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oxo, text
 
 

 

I`m sorry:)

 


 |  ♥ (4)  HYUNGKWANG (30)  DUKWANG (1)  SEOBKWANG (1)  TRI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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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종례가 긴 걸로 치면 이기광네 담임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기다림이 길어진다는 건, 윤두준과 내가 담배를 태울 시간이 생기는 것과 다름이 없어, 아마도 그땐 간간이 녀석을 따라 나도 담배를 태웠던 것 같다.
윤두준이 적어도 나에게 ‘나쁜 놈’으로 정의되지 않았으므로, 녀석이 행하는 일들 중 나에게 간염이나 파장처럼 옮겨오는 무수한 행동들이 당연히 ‘나쁜 짓’으로 치부되지 않았다. 담배를 태우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담배를 태우는 일은, 윤두준과 이기광,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하교를 하기 위한 시간때우기 과정에 불과했다.

가방 안 쪽 주머니에서 담배 몇 개비를 꺼내 휘휘 둘러보던 윤두준이 시원하게 웃어 보이며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받아들려고 하니까 줄 생각은 없는 듯 이리저리 피하는 통에 잔뜩 얼굴을 찌푸렸더니, 정확하게 담배의 가느다란 기둥 가운데에 자잘하고 어설픈 글자를 가리킨다.

‘작작 좀 펴, 윤두 용준’

어감으로 하면 꽤 여러 가지의 의도를 낼 수 있는 문장이다. 좀 애매하다 싶었지만,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 이기광은 우리가 담배를 하는 걸 참 싫어했음에도, 우리에게 유일하게 담배를 공수해 다 주는 인물이었다. 녀석이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형 하나를 잘 알아서, 그 형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에 맞춰 가면 담배를 태우지도 않는 이기광은 담배를 구입하기가 쉬웠다.

“귀엽지 않냐.”

이기광이?
담배에 낙서를 한 행동이?
아니면,
이 무성의하게 써재낀 글자가?
……
윤두준이 새삼 미쳤구나 싶어 비죽 웃어버렸다.

“어디 이기광한테 대놓고 말해보지.”

존나 터지려고.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조금 인정, 하지만 전혀 귀여운 행동 따위 하지 않는 게 이기광이었다. 나에게 이기광은 적어도 그냥 윤두준과 나보다 체구가 약간 작은 시꺼먼 짐승 한 마리일 뿐이었다. 그런 이기광을 유난떨며 귀여워라 하는 건 윤두준 밖에 없었다.
이 날이었나 보다.
유난히 이기광의 종례가 한껏 더 늦게 끝났던 날.
학교 건물 뒤 소각장에 매캐한 냄새가 물씬 나는 땡볕여름이었고, 땀에 흠뻑 젖어서 온 몸에 땀이 줄줄 담배를 쥔 손끝까지 끈적끈적 했던 그 날, 윤두준은 그 자리에서 최고로 많은 담배를 태웠다. 내가 겨우 담배 한 대를 물었던 텁텁한 입술에 침을 바르고 손목시계를 열 번쯤 쳐다봤을 때, 이기광은 그제야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난 건물어귀부터 이쪽으로 걸어오는 이기광을 바라보고 있었고, 윤두준은 그런 이기광을 등지고 있었다. 학기 초에는 우리에게 미안해서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요즘은 짤 없다.
더운 날씨만큼이나 더디다, 걸음이.

“미쳤네.”

얼마나 핀 거야, 너네.

등진 시꺼먼 그림자에 윤두준은 휙 돌아보며 이기광을 올려다보았다. 난 녀석의 뒤로 간간히 가려지는 태양 때문에 녀석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가 없어 잔뜩 찌푸린 채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했어?”
“뭘.”

아, 맞다.

이기광은 윤두준을 한껏 깔아서 내려다보았고, 슬쩍 턱짓으로 날 가리켰다. 윤두준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고 ‘무언가’ 깨달은 척을 했다. 이기광은 그런 윤두준에게 정말 한심하다는 듯이 손으로 윤두준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윤두준은 악, 하고 소리를 내면서도 속없이 웃었다.

“준형아.”

얘랑 나. 사귄다.

