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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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속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 후의 활동이 이렇게 편안할 줄 알았다면 미리미리 경험해 봤으면 좋았을 걸, 난 그동안 고민했던 감정들에 완벽한 정의를 내렸고 질주 하듯 그 정의를 이기광에게 명확하게 전달해냈다. 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의 정도를 비유하자면, 100m단거리 달리기를 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자세를 정돈하고 총소리가 나자마자 전력질주를 하고, 마지막 선을 통과하고 난 후가, 지금의 나였다. 터질 듯이 뛰는 심장과 더 뛰고 싶어 안달하는 두 다리를 추스르고, 전광판에 몇 초가 나올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느낌이다.
물론, 달리기 따위와 내 상황이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달리기는 내가 얼마나 열심을 다해 달렸느냐에 따라 전광판의 초수는 달라지겠지만, 현재 사람과, 이기광과 연계되어 있는 내 결과는 이기광이 전적으로 결론을 짓게 된다. 내가 얼마나 열심을 냈느냐는 전혀 관계없다. 그게 다만 아쉬울 뿐이다.



나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뻔질나게, 이기광의 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이기광은 내가 그동안 어떤 말을 자신에게 했는지에 대해 거의 까먹어 버린 듯이 태연한 척을 했다. 그런 것조차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면서 이기광에게 습관적이기만 한 윤두준의 주기 같은 것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불규칙하게 서너 번은 얼굴을 보러 들르고, 게 중 한두 번은 꼭 잠을 자곤 한다.
냉장고를 채우는 음식은 거의 2주에 한 번 정도 새롭게 바뀌고, 거의 윤두준의 집에서 조달된다. 그동안 이기광과 마주앉아 라면을 나눠먹으며 좋다고 먹었던 김치도 다 윤두준의 집 것이었다. 집 안의 모든 것들이 윤두준과 연관되지 않은 걸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친한 척 두 녀석을 방관하는 동안 무수히 공유했던 대화부터 추억거리들은 어디에 비할 바가 없었다. 틈이 없다. 문득 혼자 편하다고 보냈던 영양가 없는 시간들이 다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몇 주 달이 넘어가도록 전속력을 냈나보다.


“준형아, 집에 안 가?”
“왜, 갔으면 좋겠냐.”

별 뜻 없이 묻는 말일 텐데도 유독 예민함을 탄다. 난 무슨 일을 하든 녀석이 좋다는 전제하에 모든 행동을 하고, 이기광은 날 좋아하지 않는 다는 전제를 두고 모든 말을 해석하게 한다. 이기광이 날 그렇게 만든다.

“…아니, 그냥.”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의 작은 얼굴이 천장의 형광등을 조금 가렸다. 얼굴이 시꺼멓게, 잘 안 보일 것 같은 데도 이목구비가 선명히 다가온다. 이렇게 말끔한 게 더없이 예쁘장했던가. 매일 다시 볼 때마다 날 놀라게 한다. 이기광은, 나에게 새로운 감정을 깨우치게 한다.

“…….”
“윤두준은 뭐해.”
“내 침대에서 자나봐.”

나빴어. 오기만 하면 침대 뺏어서 자.

말만 들으면 분명 툴툴대는 게 맞는데, 표정이랑 같이 보면 하나도 나무라는 투가 아니다. 걸레를 들고 청소를 같이 해주겠다며 설치던 윤두준은 거드름을 피우며 결국 이기광의 방으로 직행이고, 나는 이기광이 제일하기 싫어한다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치하고 화장실청소까지 마감했다.
이기광이 나에게 연속으로 새로운 마음을 깨닫게 한다면, 난 요즘 새로운 내가 되어 있다. 스물 평생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소소한 샴푸 사기부터 설거지, 화장실청소,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이러다가 나중엔 이불빨래까지 해보려나. 우리 집에서 이런 나를 알면 진짜 기염을 하겠지. 실웃음이 픽, 하고 흘렀다.

그러면서도 지금 기분은 조금 밑바닥을 쳤다.

“윤두준이랑 사귈 때만 같이 잔 건 아닐 거 아니야.”
“…….”
“이렇게나 자주 오는데.”

‘같이’와 ‘자다’의 의미가 이렇게 야할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사귀었다는 걸 전제로 하면 조금 달랐다.

“…그건 그렇지.”

