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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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든 그렇지 않든 띄엄띄엄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이기광과 나는 윤두준의 페이스대로 거의 움직여졌다. 그러니까, 난 윤두준의 페이스대로 움직일 생각 따위 없었지만 이기광이 윤두준의 페이스대로 움직여주면서, 수동적으로 내 페이스가 달라지곤 했다. 요즘 이기광에 의해 이뤄지는 내 페이스가 궁극적으로는 윤두준의 페이스가 되어버리는 게 허다할 정도로, 이기광은 윤두준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서서히 아니 급격하게, 윤두준과 함께 식당의 밥을 챙겨먹는 일도 잦고 도서관을 셋이 지키고 앉은 시간도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는 시험기간이면 자제하곤 하는 소소한 술 모임을 윤두준에 의해 꾸준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윤두준은 일전 술이 떡이 되었던 때를 기점으로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져 갔고, 만취한 윤두준을 땀까지 뻘뻘 흘리며 실어다 나르는 내 모습에 익숙해 질 때 즈음,
정말로 여자와 헤어졌다.
이기광은 윤두준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나보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날에도 무리하게 윤두준을 싸고도는 게 눈에 쉽게 들어왔다. 도대체 이기광이 왜 윤두준 때문에 저런 무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헤어지고 사귀는 게 뭐라고.
윤두준이 이기광에게 진짜 뭔데.
나는 이기광에게 대체 뭘까.
……

아니,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뭐라고.

윤두준의 감정곡선이 나날이 하락해 가는 시점에, 놀랍게도 내 상태는 고공행진 하고 있었다. 윤두준을 빌미로 이기광과 함께인 시간은 당연하게도 많이 늘었고 매번 이기광과 핀트가 어긋난 쟁점을 살짝 피해, 별로 시답지 않은 농이나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꽤 다 익숙해지면서 마음의 안정새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윤두준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나는 이 안정새에 미미한 감정곡선을 그리며 나름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

이기광은 내가 무거운 짐보다 더 불편한 윤두준을 제 집 거실에 널브러뜨리고 나면 꼭 냉수 한잔을 잊지 않고 건넸다. 처음엔 그게 날 위한 작은 배려정도 일거려니 하고 기분이 좋다가도, 한 편으로는 그저 지금 잠깐 이 순간의 작은 보상 같은 것 정도로 무마시키는 확고한 선일지 모른다는 부정의 가능성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어떤 감정인지 어떤 상태인지 그런 건 상관없다.
난, 그저, 이기광이 궁금할 뿐이다.
이대로가 괜찮은지. 상관없는지. 좋은지 싫은지 조차, 다 모르겠다.

“팔 떨어져.”
“좋아해.”

질문도 아니었는데, 쓸데없이 받아친다는 말이 그것뿐이었다.
그냥, 알려주고 싶었다. 생각해보니까, 나 아직 이기광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못한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직설화법의 말은 정말 진심을 담아하지 못하겠다는 그런 것. 흔해서 기계적으로 튀어나와 버린다는 소용없는 것.

“물, 좋아한다고?”
“그냥, 좀 알아두라고.”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
……

이기광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로 되었다. 무언가, 다르게,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겠지. 리스크가 높기는 하지만 마음을 멈출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이기광도, 역시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난 빼앗듯이 이기광의 손에 든 물 컵을 들고 단숨에 들이키고는 다시 그 손에 쥐어주었다.

“시험 끝나면,”

우리 사귈래?

자꾸자꾸, 나는 이기광에게 벽을 만든다. 이럴수록 자꾸 도망가려는 이기광을 모르는 게 아닌데 녀석이 눈에 밟히고 다 들켜버린 내 감정도 모르는 채 할 수가 없으니까, 나는 최선을 다 하는 거다. 이기광에게. 내 마음에게.

“…으음.”

그 묘한 침묵 속에 이기광도 나도 아닌 윤두준이 뒤척이는 소리 때문에 서로 소스라치듯이 놀랐고, 이기광은 자리를 피해 물 컵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가 현관 쪽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나는 벗기 불편해 내내 신고 있던 신발을 끌러내면서 작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자고 갈 거야.”

이렇게 가까이 있는 데,
마음은 왜 이렇게 머냐.