윤두준을 따라 나는 잔뜩 접었던 다리를 펴며 엉덩일 털었고, 그 중간에,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진중하지도 않았고 장난 같지도 않은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고, 윤두준은 이미 꽤 앞서 걷고 있던 이기광에게 전력질주를 해 녀석을 잡아먹을 듯한 어깨동무를 해냈다.
두준아, 꺼져라.
이기광이 손으로 윤두준의 턱을 주욱 밀어내었고, 윤두준은 으어어, 하고 밀려났다.
……
뭐, 항상 있는 일이었다. 윤두준이 뭐라든, 뭘하든, 이기광이 곱게 받아주는 법이 없었다. 평소와 너무나도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내가 윤두준이 가볍게 지나쳐 말했던 걸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리가 없었다.
그냥,
윤두준이 더위를 먹어 이윽고 돌았구나, 싶었다.


후에도 우리는 항상 그랬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고 녀석들에게 무심하게 굴었어도, 내 눈에 이기광과 윤두준이 서로 좀 더 각별해 보였다거나 하는 일조차가 없었다.
이기광을 도가 넘게 챙기려 드는 윤두준은, 그 때도, 한결같이 그랬단 말이다.



윤두준이 한 백 번 정도 ‘이기광과 사귀었다’는 말을 했다면 나는 그저 아무 의심 없이 농으로 취급하고 녀석을 개또라이 취급을 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지금 ‘윤두준과 사귀었다’는 이기광을 마주하고 있었다. 윤두준과 이기광이 나에게 어떻게 다른가가 확실히 여기서 갈린다. 윤두준과 내가 영양가 없는 시시껄렁한 농을 주고받는 정도 사이라면, 이기광은 결단코 나와 그런 사이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 새삼, ‘윤두준과 이기광이 사귀었다’는 그 말이 사실이 되어 믿어지기 시작했다.
……




“들어가.”

상황이야 어찌됐든지, 무작정 이기광을 뒤에 싣고 줄행랑을 치듯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한동안은 저 공간만 봐도 이기광의 말이 생각날 것 같아 술집을 자제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녀석이 내려지고 눌러쓰고 있던 헬멧을 나에게 벗어주는 걸 받아드는 데, ‘내가 말 안했었나.’하는 버릇이 트라우마처럼 내 머리에 걸렸다.
한동안은 녀석만 봐도 그 일이 생각날 것 같다.

“준형아.”

변명을 하려는 걸까.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아 보이기는 하는데, 내 머릿속에 아무것도 정리 되어진 게 없어서 지금 무언가를 더 들었다가는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듬성듬성 녀석을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제자리에 그러고 있다가는 아무래도 뭐 한자라도 더 듣지 싶어서 말도 안 되는 뻘짓을 엄청 궁리 해댔다.

“일단, 들어가.”
“…….”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얘기해.”

상황을 도피하려는 건 정말 비겁한 일이었다. 비겁한 나는 이기광과 윤두준의 오래된 과거의 정보를 뒤늦게 현재의 것으로 갱신하느라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갇혔다. 옭죄어오는 힘이 세서 옴짝달싹을 못하겠다.

“잠은.”

…너, 잘 수나 있겠어?

도리어 이기광이 나에게 물어온다. 잠은 애저녁에 이미 다 잤다. 지금 가서 침대에 몸을 구겨 넣어도 잠은 안 올 거고, 줄줄이 사탕처럼 물음표가 끊이지 않아 못 잘 것 같다.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녀석도 함께 긍정했다. 나도 못 자.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

준형아, 집에 들어가자.

덥석 내 손을 잡아오는데, 억지로도 아니고 그저 이끌리듯 녀석의 집으로 들어가졌다.
오토바이를 겨우 녀석의 집 문 안쪽으로 들여놓는데, 그러지 말고 집에 갈 걸, 간다고 할 걸, 몇 번이나 후회를 했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이지, 언어장애라도 온 것처럼 머릿속이 새하얗다.