속없이, 이기광도 곧잘 대꾸를 해낸다. 이럴 때는 그냥 차라리 대꾸를 하지 않는 편이 내 속이 덜 쓰린데도, 대답하는 이기광이나 묻는 나나 다 멍청하긴 매한가지다.
이기광은 곧 드러누운 내 배 위로 머리를 구겼다.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피곤하다.”
“좀 자.”
“씻고 자야 되는데. 땀났어.”

그래서 난 손에 닿는 곳에 나에게 고정해 놓은 선풍기의 고개를 조금 돌려서 이기광에게 맞추어 주었다. 금방이라도 잠 들 것 같더니 이미 반쯤 감긴 눈꺼풀이 곧 까맣게 닫힌다. 숨을 들이키고 내쉴 때마다 내 뱃가죽이 아래위로 크게 요동할까봐 숨도 좀 자제해서 쉬어보다가 곧 나도 스르륵 눈이 감겼다.

요즘 내 꿈에는, 고등학교 때 체력장을 하던 일부가 자주 나타난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100m달리기다. 매번 똑같이 운동화 끈을 고쳐 메고 선생님이 초를 누르는 시늉을 하자마자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튄다. 참 이상한 건, 한 번도 같이 뛰어본 적 없는 윤두준이 시작점에 함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과 단 한 번도 뛰고 난 다음의 내 기록을 본 적이 없다는 거.
선생님의 손에 들린 초시계를 확인 하려고 가서, 막상 확인을 하려하면 잠을 깨고 만다.

그러면, 이미 아침이다.
난 꿈에서 질주한 덕분에 땀범벅이기도 하다.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서 화장실문을 벌컥 열었더니, 이기광이 아니라 윤두준이다. 배 위에 머리통이 없다 했더니 윤두준이 침대로 옮겼나. 방을 확인할까 싶다가 어련히, 눈에 선해서 그만 두었다.

“야, 씨발, 깜짝 놀랐잖아.”
“조용히 해. 이기광 자.”

……
……

난 자리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윤두준이 씻는 걸 구경했다. 실은 구경한 게 아니라 그냥 좀 딴 생각을 한 거다. 넋나간 사람처럼.

“야, 문 안 닫냐.”
“너 한 다음에 나 샤워할거야.”
“알겠다고.”

직접 문을 닫으러 오던 녀석이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나는 그 힘을 저지했다. 문틈으로 윤두준이 고개를 비죽 내민다. 왜, 하고 묻는 눈을 하고 나는 그 눈을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이번이 처음이고.”
“…….”
“남자는 이기광이 처음이고.”

왜 이렇게 윤두준한테 감정이 거지같아 지는지 모르겠다.

“이기광이랑 왜 사귄 거냐, 너.”
“기광이?”
“두준아, 나 물.”

눈을 비비적대고 나오는 녀석 때문에 대화가 잠시 끊겼다. 어어, 기다려. 하고 말이 앞선 건 윤두준이었고, 냉수 한 잔 건네는 행동이 앞선 건 내 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윤두준은 아직도 온 몸에 비누칠 투성이다.

이기광에게 잠이 쏟아지는 중에는 습관적인 ‘윤두준’이 있다. 내가 아직은 넘볼 수 없는 벽이다.
식탁에 꼬꾸라져 엎드린 이기광이 그제야 눈을 조금 뜨고 옆에 앉은 나를 바라본다. 그래. 그토록 이기광이 찾던 윤두준이 아니라 내가 지금 네 옆에 있다.

“…준형아, 두준이는?”
“씻어.”
“씻어?”

종종걸음으로 내가 아까 전에 그랬던 것처럼 화장실문을 노크도 없이 열어본다. 악, 하고 윤두준의 외마디 비명이 들리고, 이기광은 저가 더 놀라서 어깨를 들썩인다. 그리고 그 다음은 둘 다 깨알 같은 웃음이다.

“임마, 오늘 둘 다 쌍으로 나 놀래킬래.”
“두준아, 나도 씻을래.”
“준형이도 씻는데, 이따 둘이 같이 씻던가.”

나 다했어.

이기광이 무심히 입을 비죽이고 날 쳐다보았다.
같이 씻던가.
유독 윤두준의 그 말이 심장을 들뜨게 했다. 사내 둘이 씻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그지 이기광아.

“준형아, 같이 씻어?”
“너 먼저 씻어라.”

……
아니. 내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제는 친구 이기광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이기광인데.





이기광이 씻는 동안, 거실에 뱅뱅 돌아가는 선풍기에 대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 윤두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같이 씻는 게 나을 걸.”