_






우여곡절 많은 기말시험이 끝나면서 방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위로주 행진을 거듭하던 윤두준은 꽤 많이 상태가 양호해져가고 있었다.

진짜 감기인가봐. 열 나.

새벽 4시 32분 경, 도착해있는 문자를 보자마자 침대에서 놀라 일어났더니 자랑스럽게도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 새벽 2시쯤 잠들기 전에 뭐하냐. 자냐. 라고 보낸 문자에 두 시간여 만에 받은 답장이었다. 시험에 윤두준까지 속을 썩이는 바람에 고생이 많았는지, 이기광은 시험기간 내내 골골대더니 시험이 끝나자마자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감기를 인증했다. 감기 아닐 거라고 고집을 피우더니 새벽 내내 고생했는지 모르겠어서 부랴부랴 씻고 나갈 채비를 하고 방을 나오는데, 엄마한테 붙잡혔다.
가뜩이나 요즘 집보다는 이기광 네 집에서 기생하고 있는 터라 식탁에 앉아 내내 잔소리였다.
좋아하지도 않는 몸보신용 곰국이다.

“아, 엄마 그거 알아?”

기광이 말이야.
……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엄마의 말을 적당히 잘라내고 꽤 심각한 척 얼굴을 구겼을 때 이기광이라는 이름자체로 온전히 내 페이스에 말려든 엄마를 보며 속으로는 꽤 쾌재를 불렀다.



물론, 화려한 말솜씨를 뽐내지는 못했어도 의도했던 반응이 엄마에게서 돌아왔다.
밥 한 그릇 후딱 해치우면서, 이기광에 대한 나만의 추측성 가족사를 들으며 엄마에게서 돌아온 건 당연하게도 따뜻한 곰국 일인분이었다. 약국에까지 돌아가서 종합감기약을 사고 이기광의 집을 향하면서 내가 말한 거대한 거짓말을 돌아보았다.
급작스런 엄마의 죽음과 일주일도 안 되어 재혼한 아버지, 그리고 새엄마와의 불화, 홀로 버려짐 등등 처음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깊숙이 아는 척을 해야 했고, 결국은 되도 않는 드라마 한 편이 완성 되어졌다. 이렇게까지 슬프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랬다.

세 번 즈음 연락을 하고도 녀석이 받지 않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는데,

“두준이야?”

방금 일어났는지 눈을 비비적대는 이기광이 방을 나오고 있었다. 미안한데 난 윤두준이 아니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고는 확실히 윤두준이 아님을 보고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밀번호 알아?”
“모르는 게 바보지.”

요즘 그렇게 들락거리는데, 제 집인 이기광이든 제 집처럼 능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며 들어가는 윤두준 때문이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잔뜩 뻗친 뒷머리를 하고 습관적으로 부엌에 물을 찾아 나선 이기광을 따라 들어가서 아직 김이 모락모락나는 곰국을 꺼내놓자 녀석이 식탁으로 조르르 달려온다.

“뭐야.”
“곰.”

오, 맛있겠다.

코맹맹한 소리를 내며 반대편에 앉아 그릇째로 한 모금마신 녀석이 꽤 유쾌한 웃음을 냈다.

“깊은 맛인데? 인스턴트 아니네.”
“어. 엄마가.”

그런 와중에 녀석의 이마와 못 뒤를 만져보았다. 조금 미지근하다.

“열난다면서.”
“밤에는 좀 심했다가, 아침 되면 또 괜찮아.”
“콧물감기약 사왔으니까, 밥 먹고 약도 먹어.”

그러고 보니, 몇 개 가져다놓지도 않은 내 티셔츠 중에 하나를 녀석이 입고 있다.

“티는, 어디서 났냐.”
“그러게. 옷장에 있던데?”

내가 이런 옷이 있었던가.

나는 그냥 웃었다.
내꺼다, 임마.



곰국을 뚝딱 해치운 녀석과 내가 티비 채널을 여기저리 돌려보는데, 내가 사온 약의 기운인지 아침잠이 덜 깨어서인지 옆에 멀뚱히 앉았던 녀석이 꾸벅꾸벅 졸다깨다를 반복한다.

“들어가서 자던가.”
“안 졸리거든.”