그러다가 비로소 이기광의 집으로 들어서고, 윤두준을 기억해냈다.
윤두준, 네 녀석이 나에게 조금만이라도 더 진중한 녀석이었어도, 내가.
……
…젠장할. 이제 와서, 이런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_







얘기를 하기는커녕 녀석이 내온 캔 맥주를 그 자리에서 원샷올킬을 해버리고, 냉장고 안의 술을 내 맘대로 다 꺼내 와서 혼자 먹고 죽자게 때리다가 잔뜩 고주망태가 된 그대로 거실바닥에 꼬꾸라졌다. 그러고서도 밤새 이기광 네 화장실 변기를 감싸 안고 복통과 구역질에 시달리는 걸, 이기광은 자지도 못하고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희미하게, 준형아, 괜찮아? 하고 계속 물어봐주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 날 쉽게 마신 술이 빨리도 취했다.

근데, 복잡한 마음은 더 선명해 지더라.



“준형아.”
“…….”
“용준형.”

일어나봐.

잠을 좀 깨고 보니, 나는 여전히 화장실문턱에 쪼그라져 있었고, 이기광은 나에게 숙취해소제를 건넸다. 나는 이제 마실 것만 봐도 역겨워서 녀석의 호의를 일단 거절했다. 별 수 없이 내 손이 닿는 곳에 병을 내려놓고 녀석은 내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몇 시쯤 됐으려나, 속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잔뜩 인상을 쓰고 녀석을 한 번 바라봤다가, 괜히 머쓱해서 거실 쪽을 휘휘 둘러보고, 머리가 아파서 눈을 감고 또 뜨기를 반복해보았다.
몇 번 게웠더니 그래도 좀 안정이 되었다.
이 집은 화장실문 양쪽이 벽으로 막혀 있어서 한쪽에는 내가 기대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녀석이 기대앉을 수 있는 이상한 구조를 띄었다. 그 덕에 이렇게 가깝게 녀석과 마주보고 앉을 수가 있다. 어제, 시선이 분산되기 쉬운 거실에 마주 보고 앉았던 것이 도리어 나를 겁을 먹게 만들었나보다.

“못 이길 걸 왜 그렇게 마시냐, 멍청아.”

…그러게.

비죽 웃었더니, 녀석도 그냥 섹 웃는다.
물이라도 가져다줄게. 하고 일어서는 녀석의 팔을 잡았고, 녀석은 다시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쪼그려 앉았다. 마주친 눈에는 흔들림도 없다. 이렇게 뭐든 다 덤덤한 녀석이었던가, 녀석에 대해 조금씩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

“두준이랑은 아직도 사겨?”
“두준이?”

지금 여자 있잖아. 나랑은 고등학교 때 그냥.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첫 번째 질문에, 이기광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부정하며 말했다. 고개를 가로저을 때마다 내가 좋다고 했던 그 샴푸냄새가 쏟아지는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상하게 잠잠한 내 마음도 다, 이상한 일이다.

“…이상하다, 너희.”
“뭐가.”
“헤어지고도 다시 친구로 잘 지내는 거.”

난 연애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사귀다 헤어질 때가 되면 평생 안 볼 것 같이 끝나곤 한다. 하긴, 여자들과 나는 너무 달랐다. 난 아직 일개 대학의 학생일 뿐이고, 나보다 나이가 있던 그 여자들은 남자에 아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바쁘게 되니까, 자연히, 만날 일이 없어진다.

“남자끼리 만나면,”

그런 게 되나.
……

만났다가 헤어져도 서로 친구 먹는 거.

혼잣말에, 이기광은 듣고 있으면서도 동조하지 않았다.
그래, 다 모를 일이다. 어쩌면 윤두준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윤두준은.
혼자 괜히 설득당해서 고개를 끄덕여 보다가 골이 아파서 또 잔뜩 얼굴을 구겼다. 그렇게 찌그러진 내 얼굴을 멀뚱히 보던 녀석이 문득 손을 들어서 내 얼굴을 꼬집었다. 아니, 꼬집었다기 보다는 눈 아래쪽에 살짝 녀석의 손끝이 닿았다. 그 감촉이 생경해서 괜히 눈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여기.”

속눈썹 붙었다, 너.

제 뭉툭한 손끝에 구경하듯 내 속눈썹을 보다가, 후우 불어버리곤, 갑자기 식 웃어버린다.

“너 대신 내가 소원 빌었다.”
“소원?”

속눈썹 말이야. 소원을 빌고 불면, 이뤄진대.