기광이, 진짜 오래 씻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 저번 주인가 알았어.”

너 이기광이랑 사귄 거.

그제야, 윤두준이 멈칫 하고 부엌 식탁 의자에 앉은 나에게 몸을 틀었다.

“진짜? 내가 말했었잖아.”
“안 믿었어.”
“안 믿었어?”

으하하, 하고 윤두준은 혼자 좋다고 웃었다.

“용준형 너 답다.”

……
죽겠다. 나는 나다운 게 뭔지, 정말 모르겠다.



윤두준과 나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그저 딴 상념에 빠져 있었다. 윤두준과 이기광을 앞에 두고도 그 둘에 대해 속속들이 묻고 따지는 염치없이 뵈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추호도 싫다.

“아, 근데 기광이랑 너.”
“…….”
“혹시 무슨 일 있어?”

싸웠어?

난 일단, 어깨를 으쓱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윤두준에게는 모든 걸 함구했다. 이기광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던 지간에, 나는 내 마음에 대해서 결단코 녀석에게 말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기광이가 그러더라.”

예전에, 준형이가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편하고.

예전의 용준형은 이기광에게 어떤 친구로 남아 있길래, 그 때가 더 좋았다고 하는 지 모르겠다.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이기광은 윤두준과 제 사생활인 부분 말고 나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알고 싶다.
그 때, 달칵하고 욕실 문이 열리고 이기광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
“지금의 너는, 기광이한테 불편하다는 얘기가 되는 거잖아.”

……
……

약간의 침묵에 윤두준이 선풍기를 향했던 머리를 내 쪽으로 돌렸고, 그보다 먼저 이기광을 쳐다보았다. …그렇댄다. 이기광아. 어쨌든 더 깊이 듣는 건 나에게 더 이상 이득이 없을 것 같아, 옷을 벗는 척 문 앞에 선 이기광을 지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씨발.
나란 놈이, 정말 꼴이 말이 아니다.



학교에 가는 길부터 하루 종일, 제 감정을 폭로한 윤두준에게 이기광은 내내 불만스런 얼굴을 했고, 윤두준은 어떻게든 그걸 풀어주려고 이기광에게 알짱댔다.

“하긴, 나랑 너보다야, 준형이랑 풀어야 되지 않겠냐.”
“준형이랑 나 아무렇지도 않거든.”

혼자 넘겨짚지 마, 윤두준.

티격태격 하는 걸, 나조차 아무렇지 않다는 걸 표명하게 위해 이기광의 젖은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이기광은 태가 나게 당황한 얼굴로 어깨부터 온 몸을 굳혔고, 나는 최대한 무심하게 대응했다.
난 이기광이 어떻든 윤두준이 어떻든 날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일보 후퇴를 결심한 것은 맞는데,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_







이기광의 모르는 척 잊어버리는 척에 익숙해져서 인지, 나도 이기광이 날 불편해한다는 것에 대해 면역된 듯이 굴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셋은 붙어 다녔고, 윤두준이 여자 친구와 함께일 땐 당연히 둘이었다. 우린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까놓고 뒤짚어보지 않았다. 난 물론, 이기광의 뇌 속을 다 뜯어보고 싶었지만, 이기광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 그걸 우선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기말고사가 다가오는 중에는 1학년에게도 무수한 리포트와 쪽지시험이 쏟아졌다.
대부분 밥을 먹고 서로 강의시간이 아니면 집에 돌아가기 전에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인데, 올거야?

마지막으로 도착한 문자를 보고 도서관에 자리는 찾았는데, 녀석이 없다. 양손에 들고 왔던 아이스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를 하고 있나, 컴퓨터실부터 시청각실까지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다가, 더 깊숙이, 도서관 2층, 책 냄새가 폴폴 나는 책장 사이사이를 지나다녔다.
그러다가, 제 키를 부쩍 넘어선 책장에 잔뜩 쪼그리고 앉아 책을 넘겨보고 있는 이기광을 발견했다. 같이 쭈그려 앉아서 사락- 하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걸 한 번 손으로 막았더니 금새 날 돌아보고 작은 소리를 낸다. 왔어? 그리고 페이지를 정말 넘기려고 하는 걸 내가 몇 번 장난치듯 막아내자, 눈살을 찌푸린다. 왜 그래- 하고.

“뭐 읽는데.”