쓸데없는 고집을 피운다.
……
그러다 결국 그 작은 머리통이 내 어깨에 안착했다.
자꾸 웃음이 나서 계속 실실대길 반복했다. 딱 지금만 같으면 좋을 텐데, 친구가 아닌 전제가 붙어지면 더 좋을 텐데, 한편으로는 친구라서 다행일 정도였다.
그 순간, 이기광의 집 현관에 도어락이 열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않았어도, 윤두준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더 좋았을지 모르겠다.

“…왔냐.”
“있었네.”

가까이 온 윤두준에게서는 술기운이 훅 끼쳤다. 눈살을 찌푸리자, 녀석이 재차 제 몸에 코를 킁킁 댄다.

“냄새 많이 나지.”
“말이라고.”

주석선배 곧 입대래. 안 갈 수도 없고. 이기광은 아프대고.

이기광의 이마와 목 뒤를 몇 번 만져보던 윤두준은 잔뜩 취한 몸을 하고도 말짱한 척을 했다. 난 윤두준 대신 잠에 깊숙이 든 이기광을 안아들고 방 침대에 눕혔다. 밤새 내내 몸이 안 좋았다던 녀석의 얼굴을 오래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정말 혼자 고생이 많았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 괜찮은 척은 이 세상에서 일등일거다.

“밥도 먹이고 약도 먹였어.”
“어. 난 집에 가서 좀 쉬어야 되겠다.”

기광이 좀 부탁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간간히 들었던 말이었다. 셋 중 윤두준이 빠지고 둘이 남게 되면 으레 윤두준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근데, 새삼, 참 오랜만에 다른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에 윤두준에게 그 말을 들을 때면, 대체 뭘 부탁한다는 건지에 대해 깊게도 생각지 않고 대면대면 했던 듯 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이기광에게 혼자 이겨내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고, 윤두준만큼 나는 이기광과 함께이지도 못했다.
그런 것들에 사뭇 미안해졌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

우리도 군대는 갈 거니까 말이지. 셋 다 함께 입대하거나, 혹시 셋 다 가는 게 어려우면 너랑 나랑은 안 겹치게 군대 가는 거 어때. 뭔가 바통을 주고받는 그런 거랑 비슷한 건데, 아무래도 이기광은 혼자인 거 잘 못 견디니까. 번갈아 입대하는 거.

윤두준은 이기광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나에게 주정하듯 주절거렸다.

“…….”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나중에 신검 받고 나서 다시 제대로 얘기하자. 나 간다. 피곤하다.”

후드를 잔뜩 뒤집어쓰고 현관을 나가버린 윤두준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기광의 옆에 잔뜩 구부러지게 누웠다.
거실의 티비를 아직 끄지 않아 외화영화가 시끄럽게 재잘대고 배경음악이 줄줄 흘러나왔다.  
……
스무살이 되던 해에 우리 셋 중에 제일 빨리 생일을 맞이한 윤두준에게 신검통지서가 제일 먼저 날아왔더랬다. 군대를 가려고 저러나, 윤두준에 의해 이름만 대략 알고 있는 학교 선배가 입대라더니 그것 때문에 녀석이 신경을 쓰고 있나 하다가도,
윤두준이 말했던 일련의 입대 계획의 골자가 이기광을 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정확히 이해했다.
근데, 나에게 그런 건 아직 중요한 일이 아니다.

쏟아질 것 같은 잠의 시작 안에서, 난 여전히 달리기의 첫 출발선에 서 있다.





_






가족들과의 여름휴가라면 신경도 안 쓰는 내가 있는가 하면, 전혀 관계없는 이기광이 있고, 또 그런 데에 전적으로 참석하는 윤두준이 있기 마련이었다. 항상 극적으로 셋이 다른 면이 부각되는 때가 있다. 윤두준이 일주일이 넘게 가족휴가를 떠나고 난 그 틈새를 노려 녀석과 영화를 보러가려던 참이었다.

“넌 가족여행 어쩌고?”
“난 한 번도 간 적 없는데.”

일전에 이기광네 집에서 캔맥주를 하나씩 나누다가 휴가 얘기를 꺼내게 되었고, 엇비슷한 시기에 맞물린 윤두준과 우리 집 가족여행 이야기는 띄엄띄엄 진행되었었다. 물론, 별로 가족과 관련된 얘기를 이기광 앞에서 하는 것이 깨름칙스럽긴 했는데, 그 와중에도 가족여행에 제일 관심이 많았던 건 이기광 쪽이었다.

