 그러면 그냥 습관적으로라도 날 찾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했었다.
상상만 할 때는 그렇게 좋았었다.

근데 갑작스럽게 후회가 몰려왔다. 내가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굴 게 아니었다. 이기광은 어차피 날 좋아하지도 않고, 내가 녀석을 좋아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미 그건 계절이 바뀔 정도로 아주 한참 전에 끝났고, 나는 더 이상 녀석에게 관여할 수 있는 입장도 되지 못했다. 윤두준이라면 모를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게,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용준형.”

준형아.

길을 내려오는 길에 이기광이 나에게 오랜만에, 불러 주는 이름에, 나는 꼭 돌아보고 싶었는데도 몸이 그러질 않고 자꾸자꾸 그 목소리에서 멀어졌다. 울화인지, 오열인지 모를 답답한 게 마음에 차고 들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기광을 이제야 봤는데, 나와 녀석은 또 이런 거지같은 상황을 마주했다. 차라리 약에 취해 있다가 설핏 깨어나 준형이냐고 묻는 이기광이 훨씬 나을 뻔 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한참을 걸었다.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게 이리저리 헤매다가 멈춘 곳은 이기광과 쿨피스를 나눠먹었던 포차였다. 그런 살가운 추억 같은 게 우리에게 있었더랬다. 나는 무작정 그 안으로 들어가 우동과 소주를 시켰다. 덩그러니 앉은 의자와 탁자 맞은편에는 우동이 맛있다며 웃어줄 이기광이 더 이상 없었다. 나는 허공의 녀석을 향해 소주잔을 치켜들었다.

내 짝사랑에 건배.

쨘, 하고 소리 없는 메아리가 귓가에는 선명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스트레스 같은 게 있었는지, 그걸 풀려고 무작정 마신 술이 더 안 좋게 몸에 퍼져, 걸음이 불안정할 정도로 취했다. 열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땅을 짚고 주저앉았다. 근데, 머릿속의 이기광은 아까전의 그 모습 그 대로 선명하게 있었다. 내게 멱살을 잡히고 고통스럽게 콜록대는 얼굴을 생각할 때마다 내 목을 졸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 골목이 그 골목이라서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무의식중에 익숙한 이기광의 집에 도착해있었다.

우리 집보다도 익숙한 이기광의 대문 손잡이를 잡으며 비슬비슬 웃어버렸다. 이상하게 용기 있게 밀어보자, 대문이 열려있었다. 다시는 열려 있을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렸다.
어라, 열려있네.
생각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건데 싶고, 몸은 자꾸 녀석의 집 현관에 가까이 갔다.

비밀번호를 누르던 손이 자꾸 빗겨가기를 반복하다가 세 번째, 겨우 현관이 열리던 찰나에 이기광이 현관에 서 있었다. 아까 본 이기광일까. 아니면 약에 취한 이기광일까. 약에 취한 이기광은 이렇게 온전히 서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정말 아까 본 그 이기광인가 싶었다.
머릿속은 무언가 끊임없이 계산 중이었는데 상관없었다. 나는 그 좋은 허세를 부리다가도 이기광 앞에 서면 한 없이 낮아지고 무너졌다. 난 가만히 선 녀석에게 다가가 그 얼굴과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보았다. 큰 눈동자에 내가 선명하게 비쳤다. 잔뜩 취한 고주망태 같은 못난 내가 거기 있다.

“기광아, 아까는.”

정말 미안했다 내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잘 몰랐다. 취중진담이라고 하니까, 평소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는 내가 이렇게 녀석의 앞에서 무어라 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분명했다. 무엇으로도 속이 후련하지 않게 나는 현관에서 여전히 녀석에게 무언가를 토로해냈다.

이기광이 그런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도 같은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난 계속 내 얘기 같은 걸 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그렇게 한 순간, 놓아버린 것 같았다.





_






“준형아. 용준형.”

일어나봐.

잠을 좀 깨고 보니, 나는 기억이 끊겼던 부분과 다르게 화장실문턱에 쪼그라져 있었고, 이기광은 나에게 숙취해소 제를 건넸다. 나는 그 와중에도 숙취에 웩웩거리며 녀석의 호의를 일단 받았다. 역으로 올라오는 걸 숙취해소제로 막으려니까 속이 더 울렁거렸다. 다 비운 병을 손이 닿는 곳에 내려놓았고 녀석은 내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몇 시쯤 됐으려나, 속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잔뜩 인상을 쓰고 녀석을 한 번 바라봤다가, 괜히 머쓱해서 거실 쪽을 휘휘 둘러보고, 머리가 아파서 눈을 감고 또 뜨기를 반복해보았다. 모르는 새 몇 번 게웠더니 그래도 좀 안정이 되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녀석과 나는 화장실 양 쪽의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 처음의 때처럼 우리는 이렇게 가깝게 마주보고 앉을 수가 있다.

“못 이길 걸 왜 그렇게 마셨어.”

…그러게.

비죽 웃어버렸다. 동시에 한숨 같은 게 터졌다.

“정신 잘 챙겼어?”
“어.”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기광은 날 일으켜 세웠다. 녀석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가 6시를 향해있었다. 그게 새벽일지, 저녁일지는 몰랐다.