녀석과 다르게 좀 큰 소리를 냈더니, 녀석이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쉬이- 하고 주의를 준다. 과제할 책이라며 표지를 보여주는 녀석의 손에 들린 걸 재빨리 뺏어서 도망치듯 뛰듯 걷자, 곧 이기광이 쫒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난 이기광의 자리까지 돌아와서야 책을 돌려주었고, 불퉁해 있던 녀석이 얼굴을 펴고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숨 쉬듯이 늘어져 앉아서는 아, 편하다. 그런다.
그러니까, 편하게 읽지 않고는 쭈그리고 앉아 있더라.


나란히 앉아서 제각기 다른 책을 펴고 또한 나란한 아이스티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던 녀석이 어떤 게 제 아이스티인지 모르고 한참 부산스럽게 제 손을 허공에 놀렸다. 어느 게 아이스티냐고 묻는 눈에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별 수 없이 제 감으로 하나 고른 녀석이 한입 넘기고 나자, 미간을 찌푸리고 그 옆에 있는 걸 바로 집어 입가심을 한다. 녀석의 손에 들린 아메리카노는 별 수 없이 내 자리 한 가운데를 침투하고, 이기광에게 버려지고 만다.
아무튼, 꽤, 많이, 귀여운 놈.



“두준이 전화 안 된다.”

우리 전화가 아니더라도 전화통이 언제나 불난 것 같은 윤두준이 웬일로 전화가 안 된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 앞 돈가스에 꽂혔다던 이기광에게 이끌려 한창 주문을 한 상태였고, 여기 돈가스를 저보다 더 좋아한다는 윤두준도 부를까 싶어 동조한 중이었는데, 서로 의아한 얼굴로 마주보았다.

곧 돈가스가 나오는 바람에, 일말의 생각조차 지울 수 있었지만.






그리고 그 날 늦은 저녁에 과제를 하려고 폼 잡고 있던 나에게 윤두준의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에는 분명 윤두준이라고 떴는데, 목소리는 이기광이었다.

- 준형아.
“어. 어디야.”
- 두준이 완전 인사불성이야. 어떡해.

과제는커녕, 몸은 벌써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우리 셋의 행동반경은 거의 일정했다. 셋이 돌아오려면 오토바이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았고, 장소는 다름이 아닌 ‘거기’였다. 이기광이 나에게 커밍아웃을 한 날, 그 장소. 우리 셋이 자주 술이나 고기를 먹으러 오는 거리. 마음이 내키고 말 것도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즐비한 술집 어귀에 도착하자 거의 등에 윤두준을 받히고 구부정하게 선 녀석이 보였다. 아니, 윤두준에게 거의 덮어져 있는 이기광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근데, 내 눈에는 선명하단 말이다.

윤두준을 내 쪽에 업히도록 유도하고 곧 윤두준의 무게에서 해방된 이기광은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단은, 타고 온 택시에 윤두준을 태우고 내가 윤두준의 옆자리를 꿰어 찼다. 거의 누울 듯 뒷자리를 차지한 윤두준덕에 이기광이 따로 앞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마셨냐.”
“나도 늦게 전화 받고 왔어. 누나한테.”
“누나?”

어. 두준이랑 사귀는.

그제야 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받고 오긴 했는데,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고 윤두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고, 벌써 눈이 풀렸을 때였단다.




이기광의 집 앞에서 내렸고 윤두준을 업고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거실바닥에 녀석을 떨어뜨렸다. 절로 욕이 나올 정도로 돌 같이 무거운 몸이다. 이기광은 널브러진 윤두준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나랑 싸웠다나봐.”
“싸워? 왜.”

이기광은 고개를 갸웃하며 모르는 것처럼 굴었지만, 분명 얼굴에는 모든 걸 알겠다는 듯 했다.
나는 잠깐 침묵하며 녀석의 시선을 쫒았다. 뭔가 말할 듯이 말하지 않는 녀석을 그렇게 채근해내자, 아마도, 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확신에 차 있었다.

“혹시, 두준이한테 묘한 재주 같은 거 있는 거 알아?”
“…….”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는 것처럼 만드는, 그런 재주.”

누나한테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천성이 그런가보다, 윤두준은.

이기광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난 윤두준에게 그런 재주가 있는지 같은 건 모르겠다.
부산스럽게 제 침대에 베개를 하나 짚어온 녀석은 쪼그리고 앉아 윤두준의 머리와 목 뒤를 지탱해주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가지, 예상할 수 있는 건 있었다.
이기광이, 고등학교 때 급작스럽게 타기 시작한 외로움에.
윤두준이 아무런 위로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

“이제 너 집에 가도 되겠다.”
“…….”
“두준인 이렇게 마셔도 내일 속앓이 안하니까.”