“가족여행. 재밌을 거 같은데.”
“재미없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데 재미없는 건 어떻게 알아.”
“그럼 네가 가든가, 나 대신.”

가족여행이 뭐 별거냐.
……
맨날 보는 얼굴…

실수다. 맨날 안 보는 너도 있구나.
잘못했다는 걸 깨닫는 게 얼마 걸리지 않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는 이기광이 또 참 고마웠다. 난 조금 더 머쓱해지긴 했지만.

“그래서 우리 뭐보나 영화.”

북적북적한 영화관에 덩그러니 나와 이기광은 예매한 영화표를 들고 서서 영화시간을 기다렸다. 녀석은 어느새 영화팸플릿을 들고 와서 들춰보았고, 난 양손에 한가득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있었다.
슬픈 영화 싫은데.
내용 없는 영화도 싫고.
줄거리를 읽으며 적당히 제 취향의 영화인지 아닌지 평하는 이기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단 둘이 보는 영화다. 진짜 단 둘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첫 영화도 본의 아니게 윤두준과 함께 인 것이 되었으니, 이번엔 정말 딱 둘 뿐이다. 그런 것조차 새삼스럽게 설렐 수밖에 없었다.

“기광아.”

그리고 이 공간 안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문득 낯선 얼굴이 기광의 앞에 섰고 나와 이기광은 동시에 앞에 선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 형.”
“오랜만이다.”
“결혼하셨다면서요. 들었어요.”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남자. 결혼한 형. 내가 모르는 사람.
어떤 것에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나는 억지로 불편하지 않은 척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녀석은 날 한 번 곁눈질 하고 친구랑 영화 보러 왔다며 너스레를 떤다. 남자도 역시 멀리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휴가인 김에 부인과 영화를 보러왔다며 웃었다. 다행히 같은 영화는 아니었고 금방 대화는 끊겼다.
남자가 뒤돌아 간 목적지에는 아이를 가진 듯 둥그런 배를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아는 형?”
“어.”
“어떻게 아는 형.”
“그냥. 고등학교 때 어떻게 하다가.”

그래서 알던 형.

이기광이 조금만 얼버무려도 난 조바심이 난다.

“잘 살고 있나보다. 그지?”

동의를 구하는 얼굴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저런 형 따위를 왜 추측해서 억지로 동의해 줘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난 정말 억지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나마 안심되는 표정을 하던 이기광은 아주 작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게.”
“…….”
“나 너랑 있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사람들도 이렇게 우연히 만나고, 이러다가 진짜 안 만날 것 같은 사람들 다 만나는 거 아니야?

헤죽 웃는 얼굴에 어떻게 아는 남자냐고 부추겨 물을 수가 없었다. 근데, 그런 내 얼굴을 이미 읽었는지 녀석은 아주 가만히 알 수 없는 얼굴을 했다. 예상했던 답안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알았어.”
“…….”
“몇 번. 자기도 하고.”
“들어가. 영화시간 됐다.”

알아봤자, 나에게 득이 될 게 하나도 없구나 싶다. 그 대신 윤두준을 좀 더 원망했다. 고등학교 때면 분명 둘이 사귀던 시점일텐데, 아마 사귄다는 것보다는 함께 있어주는 것 그 이상은 아닐 어쭙잖은 관계에서 그저 피상적인 만남이 몇 번 이루어졌을 남자들을 그려보았다.
끔찍하다. 젠장할.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한쪽 팔과 손으로는 턱을 괴고 한 쪽 손으로는 제 무릎에 가만히 얹힌 이기광의 손을 덮었다. 항상 몇 번은 실은 티를 내고 쳐내던 내 손을 웬일인지 그대로 버텨주는 이기광조차 지금은 왠지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허전하다 못해 답답한 가슴한 쪽을 퍽퍽 소리가 날 만큼 쳐 보았다.

더 숨이 가빠지고 화가 난다. 죽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상영 내내 지루하고 더디게 지나간 시간을 낭비하고 나란히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을 들러 이기광은 생수두통을 샀다.

“내가 들게.”
“됐어.”