…와, 그럼 어지간한 소원은 사람들이 다 이뤘게. 그런 시대착오적, 역행적 발상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터라, 나도 괜히 웃음이 났다. 진짜 애도 아니고, 별 걸 다 믿는 녀석이다.

“무슨 소원인데.”
“…음. 너랑 잘 지내는 소원.”

뭐. 나?

나? 하고 난 손가락으로 나까지 가리키며 물었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부차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많은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몇 번을 입술을 빠끔거리더니 마냥 침묵하고 있는 내가 녀석을 보채는 것처럼 보였는지, 녀석은 겸연쩍게 웃었다.

“나, 너희랑은 다른 세계에 살잖아.”

어떤 사람들은 경멸하고, 욕해.

다른 세계. 라는 게 무슨 말일까 싶었는데, 뒤 이어 나온 경멸과 욕이라는 말에 대강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기광은 다른 세계에 살아서 남자를 만나고 남자와 사랑 같은 걸 한단다.

“어쩌면 너는.”
“…….”
“…준형이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어제 나 좀 비장하게,
……
…커밍아웃 한 거야.

어제 그 아무렇지 않게 남자랑 연애한다고 말하던 얼굴이 ‘비장’한 거였다고 설명하게는 게 웃겨서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참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는 녀석이다.

“음.”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있는 걸까,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하는 걸까에 대해 일절 생각지 못했는데,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떻게도 정의 내려질 것 같지 않은 감정은, 욕설과 경멸로도 표현이 안 된다.

“난 별로,”
“…….”
“상관없어.”

아니, 상관없는 게 아니라 상관이 없어졌다. 단순히 그 대상이 이기광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스물 적당한 인생에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 녀석이라고는 윤두준과 이기광 밖에 없는데, 지금도 고작 두 명뿐인 걸 한 명이 사라지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게 뭔가 싶기도 했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거북하지도 않으니까.



이기광이 속눈썹에게 빈 소소한 소원이 이미 이뤄졌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런 소원보다도 더 큰 것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난 이것으로 녀석을 밑바닥까지 다 알아버렸다고 자부했고,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욱 충격을 받을만한 일 따위 없을 거라 믿게 되었다. 그로인해 오히려 뭔지도 모르는 홀가분함을 만끽해 신이나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갑작스럽고 일방적이었던 녀석의 커밍아웃과 그에 따른 내 반응은, 서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그건 아마도, 서로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일말의 기대감’을 한껏 열어두게 된 계기 같은 것이 되었다.


화장실 문 앞이라는 어쩌면 좀 추잡해보일지 모르는 곳에 혼자 말하는 것도 다 들릴 정도로 가깝게 마주앉은 우리는, 아주 경건하고 조용한 시간들을 가지며 물어봐야 될 것과 물어보지 않아야 될 것들까지 내내 쏟아내었다. 이기광은 제 과거사나 지금의 자신까지 꽤, 아무것에도 거리낌없이 대답을 해주었고, 그 중 가장 중점에 있었던 화제는 단연 윤두준과 이기광의 관계적 부분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친했던 지라 지지부진한 습관같이 2년 정도를 윤두준과 ‘그렇게’ 지내게 되었던 건, 역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버지의 청천벽력 같은 재혼 같은 상황적 절박함이 기초였다. 이 집에서 쫒아내듯 아버지를 버려버리고 열일곱에 아주 준비 없이 혼자 살게 되면서, 외로움 같은 걸 타게 되었는지, 정말 어린 마음에, 단순히 마음의 안정을 빌미로 윤두준이 필요했음을 설명했다. 말만 사귀었다 뿐이지, 별로 연애의 흉내조차 몰랐던 어린 시절이라 말했지만, 난 속으로 그 말에는 전적으로 부정했다.
달랐다.
친구의 관계라면, 윤두준과 나, 정도가 가장 명확했고, 윤두준과 이기광, 아니면 나와 이기광,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걸 정확하게 설명해줄 필요를 느꼈는데, 감정적인 것들은 세세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어제는, 사실.”

원나잇 같은 거, 모르는 남자.
……

아직 그 밖의 것들까지는, 받아들일 준비가 나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속이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더니만, 그래도 마주앉아 재잘거린 시간이 꽤 되었는지 속이 많이 누그러졌다.
내가 씻는 사이에 이기광은 그새 인스턴트 북어 국을 끓여주겠다고 나섰다. 거절해봤자, 제가 신이나 하고 있는 걸 말리기가 힘들 것 같아 내버려두었더니, 욕실까지 들릴 정도로 떠들썩하게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씻고 나올 즈음, 내 전화를 받겠다던 녀석이

“어, 두준아.”