구조요청에 흔쾌히 응해준 내게 잘게 웃어준 녀석이 피곤한 듯 제 방에 들어가려는 걸, 붙잡았다.

“자고 갈 건데.”

녀석은 나를 돌아보았다.

“자고가려고?”

분명 자고가려고? 라고 물었는데, 어디서. 라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것보다, 앞으로는 윤두준처럼 이기광의 옷장에 내 옷도 몇 개 끼워 넣고 내 집인 양 굴어봐야지, 하는 욕심을 냈다.

“침대 넓잖아.”
“둘이 자긴 좁다니까.”
“참어.”

침대에 내가 먼저 기어들어가자, 이기광은 한참 뭔가 혼자 고민하는 척을 했다. 혹여나, 윤두준 때문에 술 냄새 진동하는 거실에서 자겠다거나 하진 않을까 싶어 녀석의 팔을 잡고 침대로 끌었다. 이기광은 다 눕지도 않고 또한 앉지도 않은 이상한 자세를 했다.

“…….”
“…….”

확실히, 내 마음이 저에게 쏠려 있다는 게 신경을 쓰이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침대 귀퉁이에 떨어질 듯이 쭈그려 누웠다. 녀석 쪽으로 돌아보고 누웠더니 이기광은 내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었다. 이기광은 잠이 들면 무의식중에도 자연스럽게 사람의 체온을 찾아 파고든다. 나는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누워있었고, 시간이 꽤 가도록 미동이 없는 이기광이 의아했다. 분명 금방도 잠이 들곤 하는 걸.
뭘까, 싶다가 곧, 그냥 웃음이 나서 입을 틀어막았다. 못 자고 있구나 싶어서.

“으악.”

녀석의 옆구리에 팔을 넣어 수욱- 하고 내게 끌어왔더니 가벼운 몸이 내게 달려온다. 역시 쉽게 잡에 들지 못한 녀석이 반응을 한다.

“안자냐.”
“왜 이래.”

옆구리에 넣은 손으로 반대쪽 어깨까지 단단히 잡아내었더니 녀석이 끙끙대며 내 손을 풀어내려고 힘을 쓴다. 녀석에 의해 몇 번은 풀리고 또 부여잡기를 몇 번 하다가, 내가 내 손을 풀어내려는 녀석의 손까지 잡아채었더니, 곧 실랑이가 잠잠해진다.

“…….”
“앞으로도 친구할 거면, 상관없고.”
“뭐가 상관없는데.”

힘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 체념한 녀석의 등이 내 몸이 끼워 맞춰지듯이 들어온다. 녀석의 손 위로 떨어진 내 손도 이젠 쳐내지 않는다.

“불편해지지 말자, 준형아.”
“난 안 불편해.”

……
……

나는 분명,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기광에게 이따금 내 마음을 강요하기도 한다.
아니, 수도 없이.

“그리고, 나 못 돌아가.”
“…….”
“네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용준형 이제 못 해.”

생각도 안 나. 내가 그 때 어땠는지.



이기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린 그렇게 잠에 들었나보다. 나는 오늘 꿈에, 드디어 100m 달리기 후의 내 기록을 보았다. 그동안 그저 예상으로만 했던 것보다 처참한 숫자로 돌아왔다.
나만 좋으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프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to be continued

꿈은 반대라고 누가 그랬던가.
용준형은 이기광을 가질 수 있다고 내가 그랬나?

 
누나 이러지 말아요. 꿈은 반대인 거랑 이건 상관없다고 아임유얼골수!!보다 조금 더 소심하게 외쳐봅니다. 예상만큼, 아니 ,예상보다 더 아플 준형이한테는 몹쓸 말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달려줬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기록을 얻을 때까지, 아주 조금만 더, 숨을 뱉지 말고, 삼켜줘, 준형아.
 
모징. 글을 다 읽고난다음 누나의 저 두줄의글이 의미심장하게다가오네요. 두준이랑 기광이가 헤어졌던 이유가 두준이와 그 두준이의 여자친구인 누나와 헤어졌던 이유와 같은거인거죠? 기광이와 준형이의 사이는어떻게될거신가!!!!
 