녀석이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생수가 든 봉지를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내내 저기압인 얼굴을 풀 수가 없었다. 나도 이렇게 감정컨트롤을 못하는 내가 갑자기 생소하고 무서웠다. 조금만 건들이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의 나는 그저 내 감정들을 베이스로 깔아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두었나 보다. 알아 줄 때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겠지 싶었던 것들이 계속 미적지근하게 이어지다보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꿈에서의 달리기는 매번 최악의 기록을 갱신하는 중이다.

모든 게 다 불안하다.

“…못 해 먹겠네, 씨발.”

애초부터 이기광을 초인적으로 포용해줄 만큼 너른 마음 따위 나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매일매일 심장이 쪼그라들듯 바짝바짝 말라가는데 이해력과 한없는 마음 따위는 개뿔, 나란 인간은 원래 생겨먹은 게 옹졸할 뿐이다.

나는 나란히 걷던 큰 골목 어귀에 이기광을 돌려세웠다.
이기광은 여전히 내가 얼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싫다고 해.”

내가 존나 싫어서, 친구이상은 못한다고 하면 되잖아.

언성을 높여서 녀석을 위축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내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참아 낼 수 있을만한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 말로 이기광이 날 설득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럼 나는 또 한 동안 이기광에게 덜 안달하며, 대강 참아내며, 녀석을 포기하거나 포기할 수 없을 지라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나와 이기광은 서로를 또렷이 쳐다보았다.
이기광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준형아.”
“…….”

너, 날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

내 질문과는 확실히 핀트가 어긋한 또 다른 국면의 질문을 이기광은 나에게 내던졌다.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근본적인 질문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어떤 상관관계를 지녔는지, 나는 그런 것 따위 알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는 지금, 이기광, 너 자체가 좋은 거다.

“너, 나 모르잖아.”
“그래 몰라.”

지금 이기광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이 이기광이 좋다.

“네가 싫은 게 아니야. 근데,”

…알면 알수록,
……
내가 얼마나 초라한지에 대해 네가 아는 게 너무 싫어.

녀석은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시선을 피했지만 눈빛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

두려워. 무서워.

놀라웠던 건,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두렵고 무섭다고 말하는 녀석을 알 수가 있었다. 처음으로 녀석의 말 속에 어떤 것이 문제가 되어 녀석을 억압하는 지, 뒷걸음질 치는 지에 대해 들려왔다.
일순간 많은 것들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난 갑자기 웃음이 났다. 식 웃어내자, 이기광은 태나게 당황했다.

“초라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냐.”

……
…대체, 이기광이 초라하다고 누가 그래.

그렇게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몇 초를 유지하지 못하고 또 휴면상태로 돌아갔다.
이기광은 나를 그렇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보다.

옹졸한 나도 위로를 받을 겸.
녀석이 초라하지 않다는 걸 알려줄 겸.
나는 녀석을 한 번 안아보았다.

이보다 따뜻한 위로를 받아본 적도 없이 나는 평화로운 감정에 빠져든다.







to be continued

 
선플같은 거 집착하는 녀석은 아니지만 누나의 글에 가장 먼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참 좋은 것 같아요. (민망) 준형이와 기광이 사이의 놓인 벽은 정말 준형이가 만든걸까 생각해봤고, 그 벽뒤에 숨으려는 게 누군지도 생각해본 편. 너무 혼자 심각했나요. 어쨌든 그런 기분으로 이번 편을 봤습니다. 그 와중에도 외로움을 못견디는 기광이를 위해 군대까지 텀을두고 가려는 두준이와 기광이가 눈에 많이 들었고, 제 티셔츠도 아닌 걸 입고도 모르는 기광이가 마냥 귀엽고, 그걸 보고도 아무말 안하는 무심하게 다정한 준형이가 좋았어요. 음, 읽으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이쯤 하고, 한번 다시 읽을거에요.
 