연락 올 사람이야 몇 안 되지만, 그게 ‘윤두준’이라서 괜히, 바지를 헐레벌떡 주워 입고 욕실을 두다다 뛰어 나와서 우악스럽게 녀석이 든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어우, 이건 그냥, 일이차원적도 아니고 원초적인 방어에 지나지 않는다. 창피하다.

“여보세요.”
- 야 임마, 오늘 수업 연락도 없이 째냐, 의리 없는 놈.

그러고 보니, 수업이 있다는 것도 깜박했다.
그러면, 속없는 내 덕에 이기광도 오늘 수업을…
……
이런 식으로 또 뒤통수를 치는 배려에 내가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기광아.

- 너 지금 기광이랑 같이 있냐.
“어, 왜.”
“나 지금, 기광이네 가는데, 너희는 어디냐.”

핸드폰보다 더 빠른 음성이 현관을 치고 들어왔다. 분명 문짝에 비밀번호가 걸렸는데, 그걸 정확하고 능숙하게 누르는 소리는 핸드폰보다 내 귀에 훨씬 더 선명하게 전달되어진다. 집주인이 안에 있는데,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다른 이가 있고.
그게 윤두준이다.

“뭐야. 둘 다 여기 있었네.”
“두준아.”
“…….”

뭘 이렇게 사들고 왔어.

통화를 엿듣고 싶었는지 핸드폰을 든 내 팔을 붙잡고 늘어지던 이기광이 조르르 윤두준에게 달려가 손에 든 걸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난 윤두준과 이기광을 익숙하게, 번갈아 쳐다보았다.

“…왔냐.”

몇 년을 모를 거 없이 지내온 친구 녀석이, 오늘은 왠지 반갑지가 않다.



“뭐냐, 웬 북어국.”
“어제 준형이가.”

술 많이 먹고.
……

웃옷까지 챙겨 입고 거실바닥에 늘어지듯 앉아서 부엌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윤두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이기광이 서로 꽤 유쾌하게 말을 이어간다. 여전히 제가 있어야할 자리를 찾듯이 윤두준의 팔이 이기광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네.
급 피곤함이 몰려와서 이기광이 끓여주는 북어국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자리를 탈탈 털고 일어나는데 윤두준 사이로 날 빠끔히 쳐다보던 이기광과 눈이 마주쳤다.

“나 간다.”

들렸는지 모르겠는데, 상관없었다.

“준형아, 가냐.”
“그래 간다.”

이 새끼야. 목구멍 뒤로 불편한 용어들은 쑹덩 넘겨버리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현관에서 신발을 다 신었는데, 그냥 있을 걸, 괜히 더 후회를 했다. 윤두준이 이기광을 어떻게 할 줄 알고, …아니야, 설마. 아무 일도 없겠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단 몇 초 동안 박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현관을 나와 새벽에 불편하게 세워둔 오토바이를 끌어내는데, 결국에는 이기광이 나를 따라 나왔다.

“진짜 갈 거야?”
“그럼 가짜로 가냐.”

얼굴도 안 쳐다봤다. 윤두준이랑 이기광을 둘만 저렇게 남겨두는 것도 싫은데, 저렇게 둘이 나란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도를 넘어 신경 쓰고 있는 나도 병신 같아서 더는 못 있겠다. 그게 결론이었다. 언제나처럼 녀석들을 방관해야하는 나는 비겁한 도망자의 입장에 서야할 뿐이다.

“내일 주말인데, 자고 가지.”
“어제도 잤잖아.”

그건 잔 게 아니라 고생한 거고.
……

이러나저러나 난 지금 개후회 중이다.
근데 가나 안가나 다 후회하긴 매 한가지다.

떨어지지도 않는 발을 옮기는데, 멀뚱히 계속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말보다도, 그 마주하지도 않은 시선이 날 자꾸 붙잡는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 아,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온전히 녀석을 돌아보았다.
이기광, 이리와 봐.
녀석에게 손짓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 가지. 하는 가까이 선 녀석의 면전에 대고, 후회하는 김에 다 후회 해보자 싶었다.