으억..힘내라 준형아. 기광 이즈 유얼스..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100m달리기라니,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신 푸리에님 징차 찬양.乃.. 마음앓이하는 준형이 보는 재미도 씁쓸하면서 쏠쏠하지만, 준형이에게 넘어오는 기광이를 얼른얼른 보구 싶네요. 으하항. 설레면서 스크롤 내렸습니다. 다음편 기대기대!!
 
역시 용준형은 만만한 남자가 아니였군여... 캬캬캬. 기광이가 저렇게 밀어내는데도 남자답게 고백하는 준형이라니. 제가 준형이가 된 듯 기광이한테 마음이 닿을랑, 말랑 하는게 감질맛 나서 죽겠어요. 하지만 푸리에님 말대로 꿈은 반대라고. 꿈속에서의 기록은 처참할지 몰라도, 현실속에서의 기광인 이미 준형이한테 마음이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아여 ㅎㅎ 아 너무 재밌어요ㅜㅜ 이제 담편 또 어케 기다리나... 전 또 '술주정'만 죽어라 누르겠지용.
 
우와. 역시 얘기로 듣고 읽으니 원하는 포인트를 정말 잘 알수있어서 좋다. 허허. 근데 100m 비유는 얘기 안해줬자나!!! 이 비유 정말 조으다... 언니의 마지막 두줄.... 흐흐.. 빨리 6편을 써제끼라능!!
 
아니 무슨 글이 으씽ㅜㅜ 난 자격미달인가 ..하면서 이 금쪽같은 글은 클릭한번안해보고 다이어리만 보고 있었는데 오늘 4편 복습하는걸 잘못눌러서 5편과 접신하여써요 아 뭐 이런 ㅋㅋㅋ5편보고싶어서 비밀글풀리기만 보고 있다가 잘못눌러서 횡재했네요ㅜㅜㅜ 역시 기대이상인둡 .한동안은 '언제까지 이 홈에 얽메여 살텐가 ..'와 '용주몀사랑해흐규'가 제 주제가 되겠네요 .ㅜ
 
으어,기광이를 향해 달리는 준형이라.
언제부턴가 같이 시작점에 있다던 두준인 무엇일까요?다음편이 마구마구 궁금해지는 글이에요ㅠ준형인 열심히 달리는데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사람없다고 언젠가는 좋은결과가 나오길!
 
덧글을 이제야 다네요.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한 용준형과, 조금씩 알아채고 있는- 이기광이. 혹독한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 후에 다가오는 마음에는 으레 덜컥 겁부터 집어먹기 마련인데. 그게 기광이도 그래서 그런 걸까나. 알다가도 잘 모르겠는 기광이 마음은 용준형이부터 얼른 알아챘으면 좋겠네요. 백미터 달리기 기록은 처참했을지 몰라도, 오래달리기 기록은 어떨지 모르는 거니까. 미인을 얻으려면 쓰디쓴 인내는 기본, 달달한 에피소드는 맛보기 아닌가요:)
 
어떡해요ㅠㅠ 나 얘네 셋 너무 이뻐서 죽을 것 같음ㅠㅠ 용기내어 다가가는 주형이는 멋다가도 한편으론 안쓰럽고, 다가오는 준형이를 거부하면서도 아주 모질진 못한 기광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기광이와 준형이사이에서 장애물이 되었다가 촉매제가 되기도 하는 두준이 역시 너무 좋네요ㅠㅠ 진짜 세명의 캐릭이 너무좋고 소설분위기 진짜 짱임ㅠㅠ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읽으면 그 마음이 꼭 내마음인양 느껴져서 정말ㅠㅠㅠㅠ 대박이네요ㅠㅠ 어서 다음편도 보고싶어요!!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프다.

누나 준형이의 저 심정이. 콱 와서 박히네요. 사랑이란게 그런건가봐요. 쿨해지려해도, 가령 조건없이 주겠다고만 맘 먹었더라도 돌아오지 않으면 섭섭해지고 아파지고. 어린애로 돌아가는 것 처럼요. 이성이 관여하지 못하는.. 그래서 더 무섭기도 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저 셋이 휘말리는 것 같아서 보기 예쁘면서도 애틋하고 그러네요 =_= 누나의 글은 마음을 은근하게 만들어요, 달빛같아요.
 
기광이가 너무 확고한 듯 하네요, 준형이 불쌍행... 결국 두준이는 같이 있어도 외롭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고, 기왕이는 아무 위로 받지 못 했네요. 어서 준형이 한테 기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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