난, 이제 하루만 지나면 군대에 간다. 아니, 취한 새에 이틀이 홀라당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나라에서 날 잡으러 오려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난 이기광을 따라 집을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해가 어스름한 걸 보고 핸드폰 액정을 켜 보았더니 오후 6시는 아니고 새벽 6시 같았다. 그래서 날짜도 곧 세어보았는데, 확실히 아직은 내일까지 시간이 있었다. 핸드폰에는 엄마의 문자가 쏟아져 있었다.

입대하루전이네집에가족들과눌러있을수없겠니.

나는 긍정의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과 잠깐 있다가, 집에 갈 참이었다.




“이모, 여기 해장국 두 개요.”

어느 가게에 들어가 마주앉자마자, 이기광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여기 해장국 진짜 잘 해.”
“…그래.”
“어. 두준이랑 많이 왔어.”

그래. 그렇겠지.

나는 고개까지 주억거렸다. 윤두준이 나보다 더하면 더 했지, 너와 덜 한 게 무어가 있단 말이냐, 도대체. 나는 허공에 혀까지 찼다.

해장국은 금방 나왔다. 먹음직한 깍두기와 김치가 시뻘건 게 독할 정도로 맵게 생겼다.

“보기만 이래. 안 매워.”

맛있어.

나는 무작정 펄펄 끊는 해장국에 밥 한 공기를 들이부었다. 인심 좋은 이모가 여기도 있었네. 밥이 한 바가지다. 밥이 많이 뜨거울까, 후후 불고 있는데, 이기광이 그 위에 김치를 하나 얹어 주었다. 나는 녀석을 한 번 쳐다보았더니, 녀석이 턱 짓을 했다. 먹어. 나는 숟가락의 반 입 정도를 먹었다. 괜찮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의 남은 밥을 입에 다 넣었다.

“괜찮지.”
“그러네.”

꼭 예전에,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포차에서 녀석과 우동과 닭발 같은 걸 먹었던 그 때 말이다. 너무 평온해서 숨이 다 막혔다. 그래, 이런 관계가 얼마나 좋으냐. 나는 나를 위로했다. 이기광이 내 전화도 안 받고,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을 때 얼마나 괴롭고 처절했던지, 다시 돌아보았다. 그 때보다야, 지금이 유토피아 같았다. 꿈같다.

우리는 서로 말 없이 해장국을 떴다. 해장국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녀석과 이걸 먹었다는 걸 추억하면 그것조차 냄새나게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 비식 웃음이 샜다. 이 와중에도 이기광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 아직 너에 대한 마음을 다 접지 못했노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기광아.”
“응.”
“나 내일 군대 간다.”

……

근데, 전혀 마음에 없던 다른 말을 툭 하고 테이블에 던졌다. 모든 게 ‘군대’라는 말로 다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기광과 추억할 것들이 참 많고, 그래서 나쁘지 않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평온 할 수 있을까.

“그래. 잘 다녀와.”
“어.”

나는 숟가락에 밥을 한 움큼 떴다. 우리 둘을 보던 아주머니는 우리 쪽에 밥과 국을 더 주셨다. 이기광은 내 국그릇에 더 많은 걸 채워 넣었다. 다행이었다. 녀석과 이 자리에서 함께 일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난다.

“다녀오면, 더 잘 지내보자.”

……친구로.

나는 지금 현재로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심장이 죄는 것처럼 아팠다. 이기광은 더 확실하게 되물었다.

“친구로?”
“그래. 친구로.”

나는 확답했다.
녀석과 더 깊어지려 발버둥친 시간들이 다 착각처럼, 다 죽어가는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무것도 착각이 아니다.
내가 이기광을 좋아한 것도, 이기광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광아.”
“어.”
“넌, 나 없을 때.”

외롭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아라. 그리고…
……
그리고.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작 이것뿐이라는 게 허무해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최선을 다해 이기광을 향했던 마음의 종말이 고작 몇 문장으로 조차 표현이 되질 않는다는 게 비참했다. 고개를 떨어뜨렸더니, 녀석의 담담한 어투가 돌아왔다.

“너도.”

가서 건강하고.

뭔가, 우린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작별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정말, 상관없는 거다.

한숨 같은 게 중간에 있었다. 그 사이에 추접스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식탁 위로 밥풀이 막 튀어 나오고 번들거리는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밥풀을 밀어 넣는 척 손등을 가져가 입 대신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한참을 불규칙한 숨을 골랐다.

이기광은 나에게 모른 척, 물 한 잔을 건넸다. 난 그것조차 마실 수가 없었다.

사물에도 배터리나 수명이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 만약 이기광에게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이미 그걸 다 써버린 것 같았다. 더 남아 있다고 해도, 한계에 다다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고개가 수그러질 수 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목이 너무 아래로 꺼져서 인지 입 안의 밥알들을 목구멍 뒤로 옮길 수조차 없었다. 눈에 튄 국물 자국을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가 않고 자꾸만 터져 나왔다. 자꾸자꾸만 흘러서 우리는 이 곳에 한참 고여 있었다. 이윽고 나는 소리 내어 억억 울었다.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질 못해 미안하다, 이기광.

자책감에 한바탕 울어버리고 다시금 모든 걸 청산해볼 참이었다.
그런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fin. 20100615-20110422

아주 늦은, 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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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이 있어요:) 이기광 시점.
지극히 평범한 연애. 아직, 끝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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