“기광아.”
“어.”
“다음엔 나도 집 비밀번호 알려줘.”

……
비밀번호를 윤두준만 아는 건 반칙이다.

“그리고,”

말을 이으려는 데, 윤두준이 현관을 불쑥 열고 나왔다. 기광아, 북어국 다 됐나 봐.
지금의 대화에 윤두준이 끼어드는 것도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
나는 말소리에 숨을 더 죽이고, 녀석을 나에게 더욱 집중시켰다.

“다음부터 외롬타고 그러면.”

……
이상한 남자새끼들 말고, 윤두준도 말고.

나한테 연락하란 말이다.

……
……

이 말의 뜻을 정확히, 녀석이 알아들을까 모르겠지만.

똑바로 마주보는 녀석의 맑은 눈동자에, 내가 확연하게 보였다.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것같이 선명한 그 안의 내가, 도리어 나에게 도전 따위를 주었다. 왠지, 성별과 고정관념을 초월한 이기광이 나의 미적지근하고 적당한 연애관을 송두리째 바꿔줄 것 같다고, 확신했다.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to be continued

원래는 가능성, 가능성, 가능성!(....)같은 걸.
말해주고 싶었던 편이기도. 내 의도는 대체 어디로<-

 
후아. 누나. 누나가 새로연재하는 것도 애껴달래서 제가 지금 자숙(?)하는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내려갔어요. 그런데 덕분에 제 글은 나날이 미루어질것같네요. 하하. 언제나그렇듯이 제대로된 코멘은 방명록에. 여기에는 내가 누나글을 잘 읽었다는 흔적만. 헤헿.
 
원래 누나 글을 좋아했지만서도 누나 문체로 형광도 읽게 되니 홈오홈오한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누나의 담담한 문체에 어울리는 고론 놈들입니다
집 비밀번호 교환까지 하고나면 이제 남은 건 뭐..?........................
너무 불순하다구요? 아니 난 뭐 그냥 좀 더 깊고 진해지는 둘의 사랑을 기대한건데?
에이 누나 뵨태^///^


죄송합니다 간만에 찾아와서 고요한 홈 더럽히고 가네요 전 그냥 사랑한다구요 그리고 눈나의 형광, 그게 무엇이든 기다릴꺼구요 헿
 
아...열리길 기다렸어요 ㅜㅜㅜ 진짜 매일매일 와서 확인했는데 드디어 열렸네요 ㅜㅜ 최고예요 역시...ㅜㅜ 디게 뭐랄까 하나하나 섬세하고, 분위기가 글자마다 녹아있는거같아요 ㅜ 이제 준형이의 감정이 조금 더 솔직해졌나요 ㅜㅜ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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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짜 정말 기다렸습니다. 정말 좋아요 푸리에님~~ ㅠ,ㅠ 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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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누나의 형광소설은 정말 최고예요 ㅠㅠ 최고최고최고!!!!!!!!!!!!!!!!!!!!!!!!!!!!!!
오전에 들어와서 3편 올라왔길래 행복하게 읽었어요 전 왜 이렇게 미지근한
준형이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너무 느슨하다 싶을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자유로워 보이는 거 같아요 요즘 준형이 기광이 유독 더 친해진듯 싶어서
너무 뿌듯했는데 눈화 소설까지 읽을 수 있어 너무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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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 누나 끝내주세요ㅜㅜㅜ 준형이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르며 저 대사를 매치하는순간........오노우 세상이 꽃으로 만발하네요
누나 덕분에 이 더운 여름이 더 불타올라요!!!!!!!!!!!!!!!!!!!!!!!!
 
서로에게 더 많이 가까워지길-
 
제가 속이 다 시원해집니당! 여기서 준형이 캐릭터가 넘 멋있어요 ㅜ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만 푹 빠져서 몰두 할 수 있는 남자. 준형이에겐 기광이도 그런 존재겠지요... 연애하고프당 ㅜㅜㅜㅜㅜㅜ
 
비밀번호 가르쳐달라고 하는 남자 준형이.. 빵~ 터졌다는..좀더..기광이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말인가요??? 기광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담편 읽으러 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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