여기시간으로 어제 밤에 올라온 것 보구 설레는 마음으로 일독. 폰으로 리플 남기려니까 오타가 자꾸 나서 ㅠㅠ 요로코롬 이제야 남깁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티는 많이 내지 않아도 그 작은 머리에 뭐 그리 많은 생각이 있는지... 이건 꼭 소설 만의 기광이가 아니고 실제로도 그럴 것 같아요. 새 사랑을 두려워하고 초라하다 여기는 기광이가 안타깝고 그걸 남자답게 포용해주는 준형이가 멋지구요... 읽는 내내 제가 준형이한테 빙의 된 느낌이라, 마음이 롤러코스터 탄 것 마냥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합니당... 늘 장난스럽게만 느껴졌던 두준이도 기광일 생각하는 진실한 모습을 비추니 준형이는 기분이 오묘해지겠지만서도, 전 이런 멋진 두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광이가 참 부럽네요. 절대 초라하지 않은데 왜 본인은 그걸 모르는건지 ㅎㅎ... 그리고 다가가는 준형이에게 조금씩 조금씩, 말은 하지 않아도 익숙해지고. 밀쳐내지 않는 기광일 보니 준형이가 그다지 전전긍긍할 건 없어보이네영... 히히. 둘이 조곤조곤 연애하는 모습 보면 저마저도 행복해집니당...ㅠㅠ... 감사해용 푸리에님! 늘 기다렸어요. 전 또 복습하러...ㅎㅎ
 
언제쯤 수정이 풀리나 매일같이 들어와서 확인하는데 드디어 풀려있네요. 너무 오랜만에 형광을 보는거라 설레는 맘 반 뒷내용이 궁금해서 설레는 맘 반으로 글을 클릭했는데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만큼 술술 읽혀서 아쉽기도하고 이번 편을 읽을 수 있어서 좋기도하고 초라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냐는 말에 엄청 설레여서 그 부분만 읽고 또 읽고 정말 초라함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 알수가 없어서 기광이가 조금 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준형이에게 익숙해진다면 두 사람은 정말 편안해 질 수 있을까 싶기도하고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꿈속에서 최악의 기록을 갱신하는 준형이가 증말 대견하고,자연스럽게 준형이 옷 입고있는 기광이도 너무 이뻐 보이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기광이말 잘 알아들은 준형이도 좋고ㅠ역시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사람 없는 건가요,기광이의 마음이 변하는것 같이 보이는 마지막은 두사람이 마주보고 웃을수 있는날이 곧 올것 같다는 좋은예감이에요,글쓰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잘 참고 있다고 생각한 준형이가 드디어 터졌네요. '초라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냐' 이 말 정말 ㅠㅠ 참 멋진말인거 같아요. 그리곤 자신도 위로 받을 겸 기광이도 초라하지 않다는걸 알려줄겸 안는다니.. 어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ㅠㅠ 역시 누나의 글은 읽을수록 참 놀랍구 감탄스럽네요! 기광이가 자신은 절대로 초라하지 않다는걸 준형이를 통해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또 푸리에님의 글 특유의 느낌이 시작되었어요..허이구..항상 죄송하고 그래요. 뭔가, "잘읽었습니다-"나 "우왕 어쩌면 좋죠 둘다 가슴이 울렁거리게해요ㅠㅠ!!"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아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거라구요...ㅠㅠ이해를 하기는 하지만 저런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제 자신이 부족하고 또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요..ㅠㅠ도저히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무말 할 수 없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ㅠ
그냥 가긴 죄송해서 이렇게..말도 안되고 내용하고도 잘 이어지지않는 글 남기네요 푸리에님 제맘알죠? ...ㅜㅜ
 
기다리고 기다리던 6편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누나.... 하......실로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지평연은 역시나 좋아서 읽으면서 또 가슴이 뛰네요ㅠㅠ 마음을 다독이려고 조악한 댓글이라도 조잘거려봐요ㅠㅠ 준형이를 따라가면서 지평연만의 호흡법이 있다구 느껴왔는데 순간 격해지는 준형이를 보는 기분도 참 좋아요.. 운동 개뿔이도 안 좋아하지만 달리다가 숨이 찰 때 느껴지는 그런 쾌감 같은거겠져? 크 표현 구령ㅎㅎㅎㅎ...이딴 비유 삼가토록할게요;; 암튼 누군가한테 안기는게 아니라 누군갈 안아주면서 더없이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는 주녕이 마음을 상상하면서 왠지 제가 다 뿌듯해지네염 ㅠㅠ 뭐래 말이야 방구야ㅠㅠㅠㅠ아 걍 주녕이 머시따구여 누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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